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락하지 말라던 그가 전화를 해 온 이유

아내의 가출이 믿기지 않아요

등록 2009.08.07 12:45수정 2009.08.07 1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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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사람이 가출했는데, 베트남 남자하고 있더라는 말을 들었어요."
"누구한테요?"
"결혼해서 잘 살고 있는 사람인데, 집사람하고 푸엉이 베트남 남자하고 시장에서 어디를 가더래요."


전화를 해 온 K는 얼마 전 "아내가 친구를 핑계로 외출을 하지 않도록 앞으로 연락을 하지 않았으면 합니다"라고 연락을 해 왔었다. 아내가 쉼터에 친구를 만나러 간다고 해 놓고 다른 곳에서 시간을 보내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했다. 지금까지 쉼터에서 K에게 전화를 했던 적은 그의 아내가 가출해서 쉼터를 처음 찾아왔을 때 딱 한번이었는데, 전화를 다시는 하지 말라는 요구가 뜬금없었다. 정확히 2주전 이야기다.

지방 말단 공무원으로 일하고 있는 K가 처음 쉼터를 찾아왔던 이유는 아내의 가출 때문이었다. 지난 연말 결혼중개업체를 통해 입국한 아내 엔너이는 결혼한 지 7개월이 지났을 때, 느닷없이 가출을 했었다. 베트남에서 친자매처럼 지내던 동네 친구 푸엉이 결혼비자로 입국하였다는 소식을 들은 지 얼마 되지 않을 때였다. 엔너이는 친구의 입국 이후 한결 밝아졌고, 전화에 매달리다시피 하며 살았다.

그런데 입국한 지 일주일도 되지 않았던 푸엉이 보따리를 싸들고 엔너이를 찾아오면서 문제가 꼬이기 시작했다. 부부싸움을 했다며 집을 나온 푸엉을 데리러 왔던 그녀의 남편은 "아내가 왜 가출했는지 모르겠다"고 하소연했다. 알고 보면 부부싸움은커녕 목소리 한 번 높인 적도 없었다. 푸엉 역시 남편과 시어머니가 자신을 몹시 아꼈다고 이야기했다.

이런 저런 이야기 끝에 엔너이는 푸엉 남편에게 푸엉이 애기를 낳지 못한다는 사실을 아느냐고 물었다고 한다. 그 소리를 들은 푸엉의 남편은 다음날 아내와 함께 산부인과를 찾아 갔다. 그곳에서 자신의 아내가 선천성 자궁기형으로 임신이 불가하다는 사실과 푸엉이 결혼 전에 이미 그런 사실을 알고 있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91년생인 푸엉에게 남편은 "아직 어린 나이이니 수술을 통해 고칠 수 있는지 좀 더 확인을 하자"고 했지만, 푸엉은 그 제안을 거절했다. 배신감을 느낀 푸엉의 남편은 곧바로 사기결혼을 당했다며 이혼을 요구했다.

결국 둘은 결혼중개업체와 통역을 배석하고 이혼을 하기로 합의했고, 이혼은 신속하게 진행되었다. 이혼한 푸엉은 곧바로 엔너이를 찾아 갔다. 푸엉과 엔너이는 어려서부터 절친하게 지내온 사이였고, 한국에는 다른 친구가 없었다. 하지만 입국하자마자 이혼한 친구가 마냥 남의 집에 머무는 것을 원치 않는 남편의 눈치가 싫었던 엔너이는 푸엉과 함께 곧바로 가출을 하였다.


두 사람 말에 의하면 가출한 후 공원에서 이틀간 노숙했다고 했다. 이틀이 지난 후 갈 곳을 찾지 못한 둘은 쉼터를 찾았다. 쉼터에서는 엔너이에게 당장 집으로 돌아갈 것을 권했고, 그녀는 그 제안을 받아들였다. 하지만 쉼터의 연락을 받은 K는 먼저 엔너이에게 "앞으로 외출시에는 가족에게 이해할 수 있도록 말하고, 임의로 외박을 하지 않겠다"는 내용의 각서를 쓸 것을 요구했다.

그렇게 해서 둘이 쉼터에 온 다음날 K는 아내를 데리러 왔다. 엔너이를 만나 화를 낼 줄 알았던 그는 아내를 전혀 나무라지 않았고, 오히려 아내의 친구를 걱정하였다.


그 후 이틀이 지나 푸엉은 출국할 거라며 쉼터를 떠났다. 하지만 푸엉은 출국하지 않았다. K의 전화를 통해 안 사실은 엔너이의 주위를 맴돌며 거처를 알아보고 있었다. 푸엉이 쉼터에서 나간 줄 몰랐던 K는 아내의 잦은 외출이 쉼터에 있는 푸엉 탓이라고 여겨 2주전에 전화를 했던 것이었다.

어찌됐든 K는 아내가 한국어를 배울 수 있도록 모 단체 가정교사가 방문을 해서 한국어를 가르쳐 주고 있고, 미용 학원에도 가고 있기 때문에 쉼터와 더 이상 관계를 가질 필요가 없다고 했다. 쉼터가 아니더라도 아내의 한국 정착을 돕기 위한 많은 단체들이 있으니 더 이상 연락을 하지 말라는 사람에게 굳이 연락을 따로 할 이유는 없었다.

하지만 당시 통화에서 쉼터에서는 푸엉과 엔너이의 관계가 동향 친구 이상의 관계라고 느낄만한 충분한 근거가 있다는 사실을 전해줬고, 좀 더 관심을 갖고 부인과 이야기를 나눌 것을 권했었다. 그러나 그는 쉼터의 충고를 쓸데없는 간섭이라고 여겼는지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랬던 그가 아내가 가출하자 전화를 해 온 것이었다. 그는 자신의 아내가 가출한 이유가 푸엉과의 관계 때문이 아니라, 다른 남자가 있기 때문일 거라고 믿고 있었다.

"아내의 가출이 믿기지 않아요. 여자들이 가출하면 어디로 가는지 아실 거 아녜요? 좀 찾아주세요."

경찰도 아닌 사람에게 아내를 찾아달라는 말을 하는 딱한 사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설령 가출한 아내를 찾는다고 해도 문제가 해결될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결혼이라는 절차를 통해 말도 통하지 않고, 모든 것이 낯선 외국 여자와 한 가정을 꾸릴 때는 나름의 각오가 있고, 희망이 있었을 그가 겪을 좌절을 위로할 방법이 달리 없었고, 답답하기는 부탁을 받는 사람도 마찬가지였다.

집나간 아내를 찾아 나선 그는 속이 타서 불꽃보다 더 더운 여름을 보내야 할지 모른다. 그와 같은 아픔을 겪는 이들이 더 이상 생기지 않도록 대책이 필요한 이유다.
#결혼이주여성 #사기결혼 #다문화시대 #이주외국인 100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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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과 편견 없는 세상, 상식과 논리적인 대화가 가능한 세상, 함께 더불어 잘 사는 세상을 꿈꿉니다. (사) '모두를 위한 이주인권문화센터'(부설 용인이주노동자쉼터) 이사장, 이주인권 저널리스트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저서 『내 생애 단 한 번, 가슴 뛰는 삶을 살아도 좋다』, 공저 『다르지만 평등한 이주민 인권 길라잡이, 다문화인권교육 기본교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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