ㄱ. 이중적 과제
.. 하나는 일본 사회운동 속으로 들어가 계급 해방과 민족 해방이라는 이중적 과제를 함께 해결하려 한 형태다 .. <우리는 조센진이 아니다>(김인덕,서해문집,2004) 48쪽
"사회운동 속으로"는 "사회운동에 깊이"로 다듬어야 알맞습니다만, 이런 말씀씀이를 옳게 가누는 분은 그리 안 많습니다. '해결(解決)하려'는 '풀려'로 손보고, '형태(形態)'는 '모습'으로 손봅니다.
┌ 이중적(二重的) : 이중으로 되는
│ - 이중적 관계 / 이중적 성격 / 이중적인 자세 / 이중적인 태도
├ 이중(二重)
│ (1) 두 겹
│ - 이중 삼중으로 겹쳐 들려오는 소리
│ (2) 두 번 거듭되거나 겹침
│ - 이중 결혼 / 이중 번역 / 세금을 이중으로 내다
│
├ 민족 해방이라는 이중적 과제
│→ 민족 해방이라는 이중 과제
│→ 민족 해방이라는 두 가지 과제
│→ 민족 해방이라는 두 과제
└ …
"이중으로 되는"을 가리키는 '이중적'이라 하고, '이중'이란 "두 겹"을 가리킨다고 합니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두 겹"을 '두 겹'으로 적는 일이 드물고, "세 겹"을 '세 겹'으로 적는 일 또한 드뭅니다. 왜 그러느냐 하면, 우리는 으레 '삼겹살'이나 '오겹살'이라 할 뿐, '세겹살'이나 '닷겹살'이라 하지 않거든요.
"두 겹"이니 말 그대로 '두겹'으로 적으면 되고, "세 겹"일 때에는 '세겹'으로 적으면 되지만, 이렇게 적지 않는 가운데 '이겹-삼겹-사겹-오겹'이 쓰이고, '이중-삼중-사중-오중' 같은 말마디만 널리 퍼져 나갑니다.
다만, 이 보기글에서나 다른 보기글에서나 '이중적'을 '두 겹'으로 풀어내 보면 썩 알맞지 않습니다. '-적'만 덜어낸 '이중'으로 적을 때가 한결 어울린다고 느낍니다. 그리고 '두'만 넣어 "두 관계"나 "두 성격"처럼 다듬을 수 있고, '두 가지'나 '두 갈래'를 넣어 "두 가지 얼굴"이나 "두 가지 성격"이나 "두 갈래 관계"나 "두 갈래 성격"처럼 다듬어도 잘 어울립니다.
┌ 이중적 관계 → 이중 관계 / 두 관계 / 두 갈래 관계
├ 이중적 성격 → 이중 성격 / 두 성격 / 두 얼굴
├ 이중적인 자세 → 이중 자세 / 두 가지 매무새 / 사뭇 다른 매무새
└ 이중적인 태도 → 이중 태도 / 두 가지 몸짓 / 엇갈린 몸가짐
생각해 보면, 우리가 "이중적 관계"라 하거나 "이중 관계"라 하거나 그리 다른 뜻이 아닙니다. "이중적 성격"이라 할 때하고 "이중 성격"이라 할 때하고 동떨어진 뜻이 아니에요. 어느 자리로 보나 '-적'은 군더더기입니다. 괜히 붙인 말투이고, 알맞지 못한 진드기라 할 만합니다.
ㄴ. 이중적인 잣대
.. 그러나 자신들은 전혀 잘못이 없다는 이중적인 잣대가 나를 불쾌하게 했다 .. <나는 봄꽃과 다투지 않는 국화를 사랑한다>(이유진,동아일보사,2001) 253쪽
'전(全)혀'는 '조금도'나 '하나도'로 손질해 줍니다. '불쾌(不快)하게 했다'는 '기분 나쁘게 했다'나 '언짢게 했다'로 다듬을 수 있습니다. "내 이맛살을 찌푸리게 했다"로 풀어도 괜찮습니다.
┌ 이중적인 잣대가
│
│→ 이중 잣대가
│→ 어긋난 잣대가
│→ 제멋대로 잣대가
│→ 편가르기 잣대가
└ …
두 가지 잣대라는 '이중적' 잣대인데, 이런 잣대는 올바르지 못한 잣대이니 '어긋난' 잣대라 할 수 있습니다. 어긋난 잣대란, 이럴 때에는 이렇게 저럴 때에는 저렇게 마구잡이로 바뀌는 잣대이기도 하니 '제멋대로' 잣대라고도 하겠지요.
제멋대로 휘두르는 잣대는 네 편과 내 편을 나누어 내 편한테만 좋도록 하는 잣대이기도 하기에 '편가르기' 잣대가 되곤 합니다. 이런 모습을 가리켜 "뚱딴지 같은 잣대"나 "말도 안 되는 잣대"나 "터무니없는 잣대"처럼 나타내 볼 수 있습니다.
ㄷ. 이중적으로 행동
.. 아이들은 이렇게 교실에서 점점 가면을 쓰고 이중적으로 행동하고 있다 .. <이 선생의 학교폭력 평정기>(고은우,김경욱,윤수연,이소운,양철북,2009) 244쪽
'점점(漸漸)'은 '조금씩'이나 '차츰'이나 '나날이'로 다듬고, '가면(假面)'은 '탈'이나 '껍데기'로 다듬어 줍니다. '행동(行動)하고'는 '지내고'나 '살고'로 손봅니다.
┌ 이중적으로 행동하고 있다
│
│→ 겉과 속이 다르게 지내고 있다
│→ 두 얼굴로 지내고 있다
│→ 두 모습으로 지내고 있다
└ …
탈을 쓰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두 가지 얼굴로 살아갑니다. 겉으로 보이는 얼굴과 속에 감춘 얼굴이 따로 있는 채 살아갑니다. 퍽 예전에 〈두 얼굴의 사나이〉라는 연속극이 나온 적이 있는데, 이 연속극 이름 그대로 "두 얼굴로" 살아가는 사람들이요, "두 모습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며, "두 몸짓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 이중적 행동 (x)
└ 이중 행동 (o)
우리 삶이 곧은 한길이 못 되면서 두 갈래일 때, 또는 두 모습일 때에는 우리 생각 또한 곧게 한길로 모두지 못하면서 두 갈래가 되곤 합니다. 생각이 둘로 쪼개지고 셋으로 갈리며 넷으로 엇갈릴 때에는, 우리 생각을 담아내는 말마디 또한 둘이며 셋이며 넷으로 뒤죽박죽 갈팡질팡이 됩니다. 손쉽게 나타내면 될 말을 손쉽게 나타내지 못하고, 꾸밈없이 나눌 말을 꾸밈없이 나누지 못해요. 차근차근 가다듬어야 할 말을 차근차근 가다듬지 못하며, 올바르게 추스를 말을 올바르게 추스르지 못합니다. "이중 언어"라고도 하는데, "두 말"을 쓰는 우리일 뿐 아니라 "세 말"을 쓰는 우리가 되고, "네 가지 말"이나 "다섯 갈래 말"을 쓰는 우리가 되기도 합니다.
┌ 두 가지 행동
├ 두 가지 몸짓
├ 두 갈래 몸가짐
├ 두 갈래 모습
└ …
책상이면 '책상'인데 '탁자'에다가 '테이블'을 다시 끌어들이는 말씀씀이가 '두겹말'입니다. 책을 '책' 아닌 '冊'으로 적거나 '書籍'이라 하거나 'book'이라 적으면서 '책잔치'를 '도서전'이나 '북페스티벌'이나 '북쇼'라 읊는 일 또한 '두겹말' 또는 '세겹말'입니다.
나라는 한 나라요 겨레도 한 겨레라 하지만, 정작 우리가 쓰는 말은 한 말이 아닌 두 말이나 세 말이기 일쑤입니다. 때로는 네 말이나 다섯 말이 됩니다. 우리한테 우리 줏대가 없기 때문일까요. 우리한테 우리 넋이 튼튼히 있지 못한 탓일까요. 예부터 중국바라기와 일본바라기를 거쳐 서양바라기나 미국바라기로 흐르는 우리 삶을 어찌할 수 없는 노릇이라서 그러할까요.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hbooks.cyworld.com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2009.11.12 18:00 | ⓒ 2009 OhmyNews |
|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