101년 전 빼앗긴 낙안군 들에도 봄은 오는가?

[09-003] ‘폐군’이 빼앗긴 역사라고 '복군'을 봄에 비유하면 곤란하다

등록 2009.07.27 09:46수정 2009.07.27 0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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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가 낙안군 들판을 내려다 보고 있다 낙안군은 분지와 같은 형태이며 북쪽은 금전산, 동쪽은 오봉산, 서쪽은 백이산이 있다. 멀리 남쪽으로 보이는 산은 고흥쪽 산으로 들판 끝에는 벌교가 자리하고 있고 바다와 맞닿아있다 ⓒ 서정일


'지금은 남의 땅,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로 시작하는 이상화 시인의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1926년 [개벽] 6월호에 발표된 민족시로 일제강점기의 민족현실을 '빼앗긴 들'로 비유했다.


시의 주요 부분을 살펴보면, '나는 온몸에 햇살을 받고, 푸른 하늘 푸른 들이 맞붙은 곳으로, 가르마 같은 논길을 따라 꿈 속을 가듯 걸어만 간다. 입술을 다문 하늘아, 들아, 내 맘에는 내 혼자 온 것 같지를 않구나! 네가 끌었느냐, 누가 부르더냐, 답답워라, 말을 해다오.'

'고맙게 잘 자란 보리밭아, 간밤 자정이 넘어 나리던 고운 비로 너는 삼단같은 머리를 감았구나. 내 머리조차 가뿐하다. 혼자라도 가쁘게나 가자. 마른 논을 안고 도는 착한 도랑이 젖먹이 달래는 노래를 하고, 제 혼자 어깨춤만 추고 가네.'

'나비, 제비야, 깝치지 마라. 맨드라미, 들마꽃에도 인사를 해야지. 아주까리 기름을 바른 이가 지심 매던 그 들이라 다 보고 싶다. 나는 온 몸에 풋내를 띠고, 푸른 웃음, 푸른 설움이 어우러진 사이로, 다리를 절며 하루를 걷는다. 아마도 봄 신령이 지폈나 보다.'

'그러나, 지금은 들을 빼앗겨 봄조차 빼앗기겠네.'

이상화 시인의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를 음미하면서 연재 마지막 서문으로 '폐군과 복군'에 대한 정의를 내려 보고, 본격적으로 동영상 취재를 가미한 101가지 이야기를 시작하고자 한다.


사실, '낙안군'이라는 주제는 그리 생소한 것은 아니다. 폐군 101년의 세월동안 지역민들이 '낙안군 복군운동',  '벌교시 승격운동' 등 비슷한 주제를 가지고 고민하고 해결점을 찾아보려고 노력한 흔적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낙안군 복군운동'과 '벌교시 승격운동'이 이 지역의 아픔을 진정으로 고민한 끝에 나왔다고 보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그 이유는 두 운동이 순천, 보성, 고흥으로 나뉘어 고착화된 현실의 틈바구니 속에서 특정 계층이 이해관계를 실현시키기 위해 '울어서 젖 한번 받아먹고 끝낸 사건'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과거사지만 지역민들은 당시 복군 운동이나 시 승격운동에 대해 두 가지 문제점을 지적했다. 먼저 '우리가 아닌 나를 중심으로 풀어나갔기 때문'이라는데 "복군을 빙자해 내가 잘 먹고 잘 살기 위해, 일부가 잘 먹고 잘살기 위해, 어느 특정 지역이 잘 먹고 잘살기 위해"라는 테두리 안에서만 생각하고 실행했기에 결과까지 불행했다는 것이다.

또 하나의 지적은 '낙안군 폐군'에 대한 깊이 있는 조명 없이 '낙안군 복군'을 얘기했다는 점이다. 사실, 언뜻 보기엔 '낙안군이 없어진 것'과 '없어진 낙안군을 다시 살리자는 것'은 같은 맥락으로 '폐군 된 것을 당연히 복군 해야 한다'는 논리로 연계관계가 확실해 보이지만 둘 사이에는 엄청난 차이점이 있다는 것이다.

101년 전에 일어난 '낙안군 폐군'은 모든 지역민들의 일이었지만 현재 설왕설래하고 있는 '낙안군 복군'에 대한 문제는 우리 중 일부의 얘기라는 것이다. 즉, 1908년 지역민들 모두가 함께 당한 폐군의 역사를 지금 일부 특정 계층의 이해득실에 따라 복군하겠다고 결정하는 것은 지역민의 의견과 정확히 일치한다고 볼 수 없다는 주장이다.

때문에 섣부르게 폐군과 복군을 동일시하는 것은 큰 잘못이며, 먼저 '낙안군 폐군'이라는 의미를 지역민들에게 제대로 이해시킨 후에 '낙안군 복군'이나 '낙안군 치유'에 관해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한다고 뜻있는 지역민들은 지적하고 있다.

필자 또한 그것에 동의한다. 우리가 지금 가장 먼저 할 일은 폐군에 관해 확실히 정의하는 것이며, 폐군으로 인해 101년이 지난 지금 어떤 결과를 초래하고 있느냐 하는 것과 함께 폐군으로 은폐되고, 축소되고, 덮어둔 이 지역만의 가치와 문화에 대해 충분히 살펴보고 조명하는 일이 급선무로 보고 있다.

결론적으로 문제 해결을 '폐군' 이라는 단어로 부터 출발하면 우리 모두의 일이 되며, 지역의 가치를 재발견하고자 하는 노력이 뒤따르게 되며, 미래를 위한 새 출발이 되지만 '복군'이라는 단어로 시작하면 일부 특정인의 일로 전락하는 것은 물론, 아픈 과거의 치유는 고사하고 이해득실만 따지는 아수라장으로 변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필자는 '낙안군 101가지 이야기' 라는 연재를 본격적으로 시작하면서 일부 주민들의 '폐군이나 복군이나 거기서 거기'라는 생각은 문제가 있다고 보며, '이 연재의 성격이 지역을 또 다시 분열시킬 수도 있는 복군에 관해 들춰보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지난 101년 동안 우리 모두의 아픔인 폐군에 관해 호소하고, 어떻게 치유할 것'인가에 초점을 맞추고 있음을 거듭 강조하고 싶다.

"101년 전 빼앗긴 낙안군 들에도 봄은 오는가? 분명 온다. 아니 오고 있다. 하지만, 복군이 그 봄인지는 아직 확실치 않아 보인다"

낙안군과 낙안군 폐군(廢郡)
현재의 순천시 외서면을 비롯해 낙안면, 별량면 일부, 보성군 벌교읍 그리고 고흥군 동강면, 대서면 일부의 땅은 옛 낙안군이었다. 하지만 101년 전인 지난 1908년 10월 15일, 일제는 항일투쟁무력화, 동학혁명진원지분산, 침략거점도시화를 위해 낙안군 자체를 없애버리고 주민들을 인근 지역 세 곳으로 강제 편입시켰다.

덧붙이는 글 | [09-004]예고(동영상): 순천시 송광면 고인돌공원은 공원일 뿐이다

남도TV에도 실렸습니다


덧붙이는 글 [09-004]예고(동영상): 순천시 송광면 고인돌공원은 공원일 뿐이다

남도TV에도 실렸습니다
#낙안군 #스쿠터 #남도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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