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된 공원엔 목매달고 진짜는 나 몰라라

[09-004] 원형 선사유적지 월평리는 방치하고 의미 약한 고인돌공원에 매달려

등록 2009.07.28 14:21수정 2009.07.28 1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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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천시 외서면 월암리(월평) 한 주민이 10년 동안 방치된 월평유적지 앞에서 속 상한 듯 불만스런 표정을 짓고 있다 ⓒ 서정일

순천시 외서면 월암리(월평) 한 주민이 10년 동안 방치된 월평유적지 앞에서 속 상한 듯 불만스런 표정을 짓고 있다 ⓒ 서정일

전라남도 순천시 송광면 우산리 466번지 주암호수변에 야외 전시장, 유물전시관, 묘제 전시관 등을 꾸며놓고 전국 최초로 조성된 공원이라고 순천시가 널리(?) 자랑하는 곳이 있다. 바로 '고인돌 공원(전라남도 문화재 자료 제154호)'이다.

 

그럼 여기에 전시된 문화재 자료라는 고인돌 등이 원래 이곳에 자리하고 있었을까? 전혀 관련이 없다. 그저 1984년부터 1991년까지 주암댐을 건설하면서 수몰지역에 있던 선사 유적을 한곳으로 옮겨와 복원(보관)한 것에 불과한, 말 그대로 고인돌 '공원'이다.

 

물론 유물이나 공원을 폄훼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생활의 필요를 위해 댐을 건설하면서 수몰 예상지역 지표조사를 통해 유물들을 발굴하고, 그것을 적당한 장소에 옮겨 복원(보관)한 것만 해도 훌륭한 일이며, 더구나 그것을 이용해 역사교육장으로 까지 활용했다는 것은 높이 살만한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유물 발굴 장소와 공원 조성 장소는 전혀 연관성이 없다'고 트집을 잡는 이유는 고인돌 공원에서 약 15킬로미터 떨어진 순천시 외서면 월암리(월평)에 10년 이상 방치해 놓고 있는 국가문화재 사적지 제458호 '월평 구석기 유적지' 때문이다.

 

월평 구석기 유적지는 1998년 1차 발굴과 2001년 2차 발굴에서 후기 구석기 유물이 1만여 점 가깝게 출토된 곳으로 5만여 평에 달하는 후기구석기시대의 대 유적지다. 이곳은 송광천과 외서천이 감싸고 있는 퇴적층 구조로 후기구석기 시대와 철기시대를 포함하는 선사 역사의 문화층이 잘 남아있어 당시 생활상까지 엿볼 수 있는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한 마디로 월평 구석기 유적지는 규모와 내용면에서 송광면 고인돌 공원과는 비교할 수도 없을 만큼 가치가 있는 곳이다. 특히 유물이 발견된 현장이고, 복원 결과에 따라 집터 등 당시 생활상까지 엿볼 수 있는 중요한 장소인 사적지(국가문화재)인데 왠일인지 순천시에서는 복원이나 개발은 고사하고 방치하고 있는 수준이다.

 

그럼 그 현장은 어떤 모습일까? 28일 찾아간 월평 구석기 유적지는 한마디로 쑥대밭이 돼 있다. "이곳이 5년여 전에 국가문화재 사적지로 지정된 곳이 맞나?" 하는 의구심이 들만큼 전혀 관리도 되지 않고 내 팽개쳐 방치돼 있음을 직접 확인할 수 있었다.

 

주민들의 불만소리도 높다. 주민들이 지난 10여 년간 유적지 발굴과 관련해 여러 가지 불편함과 어려움을 참고 견뎌 온 것은 '전국에서 최대 규모의 선사유적지가 외서면에 들어설 것'이라는 기대감 하나였는데 방치하다시피하면서 유야무야돼 가고 있기 때문이다.

 

순천시가 "월평유적지를 357억여 원의 사업비를 투입하여 오는 2010년까지 5년에 걸쳐 '구석기공원', '구석기 전문박물관', '구석기인의 길'로 이뤄진 구석기문화 종합체험장을 건립하겠다"고 펼쳐놓은 지난 2004년의 청사진은 확인해볼 필요도 없다. 1년 반 남은 현장의 모습들이 그것은 '뻥이요'라고 외치고 있기 때문이다.

 

마을 주민들로 구성된 유적지 보존회의 한 관계자는 익명을 요구하면서 "초기 순천시와 문화재청의 공원화 움직임에 주민들의 기대감은 매우 높았었지만, 이후 진행에 대해서는 주민들의 불만이 높다"면서 "진행은 한다면서도 시간이 지날수록 자꾸 더뎌지고 있다'고 쓴 소리를 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외서면은 순천시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곳이며, 인구수가 가장 적은 곳이다. 반드시 그런 이유 때문은 아니겠지만 일반적으로 외지고 인구수가 적은 곳은 다수결 원칙이 지배하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대집단과 맞서 이기기 어렵기 때문에 지역개발에서 소외되는 것이 현실이다.

 

더구나 외서면은 지역의 특성상 조선시대에는 낙안군, 1908년 폐군 이후에는 순천군, 1949년부터는 승주군, 다시 1995년에는 순천시로 편입된 좀 복잡한 역사를 갖고 있는데, 순천시 원주민 입장에서 보면 외서면은 완전히 소수 이방인으로 건넛방 사람인 셈이다.

 

사실, 월평리 유적지 추진사업이 더딘 것에 대해 순천시에서도 여러 가지 사정이 있을 것이며, 정당한 이유도 내 놓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곳이 외딴 월평이 아닌 순천시의 도심 중심지였다면 그 때도 정당하다는 이유와 사유를 내놓을 수 있을까.

 

만약, 낙안군이 폐군되지 않고 존속했다면 어땠을까? 두말할 필요도 없이 낙안군은 사활을 내 걸었을 것이다. 월평리 유적지가 낙안군 치소였던 낙안읍성과 불과 6킬로미터 밖에 떨어지지 않은 가까운 곳이며, 관내 최대의 유물이 발굴된 곳이며, 전국 최대 선사 유적지가 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외서면 월평 유적지는 '관련 없는 장소에 고인돌 옮겨 놓고 유적지인 척 하는 그런 곳과는 차원이 다른 곳'이다. 그런데 10년 넘게 방치해 엉망으로 현장이 변했는데 당시 발굴했던 유물들이 어떻게 취급받고 보관되고 있는지는 안 봐도 눈에 선하다."

 

낙안군과 낙안군 폐군(廢郡)
현재의 순천시 외서면을 비롯해 낙안면, 별량면 일부, 보성군 벌교읍 그리고 고흥군 동강면, 대서면 일부의 땅은 옛 낙안군이었다. 하지만 101년 전인 지난 1908년 10월 15일, 일제는 항일투쟁무력화, 동학혁명진원지분산, 침략거점도시화를 위해 낙안군 자체를 없애버리고 주민들을 인근 지역 세 곳으로 강제 편입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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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위적으로 조성한 고인돌 공원엔 목매달고 월평 선사 유적지는 10년간 방치 ⓒ 서정일

인위적으로 조성한 고인돌 공원엔 목매달고 월평 선사 유적지는 10년간 방치 ⓒ 서정일

덧붙이는 글 | [09-005]예고(동영상): 낙안읍성은 서민적인 마을? 개념 바꿔야 할 때 됐다

남도TV에도 실렸습니다

2009.07.28 14:21 ⓒ 2009 OhmyNews
덧붙이는 글 [09-005]예고(동영상): 낙안읍성은 서민적인 마을? 개념 바꿔야 할 때 됐다

남도TV에도 실렸습니다
#낙안군 #스쿠터 #남도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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