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말 '존재'가 어지럽히는 말과 삶 (53)

[우리 말에 마음쓰기 845] '중요한 존재였고', '어떤 존재일까' 다듬기

등록 2010.01.24 13:07수정 2010.01.24 1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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ㄱ. 중요한 존재였고

 

.. 세 분의 여성들이 그만큼 나에게 중요한 존재였고, 이 글의 중심적 인물들이기에 여기서 잠시 그분들을 소개하기로 한다 ..  <김기창-나의 사랑과 예술>(정우사,1977) 31쪽

 

"세 분의 여성"은 "세 분 여성"이나 "세 여성"으로 다듬습니다. '중요(重要)한'은 그대로 두어도 되나, 이 자리에서는 '큰'이나 '고마운'이나 '보배 같은'으로 손질해 봅니다. "이 글의 중심적(中心的) 인물(人物)들이기에"는 "이 글에서 빼놓을 수 없는 사람들이기에"나 "이 글에서 큰 자리를 차지하는 사람들이기에"로 손보고, '잠시(暫時)'는 '잠깐'이나 '살짝'으로 손보며, '소개(紹介)하기로'나 '이야기하기로'로 손봅니다.

 

 ┌ 중요한 존재였고

 │

 │→ 중요한 분이었고

 │→ 큰 사람들이었고

 │→ 애틋한 어른들이었고

 │→ 고마운 분들이었고

 │→ 보배 같은 분들이었고

 └ …

 

세 '여성'은 중요한 '존재'이면서 중심이 되는 '인물'이고, 이리하여 '그분'들을 따로 소개한다고 하는 보기글입니다. '여성 = 존재 = 인물 = 그분'입니다. 글 한 줄에서 같은 사람들을 네 가지로 가리켜 보였습니다.

 

이처럼 다 다른 낱말로 다 같은 사람을 나타내는 일은 재미있습니다. 남다르기도 합니다. 다만, 다 달리 쓰려는 몸짓만큼 좀더 들여다보고 살피는 눈매를 키울 수 있다면 더 나았으리라 봅니다. 조금 더 곱씹고 한 번 더 돌아보았으면 한결 낫지 않았으랴 싶습니다.

 

우리 둘레를 차분히 살피면 좋겠습니다. 우리 이웃을 더욱 따스하게 껴안으며 살아간다면 좋겠습니다. 우리 이웃을 따스하게 껴안듯 우리 말글을 따스하게 보듬고, 우리 이웃과 살가이 어울리듯 우리 말글을 살가이 나눌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 사랑스러운 버팀나무였고

 ├ 믿음직한 기둥이었고

 ├ 우러러보이는 큰 나무였고

 └ …

 

사랑스럽고 믿음직하고 듬직하고 고맙고 애틋한 분들을 나타낼 말은 몇 마디 꾸밈말로는 모자라다고 느끼곤 합니다. 여러 가지 꾸밈말을 붙여 보지만 아쉽다고 느끼곤 합니다. 그래도 저마다 제 깜냥껏 가슴으로 파고드는 느낌 한 자락이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이 느낌을 고이 살피고 어루만지면서 살며시 풀어내 본다면, '존재' 같은 얕은 우물에서 벗어나 한껏 너르고 깊은 바다와 같은 이름 하나 스스로 찾을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사랑스러운 버팀나무"요 "믿음직한 기둥"이고 "우러러보이는 큰 나무"이면서 "듬직한 디딤돌"인 가운데 "든든한 울타리"입니다. "너른 바다"이고 "깊은 바다"이며 "드넓은 하늘"이요 "넉넉한 하늘"입니다.

 

말이 풀려나자면 우리 생각이 먼저 풀려나야 합니다. 우리 생각이 풀려나자면 우리 삶이 먼저 풀려나야 합니다. 차근차근 가다듬으면서 하나하나 껴안는다면 좋겠습니다. 우리 삶을 알뜰살뜰 풀어내면서 우리 넋과 우리 말을 가만가만 보듬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ㄴ. 어떤 존재일까

 

.. 사람들에게 나는 어떤 존재일까? 보잘것없는 사람, 괴팍스러운 사람, 불쾌한 사람일 거야 ..  <빈센트 반 고흐/박홍규 옮김-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편지>(아트북스,2009) 235쪽

 

'괴팍(乖愎)스러운'은 '까다로운'이나 '보기 싫은'이나 '꺼려지는'으로 다듬어 봅니다. "불쾌(不快)한 사람일 거야"는 "짜증스러운 사람일 테야"나 "싫은 사람일 테지"로 손질합니다.

 

 ┌ 어떤 존재일까?

 ├ 보잘것없는 존재

 ├ 괴팍스러운 존재

 └ 불쾌한 존재

 

보기글에서는 첫 대목에서만 '존재'라 적고, 다음 대목에서는 '사람'으로 적습니다. 처음이든 둘째이든 셋째이든 넷째이든 모두 '존재'로 적을 수 있었을 텐데, 그나마 맨앞만 '존재'로 적었으니 한결 낫다고 할 터이나,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사람'으로 적을 수 있었습니다.

 

 ┌ 어떤 사람일까?

 ├ 보잘것없는 사람

 ├ 괴팍스러운 사람

 └ 불쾌한 사람

 

있는 그대로이고 느낌 그대로입니다. 보는 그대로이고 살아가는 그대로입니다. 거짓없는 그대로이고 숨김없는 그대로입니다. 내 느낌 그대로 나타내고, 내 마음 고스란히 담아냅니다.

 

 ┌ 사람들한테 나는 어떤 어떤 느낌일까?

 ├ 사람들은 나를 어떻게 느낄까?

 ├ 사람들은 나 같은 사람을 어떻게 느낄까?

 ├ 사람들은 나 같은 놈을 어찌 생각할까?

 └ …

 

나타내고자 하는 생각을 거리낌없이 나타내면 됩니다. 보여주고자 하는 이야기를 스스럼없이 보여주면 됩니다. 내 느낌을 선선히 말하고, 네 느낌을 기꺼이 들으면 됩니다.

 

보잘것없어 보이니 보잘것없어 보인다 말할 뿐이요, 보기 싫으니 보기 싫다고 말할 뿐입니다. 속내를 못 보고 겉모습만 보면서 말한다면, 듣는 쪽에서는 서글프지만, 어차피 속내를 못 읽는 사람한테 이러쿵저러쿵 떠들어 보았자 한귀로 흘리겠지요. 속내를 읽는 사람한테는 이러쿵저러쿵 토를 달지 않아도 넉넉하고 기쁘게 헤아리거나 받아들이는 매무새가 있을 테지요.

 

남 앞에서 예뻐 보이려고 꾸민다고 해서 내 삶이 예뻐지지는 않습니다. 보이기는 예쁠는지 모르나, 삶은 다른 테두리에서 예쁘게 될 뿐입니다. 말 아닌 몸짓으로, 겉껍데기 아닌 알맹이로, 눈어림 아닌 마음읽기로.

덧붙이는 글 | - 글쓴이 누리집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cafe.naver.com/hbooks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 글쓴이가 쓴 ‘우리 말 이야기’ 책으로,
<생각하는 글쓰기>가 있고,
<우리 말과 헌책방>이라는 1인잡지가 있습니다.

2010.01.24 13:07 ⓒ 2010 OhmyNews
덧붙이는 글 - 글쓴이 누리집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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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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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 #한자 #우리말 #한글 #국어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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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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