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도 시대의 셜록 홈즈, 바로 날쎄

[신간] 오카모토 기도 <한시치 체포록>

등록 2010.03.17 18:36수정 2010.03.17 1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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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시치 체포록> 겉표지 ⓒ 책세상

'체포록'이란 것은 에도 시대의 일본 관청에서 사용한 장부다. 살인이나 강도같은 사건이 발생하면 해당 부서에서 수사를 시작하고 범인을 잡기까지의 과정을 관청 서기가 정리한다.

그 기록이 바로 체포록이다. 우리식으로 표현하자면 '수사보고서' 정도가 적당할 것이다. 그러니까 '한시치 체포록'은 한시치라는 이름의 탐정이 담당했던 사건의 기록이다.


메이지 유신(1868년) 이전인 에도 시대에도 탐정이 있었을까. 작품을 통해서 당시 시대를 꼼꼼하게 복원한 작가 오카모토 기도에 의하면, 그 시대에도 일종의 사설탐정이 있었다.

그런 탐정들을 가리켜서 '오캇피키'라고 부른다. 평민 신분이지만 치안을 담당하는 관청의 관리에게 고용되서 사건의 수사와 범인의 체포를 담당한다. 때문에 오캇피키가 나타나면 일반사람들은 주눅이 들거나 과장되게 굽실거리는 경향이 있다.

오캇피키가 받는 급료는 얼마되지 않는다. 아무리 물가가 싼 시대라도 먹고살기 힘들 정도다. 그래서 이들은 부인의 이름으로 목욕탕이나 요릿집을 함께 운영했다. 사건을 수사하는 권한이 있으면서 급료가 적었으니 이들은 마음만 먹으면 온갖 구실로 일반인들에게 돈을 뜯어낼 수 있었을 것이다.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오캇피키를 벌레 보듯 싫어했다고 한다.

에도의 뒷골목을 누비는 탐정 한시치

<한시치 체포록>의 주인공 한시치도 오캇피키다. 그는 사람들이 싫어하는 그런 부류의 오캇피키는 아니다. 결혼해서 부인과 함께 살며 수사를 도와주는 부하 여러 명을 거느리고 온갖 종류의 사건을 수사한다.


한시치의 아버지는 포목점의 점원이었다. 한시치가 열세 살 때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자, 어머니는 한시치가 성장해서 역시 포목점에서 일하기를 바랐다. 한시치는 한 곳에서 성실하게 고용살이를 할 체질이 아니었다. 결국 집을 뛰쳐나온 한시치는 다른 오캇피키의 부하로 들어가고 그곳에서 경력을 쌓기 시작한다.

그러던 중 19세 때 어려운 사건을 하나 해결해서 눈에 띄는 공을 세운다. 몇 년 후에는 자신이 모시던 오캇피키가 병으로 죽자 전재산을 물려 받을 정도가 된다. 젊은 나이에 부하들을 거느리는 당당한 오캇피키가 된 것이다.

이때부터 한시치는 수십년 동안 수많은 사건들을 해결한다. 에도 시대에는 괴담이 유행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한시치가 의뢰받는 사건들도 괴이한 것들이 많다. 여자의 혼령이 모녀에게 함께 나타나는가 하면, 외눈박이 괴물을 보고 놀라자빠진 사람도 있다. 여우가 둔갑해서 승려가 됐다는 소문이 떠돌고, 죽은 자가 나타나서 한 집안에 저주를 내리기도 한다.

괴담 뒤에 숨은 진실은 무엇일까

이야기는 이미 현역에서 은퇴한, 70세가 넘은 한시치가 괴담을 좋아하는 주인공에게 과거를 회상하며 자신이 맡았던 사건을 들려주는 형식으로 진행된다. 사건들이 발생하는 시간적 배경은 1800년대 중반이다.

작가 오카모토 기도는 셜록 홈즈의 영향을 받아서 한시치 시리즈를 구상했다. 하지만 그 배경이 현대라면 서양의 것을 모방하는 형식이 될거라는 우려가 있었다고 한다. 에도 시대의 탐정 이야기가 그동안 없었다는 사실도 함께 떠올랐다. 여기에 더해서 작가가 사전에 가지고 있던 에도 시대의 풍속과 습관에 관한 지식도 한 몫을 했을 것이다.

이런 요인들이 더해져서 한시치라는 탐정이 탄생했다. 셜록 홈즈의 영향을 받았지만, 한시치의 수사방식은 셜록 홈즈와는 딴판이다. 사건 현장에서 돋보기를 들고 꼼꼼하게 조사하는 홈즈와는 달리, 한시치는 조용히 앉아서 생각하는 편이다.

작품 속에서 한시치는 이런 말을 한다. 옛날의 탐정들은 무엇인 것같다든가 누구인 것같다는 추측을 먼저 가슴속에 떠올렸다고. 자신도 집에 앉아서 팔을 꼬고 눈을 감고 혹시 그런게 아닐까 했던 생각이 대부분 들어 맞았다고. 그러니 한시치는 치밀한 논리보다 육감에 더많이 의존하는 성향을 가진 셈이다.

<한시치 체포록>에 실린 12개의 사건에서도 마찬가지다. 사건 중에는 한시치가 직접 해결하지 않은 것도 있지만 수사방법은 대동소이하다. 이 작품이 일본에서 발표된 것은 1917년이다. 그런만큼 여기 실린 사건의 트릭들 중 몇 가지는 미리 간파할 수도 있을 것이다. 사건도 사건이지만 작가가 복원해낸 에도 시대의 뒷골목 풍경과 당시 사람들의 생활모습이 더욱 흥미롭다.

덧붙이는 글 | <한시치 체포록> 오카모토 기도 지음 / 추지나 옮김. 책세상 펴냄.


덧붙이는 글 <한시치 체포록> 오카모토 기도 지음 / 추지나 옮김. 책세상 펴냄.

한시치 체포록 - 에도의 명탐정 한시치의 기이한 사건기록부

오카모토 기도 지음, 추지나 옮김,
책세상, 2010


#한시치 체포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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