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드리운 골목을 아이와 거닐며

[인천 골목길마실 66] 도시에서 느끼는 가을볕과 가을꽃

등록 2009.10.27 11:53수정 2009.10.27 1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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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대문집 앞은 가을에도 노란꽃이 피며 빛깔이 곱게 잘 어울립니다. ⓒ 최종규

날이 하루하루 쌀쌀해지면서 빨래는 그만큼 더디 마릅니다. 방안에 들여놓은 빨래이든 마당이나 골목에 내놓는 빨래이든, 여름날과 봄철에 견주어 좀더 오래 걸려 있어야 합니다. 돌이 지나고 열다섯 달째를 맞이하는 우리 아기가 내놓는 기저귀 빨래는 차츰 줄어듭니다. 이와 함께 아기가 새로 내놓는 바지 빨래가 늘고, 마룻바닥 걸레질 또한 늘어납니다. 똥오줌을 가려야 하는 때이기에 낮에는 아랫도리를 벗겨 놓고 지내지만 날이 쌀쌀해져서 바지만 입혀 놓기 때문입니다.


옆지기나 저나 아기를 돌보며 하루하루 살림을 꾸리다 보면 시간이 어찌 흐르는지 갈피를 잡기 어렵습니다. 요즈음 날씨는 서늘해지거나 쌀쌀해지지 않고 자꾸자꾸 따뜻하기만 해서 아직까지 모기가 날뛰고 있습니다. 퍽 많은 사람들은 건전지를 넣어 전기로 태워 죽이는 벌레잡이채를 흔들고 있지만, 우리는 파리채도 아닌 부채(길에서 거저 나누어 주는 플라스틱 부채)로 모기를 잡습니다.

가을이라지만 날씨는 그다지 가을 같지 않다고 느끼고 있는 하루하루가 아닌가 느끼면서 골목마실을 합니다. 같은 도시라 하여도 도심지는 봄이고 여름이고 가을이고 겨울이고 다른 모습이란 하나 없지만, 골목길에서는 봄이면 봄 느낌이 물씬 나고 가을이면 가을 느낌이 물씬 나기 때문입니다. 도시 한복판에는 공무원들이 돈을 들여 심는 꽃이나 나무는 있으나, 사람들이 살아가는 자취나 냄새는 거의 없다고 느낍니다. 이와 달리 도시 한복판에서 비켜난 여느 사람들 가난하거나 조촐한 집자리가 있는 골목을 거닐 때에는 어디에서나 수수한 자취와 냄새가 가득하다고 느낍니다. 우리 식구가 어마어마한 재개발 바람을 얼마나 버티며 이곳에서 살아갈 수 있을까 모르겠으나, 이곳에 깃들어 있는 동안만큼은 아이와 함께 '도시에서 살아가는 낮은자리 사람들 손자국과 발자국'을 온몸으로 받아들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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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빛살은 봄 빛살과 여러모로 다른 느낌으로 따뜻하게 내리쬡니다. ⓒ 최종규

갓 지은 빌라 때문에 2층짜리 골목집 옥상에서 빨래를 널던 분들이 더는 햇볕에 빨래를 말리지 못하는 안쓰러운 모습도 그대로 받아들이고, 조그마한 플라스틱 낡은 그릇에 벼포기 몇을 심어 거두는 모습 또한 그대로 받아들이며, 김장배추를 하나하나 심어 놓은 스티로폼 꽃그릇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싶습니다. 배추 한 포기 값이 얼마나 한다고 굳이 심어서 거두느냐 할 터이나, 세탁기에 집어넣고 돌리는 빨래하고 우리 두 손으로 비빔질을 하는 빨래는 사뭇 다릅니다. 아이한테 가루젖을 돈 들여 사먹일 때하고 엄마젖을 물릴 때하고는 크게 다릅니다. 아기를 수레에 태우고 돌돌돌 밀면서 다닐 때하고 아기를 업거나 안거나 걸리면서 다닐 때하고는 더없이 다릅니다.

우리들은 누구나 땅에 발을 디디는 사람입니다. 흙에서 와 흙으로 돌아가는 사람이라고도 합니다만, 이제는 이런 말을 떠올리며 살아가는 사람은 없다고 하겠습니다만, 자가용과 빌딩에 매여 하루에 1분만큼이라도 맨땅을 디디는 사람은 몇 없다 할 만한 오늘날입니다만, 달력에 적힌 숫자가 아니고서는 10월인지 9월인지 11월인지 도무지 종잡을 수 없다 하겠습니다만, 아기 손을 잡고 걸리거나 아기를 품에 안고 거닐면서 가을날 골목마실을 즐깁니다. 봄에는 골목사진 찍는다며 꽤 많은 이들이 북적북적대었지만, 가을에는 골목사진 찍으러 오는 바깥길손이 하나도 보이지 않아 아주 호젓하고 조용히 '가을이 드리우는 골목'을 맛봅니다. 몇 걸음 걷다가 하늘을 보고, 하늘을 보다가 땅을 보며, 땅을 보다가 지붕낮은 골목집을 물끄러미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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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부터 여름가지는 울긋불긋(?)한 온갖 빛깔 꽃들이 무지개를 이루듯 피어 있는 골목입니다. 겨울을 앞둔 가을날에는 빛깔이 차분하게 가라앉으면서 골목 느낌을 사뭇 다르게 받아들이도록 합니다.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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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어가는 가을날에 한 송이 피워올린 장미와 곁에서 해바라기하는 빨래들을 보다가 가슴이 아주 짠했습니다.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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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가 드나들 수 없는 골목은 온갖 꽃그릇이 가득하며, 큰길가에는 퍽 오래된 은행나무가 노란빛을 뽐냅니다.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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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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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로 바뀌어 가는 골목길 한켠 조용한 안쪽 자리에, 장미와 빨래가 아름다이 어우러져 있습니다. 봄에는 봄 느낌, 여름에는 여름 느낌, 가을에는 가을 느낌 물씬한 골목길입니다. ⓒ 최종규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hbooks.cyworld.com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덧붙이는 글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hbooks.cyworld.com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골목마실 #골목여행 #인천골목길 #골목길 #사진찍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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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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