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369)

― '사람의 소통의 문제', '주위의 청인들의 발언' 다듬기

등록 2009.12.20 18:10수정 2009.12.20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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ㄱ. 사람의 소통의 문제

 

.. 그러나 당연한 얘기지만, 성관계라는 것은 성기의 결합이 아닌, 사람과 사람의 소통의 문제인 것이다 ..  《안미선-내 날개 옷은 어디 갔지?》(철수와영희,2009) 144쪽

 

 '당연(當然)한'은 '마땅한'으로 다듬고, "성관계(性關係)라는 것은"은 "성관계란"이나 "사랑놀이란"이나 "사랑이란"으로 다듬으며, "성기(性器)의 결합(結合)이 아닌"은 "성기가 만나는 일이 아닌"이나 "성기를 맞대는 일이 아닌"이나 "자지보지를 섞는 일이 아닌"이나 "살을 섞는 일이 아닌"으로 다듬어 봅니다. "소통(疏通)의 문제(問題)인 것이다"는 "소통하는 문제이다"나 "만나는 일이다"나 "어우러지는 일이다"로 손질해 줍니다.

 

 ┌ 사람과 사람의 소통의 문제인 것이다

 │

 │→ 사람과 사람이 소통하는 문제이다

 │→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일이다

 │→ 사람과 사람이 사귀는 일이다

 │→ 사람과 사람이 이어지는 일이다

 │→ 사람과 사람이 어우러지는 일이다

 └ …

 

 살을 섞어야만 사랑이고 살을 섞지 않으면 사랑이 아닐 수 없습니다. 아이를 낳아 길러야만 사랑이며 아이를 낳아 기르지 않으면 사랑이 아닐 수 없습니다. 사랑은 섣불리 재거나 따질 수 없으며, 함부로 굴리거나 값매길 수 없습니다. 넉넉해도 사랑이고 모자라도 사랑입니다. 따스해도 사랑이며 서늘해도 사랑입니다. 내 아이한테도 사랑이지만, 다른 아이한테도 사랑입니다.

 

 ┌ 사람과 사람 사이를 맺는 일

 ├ 사람과 사람 사이에 다리를 놓는 일

 ├ 사람과 사람으로 받아들이는 일

 ├ 사람과 사람으로 헤아리는 일

 └ …

 

 이 보기글을 곰곰이 짚어 봅니다. 많이 배운 분들은 으레 이렇게들 글을 쓰고 말을 합니다만, 굳이 이렇게들 글을 쓰거나 말을 해야 하는지 궁금합니다. 좀더 푸근하거나 손쉽게 풀어내어, "마땅한 얘기이지만, 성관계란 살섞기가 아닌, 마음섞기이다"라든지, "마땅한 얘기이지만, 사랑이란 살만 섞는다고 되지 않고, 마음을 섞어야 된다"라고 적어 보면 어떠했을까 싶습니다. "사랑이란 살섞기로만 이루어지지 않고, 마음을 고루 섞을 때 이루어진다"처럼 적어 보아도 됩니다.

 

 무슨 말을 하려고 했는지 찬찬히 헤아리면서, 내 느낌과 내 마음과 내 넋과 내 뜻을 또렷하게 담아내는 말길을 틀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ㄴ. 주위의 청인들의 발언

 

.. 그러나 나는 청인인 만큼 주위의 청인들의 몰이해한 발언이 전부 내 귀에 들려온다 ..  《아키야마 나미,가메이 노부다카/서혜영 옮김-수화로 말해요》(삼인,2009) 86쪽

 

 '주위(周圍)'는 '둘레'로 다듬고, '몰이해(沒理解)한'은 '생각없는'이나 '철없는'으로 다듬습니다. '발언(發言)'은 '말'이나 '이야기'로 손질하고, '전부(全部)'는 '모두'나 '모조리'나 '낱낱이'나 '죄다'로 손질해 줍니다.

 

 ┌ 주위의 청인들의 몰이해한 발언이

 │

 │→ 주위 청인들 몰이해한 말이

 │→ 둘레 청인들이 생각없이 내뱉는 말이

 │→ 둘레 청인들이 함부로 뇌까리는 말이

 └ …

 

 국어사전에는 '청인'이라는 낱말이 따로 안 실려 있습니다. 아마, 일본사람이 지은 한자말이 아닌가 싶습니다. '농인(聾人)' 같은 낱말은 으레 쓰곤 하는데, 곰곰이 따지면 장애가 있는 사람을 가리키는 낱말은 어김없이 있어도, 장애가 없는 사람을 가리키는 낱말은 따로 없습니다. 듣지 못하는 사람을 가리키며 '귀머거리'라 하는데, 거꾸로, 들을 수 있는 사람을 가리키는 낱말은 없어요.

 

 어쩌면, '귀머거리인 사람보다 귀머거리 아니라 하는 사람'이 훨씬 많을 뿐 아니라, '귀머거리인 사람이 귀머거리인 사람과 똑같이 사랑을 받고 따순 손길을 받을 수 있지 않은' 우리 터전인 만큼, 굳이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사람은 따로 아무런 이름을 붙여 주지 않아도 괜찮다고 여겼는지 모릅니다. 말을 못하는 사람은 '벙어리'인데, 말을 하는 사람한테는 아무런 이름이 없어요.

 

 '청인'이란 '聽人'입니다. 우리 말로 치자면 '소리사람'입니다. 소리를 듣는 사람이니까 말 그대로 소리사람입니다. 아직 우리한테는 마땅한 새말이 없다고 할 수 있는 만큼, 꼭 일본 한자말로 '청인'을 받아들이기 앞서 우리 깜냥껏 우리 이름을 지어 줄 수 있습니다. 말을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손짓으로 주고받는 말을 가리켜 한자말로 '手話'라고 하는데, 손짓으로 말을 주고받는 사람들 사이에서 드문드문 '손말'이라고 가리키곤 합니다. 말 그대로 손을 써서 하는 말이니 '손말'입니다. 손이 아닌 온몸을 써서 이야기를 주고받고자 한다면 '몸말'이 될 테고, 소리를 듣고 말을 할 줄 아는 사람들이 입으로 읊는 말이라 한다면, 이 또한 '입말'이 됩니다.

 

 ┌ 둘레에 있는 '들을 수 있는 사람들'이 읊는 막말

 ├ 내 둘레 '들을 수 있는 사람들'이 철없이 떠드는 말

 ├ '들을 수 있는 사람들'이 이곳저곳에서 볼성사납게 지껄이는 말

 └ …

 

 적잖은 사람들이 '귀머거리'나 '장님' 같은 낱말을 '서로를 푸대접한다'고 느껴 '청각 장애인'과 '시각 장애인' 같은 낱말을 새로 지어서 쓰곤 합니다. 장애자라는 낱말은 '-자'를 '-인'으로 바꾸다가 '-우'로 한 번 더 바꾸어 쓰곤 합니다. 말마디 하나에 더 마음을 쏟아 주니 어느 한편으로는 고마운 노릇입니다. 그러나, 말마디 가다듬기에는 마음을 쏟아도, 정작 우리가 살아가는 가운데 서로를 따뜻한 이웃으로 여기는 데에는 마음을 쏟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는지 모르겠습니다. 우리 스스로 우리 삶터를 학력 차별, 재산 차별, 얼굴과 몸매 차별, 동네 차별, …… 갖가지 편가르기와 금긋기를 하고 있는데, 말마디만 가다듬으면 무엇이 이루어지는지 궁금합니다. 아니, 말마디 가다듬기라고 해 보아야, 이 한자말에서 저 한자말로 옮겨타기만 하는 판인데, 이런 시늉 저런 몸짓으로 우리 삶터가 얼마나 어떻게 달라질는지 궁금합니다.

 

 우리는 우리 삶터를 제대로 들여다보고 있을까요? 우리는 우리 스스로 우리 사는 모양대로 이루어지는 우리 삶터를 있는 그대로 깨달으면서 하루하루 힘쓰고 있을까요?

 

 ┌ 나는 소리를 들을 수 있는 만큼 사람들이 함부로 내뱉는 말이 모두 들린다

 ├ 나는 소리를 들으니까 옆에서 멋대로 떠드는 말이 죄다 들린다

 ├ 나는 소리를 듣기 때문에 둘레에서 버릇없이 조잘대는 말이 모조리 들린다

 └ …

 

 좀더 옳은 일에 우리 슬기를 모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좀더 나은 놀이에 우리 웃음을 모둘 수 있으면 반갑겠습니다. 좀더 사랑스러운 터전을 일구도록 우리 손을 맞잡을 수 있으면 고맙겠습니다. 좀더 넉넉하며 아름다운 넋을 가꾸는 길에 우리 믿음을 함께할 수 있으면 기쁘겠습니다.

 

 우리 스스로 하루하루 한결 좋은 사람으로 달라지도록 애쓸 때, 어떤 편가르기나 금긋기도 이곳에 깃들지 못합니다. 우리 스스로 나날이 한결 멋진 사람으로 거듭나도록 힘쓸 때, 삶과 생각을 비롯해 말과 글이 튼튼하고 싱그럽게 뿌리를 내립니다.

 

 애쓰는 사람한테 찾아가는 사랑이고, 힘쓰는 사람한테 다져지는 믿음입니다. 애쓰는 사람만이 아름다운 말을 나누고, 힘쓰는 사람만이 믿음직한 글을 씁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누리집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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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2.20 18:10ⓒ 2009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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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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