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관 청와대 홍보수석.
남소연
그런데 요즘 '한 지붕 두 가족'인 집권여당에서 '친이'(친이명박)계와 '친박'(친박근혜)계가 싸우는 꼴을 보면 '동귀어진'이 남의 일이 아닌 것 같다. 하긴 중원을 장악한 현재 권력이 "잘되는 집안은 강도가 오면 싸우다가도 멈추고 강도를 물리치고 다시 싸운다"고 경고를 하기가 무섭게, TK(대구-경북)지역에 배수진을 친 미래 권력이 "집안에 있는 사람이 마음이 변해 갑자기 강도로 돌변한다면 어떡하느냐"고 카운터블로를 날리는 판이다.
이렇게 정치무림 최고문파의 장문인들이 직접 나서 말화살을 날리니 그 수하들은 더 방방 뛸 수밖에. 당시 자신의 실명을 내걸고 '박근혜 의원의 사과'를 요구하는 브리핑을 했던 이동관 청와대 홍보수석이 일요일인 지난달 28일 출입기자들과 산행을 함께한 후 점심식사 자리에서 급기야 "TK ×들, 정말 문제 많다"고 폭언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실이라면 막장 드라마를 능가하는 막장 초식이다.
청와대 출입기자들과 직원 등 20여 명이 함께 등산을 다녀와 반주를 곁들여 점심을 하는 자리였다. 이 수석의 막장 초식을 목격한 사람들의 진술은 다소 엇갈린다. 어떤 이는 "이 수석이 '써도 좋겠다'라는 전제를 하고 이야기한 것"이라며 "술자리 농담 비슷하게 얘기했지만 작심하고 말한 것처럼 들렸다"고 얘기하고, 어떤 이는 "상식적으로 기자들 앞에서 'TK 놈들'이라고 하면서 (기사로) 써도 좋다고 하는 '강심장'이 있겠냐"라고 반문했다.
그러자 대구가 지역구인 친박계의 이한구 의원은 2일 라디오방송에 출연해 "머슴이 주인 욕한 이동관 수석을 경질해야 한다"면서 "MB가 어떻게 처리할지, 대구경북 사람들이 주시할 것"이라고 오금을 박았다. 그의 '머슴론'을 보면 아예 어투조차도 장문인의 '강도(돌변)론'을 빼박았다.
"그 사람도 지금 스스로 신분을 망각한 거다. 이게 지금 머슴이란 말이다, 국민들이 주인이고. (머슴이) 다짜고짜 주인을 욕하고 덤벼들면 이게 어떤 사람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이동관 "일을 하다 빚어진 실수로 이해하고 양해해 달라"청와대 기자들에게 '핵관'(핵심 관계자 이동관)으로 통하는 이 수석을 겨냥해 여권 내에서 사퇴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역시 대구가 지역구이고 친박계인 조원진 의원도 지난달 11일 성명을 내 강도론 발언에 대해 사과를 요구한 이 수석에 대해 "적반하장격"이라며 "대통령과 박근혜 전 대표의 뜻을 왜곡한 이동관 수석은 사퇴하라"고 촉구한 바 있다.
이동관 수석은 지난 1월 31일(일)에도 청와대 기자들을 만난 자리에서 김은혜 청와대 대변인의 이 대통령 남북정상회담 발언 축소·왜곡 논란과 관련, "(이 대통령 발언이) 오해를 살 수 있어서 조금 '마사지'를 하다 보니까 그렇게 된 것"이라고 해명해 비판을 자초했다. 당시 김은혜 대변인은 논란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의를 표명했지만 이 수석은 사직서를 받지 못했다면서 "일을 하다 빚어진 실수로 이해하고 양해해 달라"고 넘어갔다.
그러나 그때도 기자들 사이에서는 업무의 성격상 김 대변인이 이 수석한테 보고를 한 후에 이 대통령의 정상회담 발언에 '마사지'가 이뤄졌을 터인데, '마사지'한 장본인 스스로 "일을 하다 빚어진 실수로 이해하고 양해해 달라"고 한 것은 뻔뻔하다는 얘기가 돌았다. 당시 한나라당 최고위원회의 비공개회의에서도 청와대 홍보라인의 대응에 문제가 많다는 비판이 적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일을 하다 빚어진 실수'는 이 대통령 용인술의 하나인 '접시론'과 닿아 있다. 이 대통령은 한나라당 경선 때부터 'BBK 사건' 등으로 공격을 당하자 "평생 나는 일에 미쳐 지냈다"면서 "일하다 보면 손도 베고 그릇도 깬다"고 이른바 '접시론'으로 되받았다. 이 대통령은 용산 참사와 관련해 김석기 경찰청장 문책론이 제시될 때도 '국민과의 원탁대화'에서 "열심히 일하다 접시를 깼다면 책임을 면제해줘야 한다"며 '접시론'을 폈다.
기자들 사이에서는 이 대통령의 이동관 감싸기를 '악역론'으로 해석하지만 청와대 일부 참모들은 '헌신론'으로 옹호하기도 한다.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사석에서 기자들이 "MB는 왜 그렇게 이동관을 좋아하냐? 일각에선 대신 욕먹어주니까 그렇다고 그러더라"고 묻자 "헌신이 아니면 그렇게 할 수가 없다. 어떻게 <PD수첩> 건 가지고 그렇게(외국에서 일어난 일이라면 경영진이 국민에게 사과하고 총사퇴해야 하는 상황) 말할 수 있겠나. 마음을 비우는 헌신의 자세라서 그렇다"고 적극 옹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