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정래의 집을 담 너머로 몰래 훔쳐보다

[바이크올레꾼 길 따라 남도마을여행 11] 그래서 아직 그곳은 먼 길

등록 2010.01.27 16:21수정 2010.01.27 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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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보성군 벌교읍에 있는 소설 태백산맥문학관입구, 그곳엔 '문학은 인간의 인간다운 삶을 위해 인간에게 기여해야 한다'고 적혀있다

보성군 벌교읍에 있는 소설 태백산맥문학관입구, 그곳엔 '문학은 인간의 인간다운 삶을 위해 인간에게 기여해야 한다'고 적혀있다 ⓒ 서정일

보성군 벌교읍에 있는 소설 태백산맥문학관입구, 그곳엔 '문학은 인간의 인간다운 삶을 위해 인간에게 기여해야 한다'고 적혀있다 ⓒ 서정일

'문학은 인간의 인간다운 삶을 위하여 인간에게 기여해야 한다' 보성군 벌교읍에 있는 작가 조정래의 <소설 태백산맥 문학관> 입구 벽면에 새겨진 글이다. 이 글은 조 작가가 입버릇처럼 말하던 것으로 그의 철학인 '인간을 향한 한없는 사랑'을 그대로 표현해주고 있다.

 

필자는 그 문구가 새겨진 벽면 앞에 애마 노쇠난테(필자의 바이크)를 세워놓고 사진 한 장을 찍었다. "노쇠난테, 너는 이 지역의 가치를 발견해 그것을 지역민에게 돌려주는 줘 그들이 아름다운 삶을 살 수 있도록 기여해야 한다"는 당부의 말까지 남기면서...

 

그리고 바로 옆 소화의 집 앞에 서 있는 소설 태백산맥 관광안내도로 향했다. 굳이 태백산맥 문학관 내부를 비켜가는 것은 그동안 숱하게 드나들기도 했기 때문이지만 '모든 것은 현장에서 이뤄진다'는 필자의 개똥철학 때문이기도 했다.

 

a  태백산맥 문학관 앞 소화의 집 옆에 소설 태백산맥 관광안내도가 있다

태백산맥 문학관 앞 소화의 집 옆에 소설 태백산맥 관광안내도가 있다 ⓒ 서정일

태백산맥 문학관 앞 소화의 집 옆에 소설 태백산맥 관광안내도가 있다 ⓒ 서정일

 

안내도는 흡사 벌교를 알려주는 일반관광 지도처럼 보였다. 소설 태백산맥이 구석구석 묘사해 놓지 않은 곳이 없기 때문에 따로 벌교 지도가 필요치 않을 정도로 세밀했다. 그 중에 눈에 들어오는 몇 군데를 콕 집어 머리에 담고 노쇠난테를 재촉했다.

 

홍교, 1728년 스님들이 만들었다는 다리다. 부용교, 일명 소화다리라고도 불리며 1931년 일본인에 의해 만들어졌다고 한다. 그리고 철다리, 1930년 경전선 철도가 부설되면서 놓인 다리다. 이제 끝이다 태백산맥문학 기행에서 볼 것 다 보고 느낄 것 다 느꼈으니 돌아가면 된다.

 

뭔 소린가 하고 의아해하겠지만 필자가 열거한 세 개의 다리 앞에서 그 의미를 되새기며 명상을 하면 그것이 10권으로 된 소설 태백산맥의 전부다. 다리가 이쪽과 저쪽을 이어주는 것처럼 소설 태백산맥도 이쪽과 저쪽을 잇기 위해 쓴 소설이다.

 

a  벌교 지역은 소설 태백산맥의 무대가 된다. 사진은 홍교위에서

벌교 지역은 소설 태백산맥의 무대가 된다. 사진은 홍교위에서 ⓒ 서정일

벌교 지역은 소설 태백산맥의 무대가 된다. 사진은 홍교위에서 ⓒ 서정일

홍교를 만든 스님들도 잇고자 했고 소화다리를 만든 일본인들도 잇고자 했다. 하지만 큰 차이점은 나를 위해 잇고자 했는가 남을 위해 잇고자 했는가에 있다. 물론 그 결과는 하늘과 땅 차이다.

 

소설 태백산맥도 뭔가를 잇고자 한 것인데 가장 기본적인 나와 너를 잇는 것으로 그것은 여건과 상황이 달라 서로 층이 져 있는 모든 상황을 불문하고 잇고자 한 것으로 해석된다. 남과 북도 너와 나이기에 포함된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아쉽다. 그렇게 모든 의미를 안고 있는 다리들이, 청자에 페인트 발라놓은 듯 복원해 놓은 홍교나 반질반질하게 콘크리트 발라놓은 소화다리나 보는 이들의 입에서 쓴 소리들이 난무하는 것을 보면 극장에서 화면 잘 보이게 한다고 불을 켜 놓은 격처럼 안타깝기 짝이 없다. 소설 태백산맥도 서로를 잇자는 좋은 뜻에 딴지를 거는 이들이 아직도 있다는 것이 안타깝다.

 

a  소설가 조정래가 유년시절을 보냈다는 조정래 고택은 문이 닫혀있고 예전에 있던 안내판까지 없어졌다. 필자는 할 수 없이 도둑처럼 바이크를 밟고 담장 너머 구경해야만 했다

소설가 조정래가 유년시절을 보냈다는 조정래 고택은 문이 닫혀있고 예전에 있던 안내판까지 없어졌다. 필자는 할 수 없이 도둑처럼 바이크를 밟고 담장 너머 구경해야만 했다 ⓒ 서정일

소설가 조정래가 유년시절을 보냈다는 조정래 고택은 문이 닫혀있고 예전에 있던 안내판까지 없어졌다. 필자는 할 수 없이 도둑처럼 바이크를 밟고 담장 너머 구경해야만 했다 ⓒ 서정일

 

여기에 관광지로는 좀 과하다는 느낌이 드는 것도 있다. 벌교읍 회정리 21-5번지, 조정래 선생의 고택이다. 그런데 문이 굳게 잠겨있어 필자는 노쇠난테(필자의 바이크)와 만난 이후 처음으로 그곳을 보기 위해 '그'를 밟고 섰다.

 

그런데 남들이 봤으면 도둑으로 오해하기 딱 좋았을 것이다. 안내표지판도 없는 일반 가정집을 바이크(오토바이)를 딛고 넘어가려는 폼을 잡고 기웃거렸기 때문이다. 사실 최근까지 이곳에는 안내 표지판이 있던 곳이었다.

 

담장 너머로 보이는 집은 슬레이트 지붕에 그저 평범한 집이었다. 하지만 그 집에서 50여 년 전쯤에 한 소년이 살았고 그가 성장해 갈등 속에 살아가는 서로를 잇기 위해 소설 하나를 썼는데 그것이 위대한 소설 태백산맥이었고 그 소년이 바로 조정래였다는 사실.

 

한참을 그렇게 담 너머 풍경을 감상하고 있었더니 여기저기서 동네 개들이 합창을 한다. 조정래 작가가 저 집에 살던 50여 년 전에도 옆집에 개가 살았을까? 조 작가는 개를 무서워했을까? 개 짖는 소리에 엉뚱한 상상을 하게 된다. 필자가 애지중지 아끼던 바이크를 최초로 짓밟고 올라서서 봤던 그 장소 조정래 고택.

 

a  소설 태백산맥의 무대를 돌아보는 것이 순탄치만은 않았다. 아직은 먼 길로 생각됐다

소설 태백산맥의 무대를 돌아보는 것이 순탄치만은 않았다. 아직은 먼 길로 생각됐다 ⓒ 서정일

소설 태백산맥의 무대를 돌아보는 것이 순탄치만은 않았다. 아직은 먼 길로 생각됐다 ⓒ 서정일

 

이제 좀 자질구레한 것을 보러 갈 차례다. 옹기종기 모여 있는 벌교의 본전통거리인데 그곳에는 금융조합이나 남도여관 등도 자리하고 있다. 하지만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한창 문학거리 정비로 인해 먼지만 뒤집어쓰고 말았다.

 

돌아보면 오늘 여정은 순탄치만은 않았다. 조정래 고택을 도둑처럼 담 너머 구경한 것도 모자라 식당에 들러 "밥 좀 먹을 수 있냐"고 구걸까지 했다. 내 돈 내고 밥 먹겠다는데도 1인분은 안된다고 내 쫓는 집을 세 군데나 들렀기 때문이다. 할 수 없이 좀 떨어진 곳에서 순두부백반을 시켜 점심을 때웠지만... 그래서 '아직 그곳은 먼 길'이란 생각이 들었다.

덧붙이는 글 | 남도TV에도 실렸습니다

2010.01.27 16:21ⓒ 2010 OhmyNews
덧붙이는 글 남도TV에도 실렸습니다
#바이크올레꾼 #태백산맥문학관 #벌교 #조정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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