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려쓰니 아름다운 '우리 말' (99) 나라노래

[우리 말에 마음쓰기 876] '나라돈'과 '국고', '나라힘'과 '국력'

등록 2010.03.11 16:39수정 2010.03.11 1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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ㄱ. 나라노래(나랏노래)

 

.. 하기야 우리 나라는 안익태 선생이 〈애국가〉를 작곡할 때까지 〈올드 랭 자인〉에서 곡을 빌려다 나랏노래로 삼았던 전과(?)도 범했었다 ..  <안정효-번역의 테크닉>(현암사,1996) 14쪽

 

"전과(前科)도 범(犯)했었다"는 "전과도 있었다"나 "잘못도 저질렀다"로 다듬습니다. '작곡(作曲)할'은 그대로 두어도 되고, '곡을 쓸'이나 '지을'이나 '쓸'로 손질해 볼 수 있습니다. '작사(作詞)'라는 낱말에서도 매한가지입니다. 이 낱말 또한 그대로 둘 수 있는 한편, '노랫말을 쓸'이나 '노랫말을 지을'로 손볼 수 있어요. '작사'로 적으면 한 낱말이요 '노래말 쓰기'로 적으면 두 낱말이지만, 낱말 숫자가 둘이나 셋이 되더라도 우리 깜냥껏 우리 말투를 차근차근 가다듬어 나가야 비로소 우리 말밭을 일굴 수 있습니다. 이러는 가운데 '노래짓기(← 작곡)'라든지 '노랫말짓기(← 작사)' 같은 낱말을 지을 수 있고, 이렇게 새로 짓는 말틀에 따라 다른 낱말을 차근차근 가꿀 수 있어요.

 

 ┌ 나랏노래 / 나라노래

 └ 나라사랑노래

 

보기글을 들여다봅니다. 번역가 안정효 님은 안익태 님이 서양노래를 빌어 '애국가'라고 하는 '나랏노래'를 지었다고 이야기합니다. 1930년대를 살던 안익태 님으로서는 당신이 지은 노래에 붙인 이름, 또는 그무렵 사람들이 당신 노래를 가리키던 이름이 '愛國歌'입니다. 1990년대를 살아가던 안정효 님이 이 노래를 가리키면서 쓰는 이름은 '나랏노래'입니다. 나라를 대표하는 노래이니 '나랏노래(나라노래)'입니다. 나라를 대표하는 꽃이라면 '나라꽃(나랏꽃)'이요, 나라를 대표하는 나무라는 나무라면 '나라나무(나랏나무)'이고, 나라를 대표하는 새라면 '나라새(나랏새)'입니다.

 

한 나라 법이라 '나라법(← 국법)'이요, 한 나라 이름이라 '나라이름(← 국명, 국호)'이며, 한 나라 힘이라 '나라힘(← 국력)'입니다. 나라와 얽힌 무언가를 가리키는 자리에 '나라 + (무엇)'처럼 이름을 지을 수 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무엇) + 나라'처럼 이름을 지을 수 있어요.

 

 ┌ 애국가(愛國歌)

 │  (1) [음악] 우리나라의 국가

 │   - 애국가 제창 / 학생들이 태극기를 보며 애국가를 불렀다

 │  (2) 나라를 사랑하는 뜻으로 온 국민이 부르는 노래

 ├ 국가(國歌) : 나라를 대표ㆍ상징하는 노래

 │   - 각 나라의 국가를 연주하다 / 국악대의 취주에 맞추어 국가를 불렀다

 │

 ├ 애국가 제창 나라사랑노래 부르기 / 나랏노래(나라노래) 부르기

 ├ 애국가를 불렀다 나라사랑노래를 불렀다 / 나랏노래(나라노래)를 불렀다

 ├ 각 나라의 국가를 연주하다

 │→ 여러 나라 노래를 연주하다

 │→ 나라노래를 하나하나 연주하다

 └ …

 

우리 국어사전에는 '애국가'와 '국가'라는 한자말 두 가지가 실립니다. 이를 토박이말로 일컬을 '나라사랑노래'와 '나랏노래(나라노래)'는 실리지 않습니다. 안정효 님이 글을 쓸 때에는 국어사전에도 없는 낱말이면서 사이시옷을 넣고 '나랏노래'처럼 적었으나, 우리 맞춤법에 따른다면 '나라 노래'처럼 띄어서 적어야 맞습니다. 국어학자가 새 낱말로 받아들이지 않았을 때에는 붙이지 못하도록 맞춤법이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을 '나라사랑' 한 마디로 갈음할 수 있습니다. 나라를 걱정하는 마음은 '나라걱정' 한 마디로 마무를 수 있습니다. 우리 나라가 앞으로 나아갈 밝고 고운 앞길을 헤아리며 '나라꿈'을 꿀 수 있어요. 우리가 쓰는 말마디는 '나라말'이요, 우리가 적는 글줄은 '나라글'입니다.

 

차근차근 생각하고 하나하나 돌아보며 곰곰이 짚어 봅니다. 가만가만 헤아리고 낱낱이 살펴보며 꼼꼼이 삭여 봅니다. 나라넋을 살찌우고 나라얼을 빛낼 나라말이란 어떤 모습인가를 곱씹고, 나라사람 누구한테나 즐거울 나라글이란 어떻게 나아가야 좋을지를 되새깁니다.

 

ㄴ. 나라돈(나랏돈)

 

.. 미국이 러시아와 똑같이 국가의 비용으로 운영하는 댐으로부터 농부들에게 거의 무료로 물을 공급하면서 대규모의 낭비를 조장하는 ..  <제임스 브루지스/정지인 옮김-지구를 살리는 50가지 이야기 주머니>(미토,2004) 51쪽

 

'운영(運營)하는'은 '꾸리는'으로 다듬고, '댐으로부터'는 '댐에서'나 '댐으로'로 다듬으며, '무료(無料)로'는 '거저로'나 '아무 돈을 받지 않고'로 다듬습니다. "물을 공급(供給)하면서"는 "물을 주면서"나 "물을 대면서"로 손질하고, "대규모(大規模)의 낭비(浪費)를 조장(助長)하는"은 "엄청나게 낭비하게 하는"이나 "헤프게 쓰도록 부추기는"이나 "함부로 쓰게끔 부추기는"으로 손질해 줍니다.

 

 ┌ 나랏돈 = [경제] 국고금

 ├ 나라돈 : [경제] '나랏돈'의 북한어

 ├ 국고금(國庫金) : 국고에 속하는 현금

 ├ 국고(國庫)

 │  (1) 국가의 재정적 활동에 따른 현금의 수입과 지출을 담당하기 위하여

 │      한국은행에 설치한 예금 계정

 │  (2) 현금을 수납하고 지급하는 주체로서의 국가를 이르는 말

 │  (3) 나라의 재산인 곡식이나 돈 따위를 넣어 보관하던 창고

 │

 ├ 국가의 비용으로 운영하는 댐

 │→ 나라가 돈을 대어 꾸리는 댐

 │→ 나랏돈으로 꾸리는 댐

 └ …

 

국어사전을 뒤적이면 '나랏돈'이라는 낱말이 실려 있습니다. 무척 반갑습니다. 그러나 '나랏돈'이라는 낱말에 따로 풀이말을 달아 주지 않습니다. "나랏돈 = 국고금"이라고 해 놓을 뿐, 이 낱말을 사람들이 널리 쓰도록 이끌지 못합니다. 국어사전에는 '나라돈'이라는 낱말 또한 실려 있습니다. 그렇지만 "나라돈 : 북녘말"이라고 풀이를 달아 놓습니다. 사이시옷법 때문에 '장마비'를 '장맛비'처럼 적도록 바뀌었으니, 사람들이 으레 '나라돈'으로 적는다 하여도 '나랏돈'처럼 적어야 올바르다 할 수 있습니다. 다만, 어떠한 말법에 따라서 이야기를 하든, 한 나라에서 쓰는 돈을 일컬어 '나라 + 돈'처럼 새 낱말을 짜면 된다는 틀을 얻을 수 있습니다.

 

나라에서 하는 일이라면 '나라일'입니다. 나라일을 맡은 일꾼이라면 '나라일꾼'입니다. 우리가 흔히 이야기하는 공무원이란 다름아닌 '나라일꾼'입니다. 이들 나라일꾼은 한 나라 사람들한테 권리를 이어받아서 '나라살림'을 꾸립니다. '나라틀'을 짜고 '나라법'을 마련하며 '나라질서'를 바로세웁니다. 나라일꾼이 세우는 정책이란 '나라정책'입니다.

 

말 그대로 쓰는 말입니다. 느낌 그대로 가리키는 말입니다. 생각 그대로 적는 말입니다. 수수하게 나누는 글입니다. 조촐하게 주고받는 글입니다. 알뜰살뜰 오가는 글입니다.

 

ㄷ. 나라힘(나랏힘)

 

.. 이와는 반대로, 전쟁에 이긴 러시아는 나라 힘이 한창 뻗쳐 오르려는 판이었고, 공업의 발달에 온갖 힘을 기울이고 있는 참이었다 ..  <신경림 엮음-더 밝은 내일을>(학력사,1975) 22쪽

 

"이와는 반대(反對)로"는 "이와는 달리"로 다듬습니다. "공업의 발달(發達)에"는 "공업이 발돋움하도록"이나 "공업을 북돋우는 데에"로 손봅니다. "공업에 온갖 힘을 기울이고"처럼 적어 놓아도 공업을 살찌우거나 북돋우거나 발돋움하도록 애쓴다는 뜻을 잘 나타내 줍니다.

 

 ┌ 국력(國力) : 한 나라가 지닌 정치, 경제, 문화, 군사 따위의 모든 방면에서의 힘

 │   - 국력이 막강하다 / 국력이 쇠퇴하다 / 국력을 신장하다

 │

 ├ 나라 힘이 한창 뻗쳐 오르려는 (o)

 └ 국력이 한창 뻗쳐 오르려는 (x)

 

헌책방에서 해묵은 책 하나를 만납니다. 신경림 시인이 엮은이로 되어 있는 책입니다. 노벨과 에디슨 위인전을 추려 묶은 작은 책입니다. 신경림 시인이 이름만 빌려 주었는지, 아니면 시인으로 널리 이름을 떨치기 앞서 밥벌이로 이와 같은 글을 쓰거나 엮었는지 모를 노릇입니다.

 

아무튼 신경림 시인은 1975년에 어린이책 하나를 엮으면서 '나라힘'이라는 낱말을 씁니다. 어린이책인 만큼 낱말 하나하나를 더 마음을 기울이면서 가다듬었을 터이고, 아이들이 알아듣지 못할 낱말이나 아이들이 알아보기 힘든 낱말은 스스로 잘 삭여 냈으리라 봅니다.

 

오늘날 어린이책을 쓰거나 엮는 분들도 매한가지입니다. 어린이가 함께 보는 책이라 한다면 아무 낱말이나 함부로 쓰지 못합니다. 어린이 앞에서 말을 할 때에도 아무 말이나 대충대충 꺼내지 못합니다. 가릴 말이 있고 삼갈 말이 있습니다. 솎을 말이 있고 거를 말이 있습니다.

 

따지고 보면, 어린이 앞에서만 말을 가리거나 삼가거나 거르거나 솎을 노릇이 아닙니다. 어른 사이에서도 말을 가리거나 삼가거나 거르거나 솎을 노릇입니다. 어린이책뿐 아니라 어른책 또한 알맞고 올바르고 곱고 쉬운 말이 담기도록 애쓸 노릇입니다. 어른이 읽는 신문도 한결 쉽고 부드럽고 올바른 말로 세상 소식을 담도록 힘쓸 노릇입니다.

 

 ┌ 국력이 막강하다 → 나라힘이 아주 세다 / 나라힘이 무척 세다

 ├ 국력이 쇠퇴하다 → 나라힘이 기울다

 └ 국력을 신장하다 → 나라힘을 키우다 / 나라힘을 북돋우다

 

우리는 우리 나라가 제힘을 낼 수 있도록 여러모로 애를 씁니다. 그리고 우리 겨레가 제뜻을 펼 수 있게끔 이래저래 마음을 쏟습니다. 꼭 나라사랑이나 겨레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하는 일은 아닙니다. 내가 내 집을 가꾸고 내 동네를 돌보며 내 동무를 살피는 일이 모두 나라사랑입니다. 우리 아이를 아끼고 우리 식구를 보듬는 일이 모두 겨레사랑입니다.

 

나부터 아름다운 사람이 되도록 힘쓰면서 나부터 아름다운 말을 골라서 쓰는 일이 나라사랑입니다. 내 이웃하고 고운 말마디로 어울리면서 고운 넋을 주고받는 일이 겨레사랑입니다. 모든 아름답고 거룩하고 훌륭한 일은 우리 두 손에서 비롯합니다.

덧붙이는 글 | - 글쓴이 누리집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cafe.naver.com/hbooks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 글쓴이가 쓴 ‘우리 말 이야기’ 책으로,
<생각하는 글쓰기>가 있고,
<우리 말과 헌책방>이라는 1인잡지가 있습니다.

2010.03.11 16:39ⓒ 2010 OhmyNews
덧붙이는 글 - 글쓴이 누리집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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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 글쓴이가 쓴 ‘우리 말 이야기’ 책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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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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