얄궂은 한자말 덜기 (86) 완전

[우리 말에 마음쓰기 791] '완전히 익지 않은'과 '다 익지 않은'

등록 2009.11.05 11:52수정 2009.11.05 1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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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완전히 익지 않은

 

.. 열매가 아직 노란 것을 보니 완전히 익지 않은 모양이었다 ..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자연일기>(마가렛 쇼/이혜경 옮김,해바라기,2004) 22쪽

 

 "노란 것을 보니"는 "노란 모습을 보니"나 "노란 빛을 띠고 있으니"나 "노란 빛깔이니"나 "노라니까"로 다듬어 봅니다.

 

 ┌ 완전(完全) : 필요한 것이 모두 갖추어져 모자람이나 흠이 없음

 │   - 금융 시장의 완전 개방 / 노사 분규 완전 타결

 │

 ├ 완전히 익지 않은

 │→ 다 익지 않은

 │→ 제대로 익지 않은

 │→ 맛있게 익지 않은

 │→ 알맞게 익지 않은

 │→ 먹을 만큼 익지 않은

 └ …

 

 한자말 '완전'을 풀이하는 말을 보면 "모두 갖추어져 모자람이나 흠이 없음"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와 뜻이 같은 토박이말 '빈틈없다'를 풀이하는 말을 보면 "허술하거나 부족한 점이 없다"로 되어 있습니다.

 

 한자말 '완전' 풀이에서는 '모자람-흠'이 보이고, 토박이말 '빈틈없다' 풀이에서는 '허술하다-부족하다'가 보입니다. 서로 엇갈리는 풀이말 씀씀이인데, '모자람'과 '부족(不足)'은 뜻이 같은 낱말입니다. 하나는 토박이말이요 하나는 한자말입니다. '흠(欠)'과 '허술함' 또한 뜻이 같은 낱말입니다. 하나는 한자말이고 하나는 토박이말입니다.

 

 그러니까, '빈틈없다-모자라다-허술하다'는 토박이말 갈래이고, '완전하다-부족하다-흠'은 한자말 갈래인 셈입니다. 굳이 토박이말 가르고 한자말 갈라야 할 까닭이 없습니다만, 우리들은 익히 쓰는 말마디가 어디에서 비롯하고 어떻게 짜여 있으며 어떤 모습으로 엮여 있는지 헤아리지 못한다 하겠습니다. 꼭 한자말을 쓰지 말아야 한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스스로 예부터 "완전 : 있을 것이 모두 갖추어져 모자람이나 허술함이 없음"처럼 국어사전 말풀이를 달아 놓을 수 있었지만, 이렇게 국어사전 말풀이를 달고자 애쓴 적이 없다는 소리입니다.

 

 ┌ 그 일은 완전히 끝냈다

 │→ 그 일은 모두 끝냈다 / 그 일은 빈틈없이 끝냈다 / 그 일은 말끔히 끝냈다

 ├ 지난번 일로 두 사람은 완전히 갈라섰다

 │→ 지난번 일로 두 사람은 아주 갈라섰다

 │→ 지난번 일로 두 사람은 남남으로 갈라섰다

 ├ 몸을 완전히 드러내 놓는 것도 아니며

 │→ 몸을 모두 드러내 놓지도 않았으며

 │→ 몸을 다 드러내 놓지도 않았으며

 │→ 몸을 송두리째 드러내 놓지도 않았으며

 └ …

 

 우리가 쓰는 말이든, 이웃나라 중국과 일본이 쓰는 말이든, 멀리 미국이나 유럽에서 쓰는 말이든, 빈틈 하나도 없이 옹글지는 않다고 느낍니다. 어느 나라 말이든 빈틈이 있습니다. 빈틈이 있기 때문에 새로 태어나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새로운 말마디를 빚어냅니다. 나라밖 사람들이 쓰는 말마디를 받아들이기도 합니다.

 

 새로운 말마디는 또다른 새로운 말마디를 빚기도 하고, 바깥에서 들여온 말을 바탕으로 우리 삶터에 걸맞을 새말을 일구기도 합니다. 생각해 보면, 저는 '새말'이라 하지만 학자들은 '신어(新語)'나 '신조어(新造語)'라 합니다. 저는 '옛말'과 '입말'이라 하지만, 학자들은 '고어(古語)'와 '구어(口語)'라 합니다. 제가 인터넷 개발업자라 한다면, 게시판에 새글이 뜰 때에 '새글-새-ㅅ' 같은 말마디를 무늬그림으로 넣어 뜨도록 할 텐데, 오늘날 거의 모든 인터넷 개발업자들은 'new-n' 두 가지만을 쓰고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 우리 말로 우리 삶을 이야기하려 하지 않는다고 할까요. 모자라든 허술하든 어줍잖든 어설프든, 우리 나름대로 우리 모양새를 우리 말로 가리킬 수 있지만, 우리는 우리 모양새를 우리 말마디로 가리키는 일이 드물다고 할까요.

 

 상을 주는 일이니 "상을 준다"나 "상주다"라 하면 되지만, 꼭 한자로 옮겨 '수상(授賞)'처럼 적으려 하니까, "상을 수상하다"라는 겹말이 끊이지 않습니다. 또한, '수상(受賞)'하고 헷갈리는 일까지 있습니다.

 

 ┌ 완전한 제품 → 빈틈없는 제품 / 훌륭한 제품 / 옹근 제품

 ├ 맡은 일을 완전하게 수행하다

 │→ 맡은 일을 빈틈없이 해내다 / 맡은 일을 훌륭히 해내다

 ├ 세상에 완전한 사람이 과연 있을까

 │→ 세상에 빈틈없는 사람이 참으로 있을까

 │→ 세상에 모자람 없는 사람이 참말로 있을까

 │→ 세상에 모두 갖춘 사람이 그예 있을까

 └ …

 

 이 나라 학교 얼거리를 돌아보면, 초등 여섯 해와 중고등 여섯 해를 의무로 다녀야 합니다. 저도 열두 해를 의무학교로 다녔습니다. 이 열두 해를 돌이키면, 꽤나 오래오래 '국어'를 배웠습니다. 흔히 국영수라고 하며 반드시 잘 익힐 과목이라 했는데, 잘 익혀야 하는 시험과목으로서 국영수를 배우기만 했을 뿐, 한국사람으로서 한국 이웃하고 한국말을 슬기롭고 알차고 아름답게 주고받는 길을 다스리는 국영수를 배운 일은 한 번도 없습니다.

 

 그래서 '완전'이라는 말마디 하나를 놓고도 이 말마디를 얼마나 쓸 만한지 따지는 국어 교사란 아무도 없었고, '완전'이라는 말마디가 어떻게 짜였는가를 헤아린 국어 교사 또한 아무도 없었습니다. 우리 말에 '옹글다'가 있어 예부터 으레 써 왔음을 가르쳐 준 사람 또한 없었습니다. 교과서에 적힌 지식을 우리들이 얼마나 머리속에 집어넣느냐만 따졌습니다. 국민학교 3학년엔가 '국어사전 찾아보는 법'을 처음 배운 적이 있습니다만, 국어사전을 어떻게 읽고 삭이고 바라보고 생각해야 하는가를 이야기한 국어 교사는 없었습니다. 오늘날은 있을까요? 오늘날 국어 교사는 우리 국어사전이 어떻게 짜여 있고 풀이말과 보기글 씀씀이가 어찌어찌 되어 있는가를 낱낱이 살피고 있을까요?

 

 ┌ 열매가 아직 노라니까 옹글게 익지 않은 모양이었다

 ├ 열매가 아직 노라니 익으려면 먼 모양이었다

 ├ 열매가 아직 노란빛이니 더 있어야 익을 모양이었다

 └ …

 

 학교에서 옳고 바르게 옹근 우리 말글을 가르치지 못한다면, 집에서 어버이가 가르쳐 주어야 합니다. 어머니와 아버지가 먼저 옹근 교사가 될 수 있어야 합니다. 어버이 스스로 옹글게 마음밭을 다스리고 생각밭을 추슬러서 아이들이 옹근 꿈을 건사할 수 있도록 이끌어야 합니다.

 

 옹근 삶에 옹근 생각이요 옹근 말입니다. 허술한 삶에 허술한 생각이요 허술한 말입니다. 다부진 삶에 다부진 생각이요 다부진 말입니다. 가냘픈 삶에 가냘픈 생각이요 가냘픈 말입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hbooks.cyworld.com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2009.11.05 11:52ⓒ 2009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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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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