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사성어'보다 좋은 우리 '상말' (75) 백발백중

[우리 말에 마음쓰기 745] '백발백중 깨진다지요' 다듬기

등록 2009.09.03 10:11수정 2009.09.03 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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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발백중

 

.. 그렇게 답한 뒤에 펼쳐지는 털풀 님의 논리정연한 말에 잘난 척하는 인간들은 백발백중 깨진다지요 ..  《정상명-꽃짐》(이루,2009) 177쪽

 

 '답(答)한'은 '말한'이나 '대꾸한'이나 '이야기한'으로 다듬습니다. "… 뒤에 펼쳐지는 털풀 님의 논리정연(論理井然)한 말에"는 "… 뒤에 털풀 님이 빈틈없이 펼치는 말에"나 "… 뒤에 털풀 님이 차분히 들려주는 말에"나 "… 뒤에 털풀 님이 조곤조곤 들려주는 말에"로 손보고, '인간(人間)'은 '사람'으로 손봅니다.

 

 ┌ 백발백중(百發百中)

 │  (1) 백 번 쏘아 백 번 맞힌다는 뜻으로, 총이나 활 따위를 쏠 때마다 겨눈

 │      곳에 다 맞음을 이르는 말

 │   - 백발백중의 명사수

 │  (2) 무슨 일이나 틀림없이 잘 들어맞음

 │   - 백발백중으로 알아맞히다 / 그 점쟁이는 백발백중이라고 소문이 났다

 │

 ├ 백발백중 깨진다지요

 │→ 하나같이 깨진다지요

 │→ 한결같이 깨진다지요

 │→ 모조리 깨진다지요

 │→ 모두 깨진다지요

 │→ 깡그리 깨진다지요

 │→ 남김없이 깨진다지요

 └ …

 

 어릴 적부터 익히 듣던 '백발백중'입니다. 아무래도 우리 나라는 전쟁을 즐기는(?) 나라이다 보니까, 텔레비전에서고 학교에서고 이런 말을 으레 써 왔습니다. 한국전쟁을 다루는 관제 연속극이나 영화에서 으레 나오는 한편, 미국땅에서 흰둥이나 토박이를 때려잡는 대목에서 으레 나왔고, 우리 꼬맹이들이 골목길이나 학교 운동장에서 놀이를 하면서 이런 말은 으레 터져나왔습니다.

 

 틀림없이 어른들이 이런 말을 하니까 우리들은 옆에서 듣고 아무렇지 않게 따라서 했습니다. 텔레비전 앞에 쪼그리고 앉아 신나게 전쟁영화와 전쟁연속극을 보고 난 다음 동무들하고 전쟁놀이를 할 때면 누구나 '백발백중'을 외치곤 했습니다. 눈싸움을 해도 '백발백중'을 말했고, 야구를 할 때에도 '백발백중'을 읊었습니다.

 

 ┌ 잘난 척하는 사람들은 그예 깨진다지요

 ├ 잘난 척하는 사람들은 그만 깨진다지요

 ├ 잘난 척하는 사람들은 그지없이 깨진다지요

 └ …

 

 꼬맹이 옷을 벗은 요즈음 와서 꼬맹이 적 말을 돌아봅니다. 이제는 저 스스로 꼬맹이를 키우는 몸이 되었기에, 제가 읊는 말이 우리 꼬맹이가 익히 들으면서 배우는 말이 됩니다. 제가 가려내고 덜어내고 다듬어서 말을 하고 글을 쓴다면, 우리 꼬맹이는 어릴 적부터 '제가 꼬맹이일 적에 그러했듯이 전쟁말에 쉬 익숙해지거나 일제식민지 적 말에 아무렇지 않게 물드는' 일이란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우리 집식구가 이런 얄딱구리 낱말과 말투를 꺼린다 하여도, 집 바깥에만 나가면 모두들 이런 낱말과 말투로만 이야기를 주고받습니다.

 

 우리 집에는 텔레비전이 없다 하여도, 우리 집에 가득가득 꽂힌 책들 가운데 옳고 바르게 글매무새 가다듬고 있는 녀석은 몹시 드뭅니다. 아이한테 책을 읽어 주며 엄마 아빠가 애써 '잘못 적힌 글월을 옳게 고쳐서 새로 읽어' 준다 하여도, 아이 스스로 책을 읽을 나이가 되면 '책에 엉터리로 적힌 글월에 아이 스스로 차츰차츰' 젖어들면서 길들어 버리고 맙니다.

 

 ┌ 백발백중의 명사수

 │

 │→ 백 발 쏘면 백 발 모두 꽂히는 손꼽히는 사수

 │→ 어김없이 맞히는 훌륭한 사수

 │→ 한 발도 어긋나지 않는 대단한 사수

 └ …

 

 어린 날, "백 발 쏘면 백 발 다 맞는다" 같은 말을 함께 쓰곤 했으나, 이렇게 쓰는 말투(관용구)가 우리 말투요, 이 말투를 네 글자짜리 한자로 옮겨적은 '百發百中'은 우리 말투가 아닌 중국사람 말투이거나 일본사람 말투임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아니, 이렇게 생각할 까닭이 없었고, 돌아볼 겨를이 없었습니다.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얼간이이거나 바보이거나 쓸데없는 데에 땀을 쏟는 사람인 듯 여겼습니다.

 

 어느 어른도 "백 발 쏘면 백 발 다 맞는다" 같은 말을 하라고 일러 주지 않았습니다. 오로지 '백발백중'만 일러 주었습니다. 이런 말마디를 한자와 함께 익혀야 '똑똑해진다'고 덧붙였습니다. 한자 지식이 더 있다고 무엇이 어느 만큼 똑똑해지는지 더 밝히거나 보여주지 않았습니다. 우리 둘레에 한자 지식이 없는 사람이 있을 텐데도 그와 같은 이웃하고 말나눔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알리거나 말해 주지 않았습니다.

 

 ┌ 백발백중으로 알아맞히다

 │

 │→ 어김없이 알아맞히다

 │→ 모조리 알아맞히다

 │→ 척척 알아맞히다

 │→ 무엇이든 다 알아맞히다

 └ …

 

 아이한테 한문 '백발백중'을 가르치거나 알려주는 일이란 아주 쉽습니다. 이런 말마디 하나쯤 아이가 모르고 지나치기보다는 알면서 고개를 끄덕이는 일이 더 낫다고 여길 수 있습니다. 한 가지라도 더 알면 좋지, 한 가지라도 더 몰라서 좋을 일이 없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얼마나 많이 알아야 하고, 어느 만큼 앎을 쌓아야 하며, 어디까지 똑똑해져야 할까 잘 모르겠습니다.

 

 '책읽기' 한 가지만 알면 넉넉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굳이 '독서'를 알고 '讀書'까지 알아야 할까요. 똑같은 말을 다 다른 글자로 머리속에 집어넣느라 골머리를 썩이기보다, 또 머리속에 갖가지 한자 지식을 채우기보다, 아이 깜냥껏 생각날개를 펼쳐 아이가 디딘 삶터에서 좀더 슬기로운 꿈과 뜻을 펼칠 수 있는 길을 틀 때가 더욱 즐겁고 반갑지 않을까 싶습니다.

 

 ┌ 그 점쟁이는 백발백중이라고

 │

 │→ 그 점쟁이는 모두 맞힌다고

 │→ 그 점쟁이는 점을 잘 친다고

 │→ 그 점쟁이는 못 맞히는 점이 없다고

 └ …

 

 아이가 나중에 나이가 들고 영어를 배우면서 'book'을 배우면 그때 배울 노릇입니다. 아직 한참 어린 주제에 '책'을 'book'이라 한다는 앎조각을 집어넣어야 할 까닭을 느끼지 못하겠습니다. 이런 앎조각을 머리속에 그득 채우기보다는, 풀냄새를 맡고 흙내음에 젖어들면서 구름을 올려다보고 바람을 느끼며 햇볕을 따뜻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밭을 일구어 줄 노릇이 아닌가 싶습니다.

 

 저는 우리 아이가 말을 잘하는 아이가 되기보다, 말을 아끼고 사랑하는 아이가 되어 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우리 아이가 말솜씨가 빼어난 아이가 되기보다, 말나눔을 즐겁고 기쁘게 하는 아이로 커 가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우리 아이가 말을 똑부러지게 잘할 줄 알거나 똑똑하게 잘하는 아이가 되기보다, 말마디에 사랑과 믿음을 살포시 담는 아이로 자라나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hbooks.cyworld.com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2009.09.03 10:11ⓒ 2009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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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사성어 #상말 #우리말 #한글 #국어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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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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