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346)

― '일련의 작품들을 의뢰', '이 일련의 일', '일련의 비극적 과정' 다듬기

등록 2009.09.01 11:08수정 2009.09.01 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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ㄱ. 일련의 작품들을 의뢰하다

 

.. 도시에서 가장 위대한 화가들에게 일련의 작품들을 의뢰했다 ..  《스테파노 추피/서현주,이화진,주은정 옮김-천 년의 그림여행》(예경,2005) 38쪽

 

 '위대(偉大)한'은 '훌륭한'이나 '빼어난'이나 '뛰어난'으로 다듬고, '의뢰(依賴)했다'는 '맡겼다'로 다듬습니다. '화가(畵家)'는 그대로 두어도 되고, '그림쟁이'나 '그림꾼'으로 손질해도 됩니다.

 

 ┌ 일련(一連) : 하나로 이어지는 것

 │  - 일련의 문제 / 왕조 개창을 전후한 일련의 개혁

 │

 ├ 일련의 작품들을 의뢰했다

 │→ 어떤 작품들을 맡겼다

 │→ 이어지는 작품들을 맡겼다

 └ …

 

 하나로 이어지는 작품들이라면 '이어지는 작품'이라고 하면 됩니다. 이렇게 쓰기 싫다면 '연작'이라고 하면 됩니다. "도시에서 가장 잘 그린다는 화가들한테 이런저런 연작을 맡겼다"처럼 손질해 주면 느낌이나 뜻이 한결 또렷합니다.

 

 ┌ 일련의 문제 → 이어지는 문제

 └ 일련의 개혁 → 이어지는 개혁

 

 이어지는 일이고, 이어가는 일입니다. 꾸준하게 얽히는 일이요, 한결같이 흐르는 일입니다. 그치지 않는 일이며, 끊이지 않는 일입니다.

 

 국어사전에 실린 보기글이라면, "이어지는 문제"일 때가 있는 가운데 "한결같은 문제"나 "끊이지 않는 문제"일 때가 있습니다. "이어지는 개혁"이면서 "꾸준히 펼치는 개혁"이기도 하고, "그치지 않는 개혁"이기도 합니다.

 

 ┌ 가장 훌륭하다고 손꼽히는 그림꾼한테 이런저런 작품들을 맡겼다

 ├ 가장 잘 그린다고 하는 사람한테 이 여러 작품들을 맡겼다

 ├ 아주 잘 그린다고 하는 사람들한테 이와 같은 작품들을 맡겼다

 └ …

 

 이어지는 말이요, 이어지는 생각입니다. 이 보기글을 조금 더 들여다보면, '가장 위대한 화가들'처럼 적어 놓는데, '가장 위대한' 사람은 하나입니다. '가장'이라는 어찌씨는 여럿이나 둘을 가리키지 않습니다. 이 보기글처럼 '-들'을 붙일 수 없어요. "가장 잘 그린다고 하는 화가 한 사람"이라고 하든지, "아주 잘 그린다고 하는 화가 여러 사람"이라고 하든지, 똑부러지게 나누어야 올바릅니다.

 

 그치지 않는 말이요, 끊이지 않는 생각입니다. 어느 한 군데에서 그르치거나 어긋나면 다른 곳에서도 그르치거나 어긋나는 말이나 생각이 되곤 합니다. 첫마디를 잘못 잡으면 잔뜩 엉클어지는 말이 되고, 첫끈을 잘못 잡으면 온통 어지러워지는 생각이 됩니다.

 

 하나하나 보듬고, 차근차근 다독입니다. 곰곰이 되씹고, 꾸준히 가다듬습니다.

 

ㄴ. 이 일련의 일이 있은 후

 

.. 이 일련의 일이 있은 후 러스킨은 호수지방에 틀어박혀 버렸다 ..  《요코가와 세쯔코/전홍규 옮김-토토로의 숲을 찾다》(이후,2000) 55쪽

 

 "일이 있은 후(後)"는 "일이 있은 뒤"나 "일이 있은 다음"으로 손질해 줍니다.

 

 ┌ 이 일련의 일이 있은 후

 │

 │→ 이런 여러 (가지) 일이 있은 뒤

 │→ 이렇게 온갖 일이 있은 다음

 │→ 이처럼 갖가지 일이 있고 나서

 └ …

 

 "하나로 이어지는"을 뜻한다는 '일련(一連)'이지만, 이 한자말은 '일련'으로만 외따로 쓰이는 일은 드물고, 으레 '-의'가 달라붙은 '일련의' 꼴로 쓰입니다. 그러나, 우리 말 가운데에는 토씨 '-의'가 꼭 달라붙어 '(무엇)의 (무엇)'처럼 쓰는 말투가 없습니다. 이 말투는 모조리 일본에서 들어왔다고 보아도 틀리지 않습니다.

 

 ┌ 이런 일이 잇달아 있은 뒤

 ├ 이런 일이 자꾸자꾸 있고 나서

 ├ 이런 일이 끊이지 않고 있게 되자

 └ …

 

 보기글에서는 '이런-이렇게-이처럼'을 넣으며 다듬어 봅니다. "이런 일이 잇달아 있은 뒤"처럼 다듬어 보아도 잘 어울리고, "이런 일이 여러 번 되풀이된 뒤"나 "이런 일이 자꾸 있자"나 "이 같은 일이 여러 차례 있은 뒤"로 다듬어도 괜찮습니다. 일어난 일이 어떠했으며 얼마나 자주 있었는가를 돌아보면서 알맞게 다듬어 줍니다. 그때그때 가장 알맞춤할 말투를 생각하고 헤아리고 찾아 줍니다.

 

ㄷ. 일련의 비극적 과정

 

.. 오랜 일제 강점기가 끝나기는 하였지만 해방 정국의 혼란과 분단, 부패, 전쟁 등 일련의 비극적 과정을 겪으면서 미국 지배하의 분단 군가답게 미국과 유럽을 지향하는 소위 근대 기획이 대한민국 사회의 기본적 건축 의지로 굳어졌다 .. (신영복) / 《노래를 찾는 사람들 지금 여기에서》(호미,2005) 35쪽

 

 신영복 님은 우리들한테 좋은 말씀을 많이 들려줍니다. 그렇지만 저는 신영복 님 말씀을 썩 반갑게 듣지 못합니다. 그 좋은 생각을 왜 '좋은 말'로 담아내지 못하느냐 싶기 때문입니다. 왜 좀더 깨끗하고 한결 알맞고 더욱 손쉬운 우리 말로는 담아내려는 매무새가 없는가 싶기 때문입니다.

 

 우리 삶을 밝히는 생각이라면, 우리한테 깨우침을 주고픈 이야기라면, '어려운 말'을 알아듣는 사람만이 아니라, 농사꾼도 노동자도 모두 알아들을 수 있는 백성말을 써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학교 문턱 많이 밟은 사람뿐 아니라 학교 문턱 덜 밟은 사람도, 책 많이 읽은 사람뿐 아니라 책을 거의 못 읽으며 살아온 사람도, 넉넉하고 기쁘게 헤아릴 만한 글을 써야 하지 않으랴 싶습니다.

 

 "해방 정국(政局)의 혼란(混亂)과 분단(分斷), 부패(腐敗), 전쟁 등(等)"은 "해방을 맞이했지만 어수선하고 남북이 갈린 채 썩은내에 전쟁이며"로 손보고, "비극적(悲劇的) 과정(過程)을 겪으면서"는 "끔찍한 일을 겪으면서"나 "슬프고 아픈 일을 겪으면서"로 손봅니다. "미국 지배하(支配下)의 분단(分斷) 국가(國家)답게"는 "미국이 다스리게 된 남북이 갈라진 나라답게"로 손질하고, '지향(志向)하는'은 '바라는'으로 손질하며, '소위(所謂)'는 '이른바'로 손질합니다.  "대한민국 사회의 기본적(基本的) 건축(建築) 의지(意志)로"는 "대한민국 사회를 세우려는 바탕이 되는 뜻"이나 "우리 사회를 새롭게 세우는 바탕"으로 다듬어 봅니다.

 

 ┌ 일련(一連) : 하나로 이어지는 것

 │   - 일련의 문제 / 왕조 개창을 전후한 일련의 개혁

 │

 ├ 일련의 비극적 과정을 겪으면서

 │→ 온갖 비극을 겪으면서

 │→ 갖가지 (아픔 / 슬픔 / 괴로움 / 끔찍함)을 겪으면서

 └ …

 

 '일련'은 외따로 쓰이는 일이 거의 없다고 합니다. 이 한자말 뒤에는 어김없이 '-의'를 붙입니다. "일련의 문제"나 "일련의 개혁"이 국어사전 보기글로 나오는데, "여러 문제"나 "이런저런 개혁"으로 풀어낼 수 있습니다. 말뜻 그대로 "하나로 이어지는"처럼 써 보아도 됩니다.

 

 ┌ 숱한 아픔을 겪으면서

 ├ 끝없이 아픔을 겪으면서

 ├ 슬픈 일을 수없이 겪으면서

 ├ 괴롭고 슬픈 일을 잇달아 겪으면서

 └ …

 

 알맞게 쓰려는 생각이 있어야 알맞게 쓸 말을 찾고 살핍니다. 올바르게 쓰려는 생각이 있어야 올바르게 가다듬을 말을 돌아보고 붙잡습니다. 따스하게 쓰려는 생각이 있어야 따스하게 북돋우며 살찌울 말을 느낍니다.

 

 이 보기글을 쓴 신영복 님한테만 드릴 말씀이 아닙니다. 글쓰기를 하는 누구한테나 드리고픈 말씀입니다. 내 말은 내가 하는 말이지만, 내 입이나 손에서 나오면, 이때부터는 내 말만이 아닙니다. 나한테서 나왔으되 나 아닌 둘레 모든 사람들이 함께 쓰고 느끼고 받아안는 말이 됩니다. 내가 쓰는 돈은 내 돈으로 그치지 않고, 내가 펼치는 사랑은 내 사랑으로 머물지 않듯, 내가 욾는 말은 내 말로 끝나지 않음을 잊지 않는다면 좋겠습니다. 그래야, 말 한 마디라도 함부로 하지 않을 수 있고, 글 한 줄이라도 대충 쓰지 않을 수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hbooks.cyworld.com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2009.09.01 11:08ⓒ 2009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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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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