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K연쇄살인] 북한이 정액 분석을 못한 이유

김갑수 통일추리소설 BK연쇄살인사건 (35회) 남북합동수사본부

등록 2009.10.31 11:19수정 2009.10.31 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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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안내원이 김인철 쪽을 보며 말했다.

"남자 수사관님은 존함이 우리 공화국 인민무력부장과 비슷한 것 아십니까?"

북한 인민무력부장의 이름은 김'일'철이었다. 김'인'철은 북한 안내인의 말을 친근감의 표시로 받아들였다.

"하하. 대단하신 분과 이름이 비슷하군요. 그렇다고 그 분이 절 만나자고 하시지는 않겠지요?"

그들이 평양 서성 구역에 있는 인민보안성 건물에 도착한 것은 점심 무렵이었다. 북한의 인민보안성은 남한의 경찰청과 유사한 기관이다. 하지만 별개의 독립된 성(省)으로서 행정자치부의 외청인 남한의 경찰청보다 형식적인 격이 높다.

두 사람은 인민보안성 부상(副相)에게 신고를 마쳤다. 부상의 계급은 상장(중장)이었다. 그는 남에서 온 수사관이 여성이라는 것을 다소 의외로 받아들이는 것 같았다. 신고를 마친 두 사람은 보안과학수사부로 안내되었다.

"안녕하십니까? 함께 일할 유천일입니다."


인민보안성의 직원들은 모두 군대 계급을 가지고 있었다. 유천일은 대좌로서 총경인 조수경과 비슷한 직급이었다. 그는 40대 초반쯤의 나이로 보였는데, 김책공대와 만경대 혁명학원을 나온 북한의 엘리트 수사관이었다.

"두 분이 묵으실 숙소가 마침 사건 현장과 멀지 않으니 오늘은 일단 현장에 둘러보신 다음에 숙소에 가 여장을 푸시면 될 겁니다."


네 구의 사체는 지류인 보통강이 본류인 대동강과 합류하는 지점에서 발견되었다고 했다. 세 사람은 자동차에 올랐다. 평양 거리는 조용하고 평온해 보였다. 그러나 생각보다 자동차가 많았다. 그들은 불과 20분만에 대동강 사건 현장에 도착했다.

"사체 네 구를 실은 뗏목은 저기 보이는 양각도 쪽으로 흘러가고 있었습니다. 마침 전 날 밤에는 안개가 심하게 끼었습니다."

유천일의 설명에 따르면 보통강과 대동강이 합류하는 지점에는 세 개의 섬이 있다고 했다. 양각도와 이암도와 하중도였다. 범인이 합류 지점을 고른 것은 섬들 때문에 사람의 이목을 피할 수 있었기 때문일 것이라고 그는 말했다. 김인철은 지금 사체는 어디에 있는지를 물었다. 유천일은 네 구의 사체는 모두 부검이 끝나고 병원에 안치되어 있다고 했다.

"오늘은 새벽부터 먼 데서 오셨으니 하루 편히 쉬십시오. 범인은 중요한 증거물도 남겼습니다."

그들은 보통강변에 있는 양각도 호텔로 향했다.

조수경이 유천일에게 물었다.

"아까 범인이 증거물을 남겼다고 하셨지요?"

유천일은 잠시 머뭇거리는 듯하더니 김인철 쪽을 보며 말했다.

"여성 사체 한 구에서 범인의 것으로 추정되는 정액이 검출되었습니다."

그것은 예상에 없던 일이었다. 남한에서는 그렇게도 말끔히 사체를 해치웠던 범인이 정액을 남겼다는 것은 수사에 획기적인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조수경은 갑자기 치솟는 생기와 의욕을 느꼈다. 그녀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주먹을 불끈 쥐고 있었다.

"그럼, 유전자 분석도 끝났겠군요?"
"오늘은 편히 쉬십시오. 제가 호텔에 가면 사건 기록을 전부 드릴 겁니다. 그리고 조금 부끄럽습니다만 아직 유전자 분석을 못하고 있습니다."

"이유가 뭐지요?"

이번에는 김인철이 물었다. 유천일은 주저하는 낯빛을 보였다. 그는 조수경이 여성이라는 것을 유별나게 인식하고 있는 것 같았다.

"사건 기록에 나와 있습니다. 가서 조용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우선 대동강 경치나 즐기시지요."

유천일은 차창 밖으로 눈을 돌렸다. 조수경은 더 묻고 싶었지만 참기로 했다. 그들은 보통강이 내려다보이는 양각도 호텔에 여장을 풀었다.

조수경은 김인철과 마주 앉아 저녁식사를 했다. 김치와 계란 스크램블과 무국과 쌀밥으로 된 단출한 식탁이었다.

"유천일 대좌가 미안하다는 말을 전하라고 했습니다."

조수경은 숟가락을 집다 말고 김인철을 쳐다보았다.

"아까 선배님이 물어보셨을 때 바로 대답을 안 한 것 말입니다. 자기는 평생 처음으로 여성과 정액 얘기를 하려니 말이 안 나오더라는 겁니다. 그러지 않아야 하는 줄 알면서도 그렇게 되었다고 하며 좀 쑥스러워하더군요."

조수경은 순박해 보이던 유천일의 얼굴을 떠올렸다.

"그런데 정액을 채취하고도 유전자 분석을 못한 이유는 뭐래?"
"여자는 유일하게 교살(絞殺)되었다고 합니다. 나머지 3명의 희생자들과는 달리 목이 졸려 죽은 것이지요. 범인은 희생자와 성관계를 강제로 맺은 후 죽였답니다. 희생자와 범인의 혈액형이 같은 데다 질액과 정액이 뒤엉켜 있어 범인의 것만 따로 분리, 추출하지 못하는 모양입니다."

"구식 장비를 쓰고 있나 보군. 하기야 얼마 전만 해도 남한도 그랬으니까. 내일이라도 당장 채취물을 서울로 보내야 하겠네."

북한은 합동수사대를 결성할 때 수사의 경위를 발표하지 않는다는 조건을 제시했었다. 범죄에 관한 내용 일체를 공표하지 않는 북한이었다. 북한의 신문· 방송 등에서는 범죄 사건에 대한 보도가 전혀 없다고 했다. 그러므로 북한 범죄의 실상은 물론 계량화된 통계를 알 수 없었다. 그러나 북한 사람이라고 해서 욕망이 없을 수는 없다. 사람이 사는 곳이니 사회 규범에서 일탈된 행동이 있으리라는 것은 쉬 알 수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사유재산이 없는 나라의 범죄 발생은 현저히 적을 수밖에 없다. 그 동안 발생한 범죄도 매우 단순했을 터였다. 자본주의 국가에서처럼 참혹한 강간살인이나 연쇄살인 같은 게 있었는지 알 수 없었다. 그런 가운데 글씨가 쓰인 네 구의 사체가 잔인하게 묶인 채 발견되었다.

게다가 여자 희생자의 몸에는 강간의 흔적까지 있었으니 북한 당국이 받은 충격은 능히 짐작할 수 있었다. 아마 북한에는 정액에서 유전자를 분석하는 장비가 아예 없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남한도 화성연쇄살인범의 정액반(피해자의 옷 등에 묻은 정액)을 처음 채취했을 당시, 장비가 없어 일본에 가져가 유전자를 분석했었다.

저녁 식사를 마친 후 조수경은 유천일이 가져온 서류를 김인철에게 건넸다.

"나는 먼저 이 디스켓을 검토할게. 후배는 먼저 서류 기록을 읽어. 다 읽으면 내 방으로 연락을 줘요. 바꿔 보아야 하니까."

조수경은 트렁크에서 꺼낸 노트북에 유천일이 놓고 간 디스켓을 넣었다. 두 사람은 거의 밤을 새우면서 모든 서류 기록과 디스켓을 검토했다.
#인민보안성 #유전자분석 #정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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