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K연쇄살인] 법조계에서 '수구꼴통'과 동의어는?

김갑수 통일추리소설 BK연쇄살인사건 -10회- '법원 검찰청' 편

등록 2009.08.01 13:38수정 2009.10.11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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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수경은 한국의 테러 살인에 대한 연구를 보류하기로 했다. 용 부장이 지적한 '희미한 가설'이라는 말이 걸렸기 때문이었다. 수사관이 임의의 심증으로 가설을 세워 놓고 판단하기 시작하면 스스로 자기 논리의 함정에 빠지기 십상이었다.

그것은 이른바 연역적 방식의 수사였다. 수사관이 직관으로 어떤 전제를 해 놓고 그에 따라 논리를 전개하면 분명히 그럴 듯한 결론을 도출할 수는 있다. 그러나 모든 연역적 추리가 그렇듯이 처음의 전제가 잘못된 것이라면 추리 과정이 아무리 논리적이라 할지라도 결론이 엉터리일 수밖에 없는 것이 연역적 수사의 맹점이었다.

그녀가 미국에서 공부한 수사 기법은 귀납적인 방식이었다. 물론 직관이나 임상경험이 때로는 수사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을 부인할 수는 없다. 하지만 현대의 수사관은 끝없이 관찰하고 조사하며 실험해야 한다. 자료 수집은 수사의 성패를 좌우한다. 그리고 유능한 수사관이라면 그 결과들을 문서화할 줄 알아야 한다.

영화나 드라마에 나오는 마법사나 심령술사 같은 수사관은 존재하지 않는다. 범죄자의 특성을 알아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보다 많은 사람을 만나야 하고 시시콜콜한 정보까지도 소중히 여기지 않으면 안 된다.

조수경은 법원· 검찰청 사건 현장에 나가 보기로 했다. 그녀는 송파 어린이 살해 사건 때 함께 현장에 갔던 세 사람 중에서 가장 나이 어린 김인철을 데리고 서초구 법원·검찰청 뒷산으로 향했다.

김인철은 조수경의 경찰대학 후배였다. 그는 '통일 조국의 수사관'을 소망한다고 했다.  김인철은 대학원에 다니고 있었는데 그의 전공은 북한학이었다.

김인철은 법원과 검찰청 사이 도로로 차를 몰았다. 얼마 후 두 사람은 야산 중턱의 현장에 도착했다. 김인철은 작은 둔덕을 먼저 오르더니 조수경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선배님, 사체는 이렇게 산 밑 방향으로 놓여 있었습니다."

김인철은 산 아래를 보며 엎드리는 시늉을 해 보였다.


"거기 그냥 있어 봐."

조수경은 김인철에게서 눈을 떼지 않으며 뒤로 물러서 보았다. 둔덕 위에 쪼그리고 앉아 있는 김인철의 모습은 화창한 봄 햇살 아래에서 유달리 선명하게 보였다. 2,30 걸음을 물러섰던 조수경은 다시 김인철이 있는 장소로 돌아왔다.

조수경은 목의 땀을 손가락으로 닦으며 말했다.

"여기다 사체를 놓았으면 이것은 유기가 아니고 전시(展示)라고 해야 하겠네?"

김인철은 햇살 때문에 이마를 찡그리며 대답했다.

"저와 생각이 같군요, 양지 바른 명당자리입니다. 법원과 검찰에게 보라는 듯이 사체가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김인철은 몸을 일으켰다가 다시 앉아 보았다. 그러고는 다시 몸을 일으켰다.

"선배님, 이곳은 참 묘한 자리입니다."

조수경은 나무 그늘을 찾아 자리를 옮겼다. 그녀는 김인철에게 손짓했다. 와서 얘기해 보라는 뜻이었다. 하지만 그는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선배님이 이리 와 보세요."

조수경은 손을 이마에 얹고 김인철에게로 올라갔다. 그는 자기가 서 있던 자리를 조수경에게 내 주며 말했다.

"사체는 이렇게 엎드려 있었습니다."

김인철은 다시 몸을 낮추는 시늉을 했다.

"선배님, 뭐가 보입니까?"
"왼쪽은 법원, 오른쪽은 검찰청이지?"
"혹시 범인은 저들에게 할 말이 있지 않았을까요?"

조수경은 불현듯 사체에 쓰여 있던 'THE CONSERVATIVES'를 떠올렸다.

"김 경위, 그것은 희미한 가설일 따름이야."

두 사람은 야산에서 내려와 차에 올랐다. 자동차는 아까 올라왔던 길을 반대로 주행했다. 김인철은 넓은 도로가 나오자 오른쪽으로 핸들을 꺾었다.

"선배님, 저 무수한 간판들 좀 보세요."

건물마다 변호사 사무실 간판이 즐비했다.

"거의가 법원과 검찰청에서 판사, 검사로 한자리 하던 변호사들입니다. 판검사 출신이 아니면 그 바닥에서 찬밥입니다. 내 친구는 처음부터 변호사를 선택했는데 세 식구 생활비도 빠듯하답니다."
"변호사들이 어렵게 되었다고 하더군,"

"판, 검사 출신들은 아닙니다. 그들은 1년에 수십억씩이나 벌어들입니다. 반면 판검사 출신이 아닌 변호사는 의외로 가난합니다. 그들만의 양극화이지요."

"그렇게 되나?"
"선배님, 요즘 젊은 변호사들이 많이 하는 말이 있어요."

조수경은 땀을 닦기 위해 핸드백에서 티슈를 꺼내려다 말고 김인철을 보았다.

"선배님, 법조계에는 두 개의 금기어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 금기어를 말하면 그 바닥에서 바로 왕따가 된답니다."
"물론 금기어이니까 써서는 안 되겠지. 하지만 법조계에서 왕따가 되는 금기어가 뭔지 궁금하군."

"둘 다 사자숙어인데 그 중 하나는 '수구꼴통'입니다. 그런데 수구꼴통과 동의어처럼 쓰이는 사자숙어가 있는데 혹시 뭔지 아세요?"
"내가 그걸 어떻게 알겠어?"

"제 변호사 친구에게 들은 얘깁니다. 그것은 전,관,예,우.랍니다."

조수경은 한 글자씩 똑똑 찍어 발음하는 김인철의 심각한 표정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다시 말해 법조계에서 수구꼴통들은 모두 전관예우를 받는다는 뜻이겠네."
"그렇습니다. 그들끼리의 커넥션이라고나 할까."

사체는 다음 날 신원이 밝혀졌다. 피살자는 사체 유기 현장과 같은 서울 서초구의 주민으로서 이광무(李珖戊, 55세)라는 이름의 남자였다. 그는 한 마디로 말해 '보수논객'이었다. 수많은 신문·잡지에 글을 쓰거나 공청회, 세미나 등에 참석하여 발언하는 것이 그의 직업이었다. 작년까지는 공중파 텔레비전 시사토론회에도 출연했다고 했다.

비정규적인 직업치고 그는 부유층에 속했다. 피살자 명의의 아파트는 중대형으로서 20억 가까운 가격이라고 했다. 그는 두 아들을 미국에 유학 보내 놓고 아내와 둘이서 살았다. 마침 그의 아내는 교회 신도들과 이스라엘에 성지 순례 여행을 갔던 터라 신원 확인이 지체된 것이었다. 집에는 매일 파출부가 출근했는데, 며칠째 주인이 들어오지 않아 조금 이상하게 여기기는 했지만 달리 지시를 받은 것도 없는 데다 별다른 방법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주인 여자가 귀국하기를 기다렸다고 했다.
#수구꼴통 #전관예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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