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化)' 씻어내며 우리 말 살리기 (67) 의식화

[우리 말에 마음쓰기 894] '깨우치다-배우다-생각하다-느끼다'가 밀려나는 삶

등록 2010.04.05 13:21수정 2010.04.05 1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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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식화되다'와 '깨우치다'

 

.. 딸애는 다행히 지금 '여자도 일을 하고 돈을 벌어야 한다'는 사실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인다. 그것은 엄마인 나의 생활을 보며 의식화된 것인데, 가끔 "나는 크면 회사 다닐 거야" 하곤 "회사에서 돈벌어서 엄마 이쁜 옷 사 줄 거야" 한다 ..  <김수미-그리운 것은 말하지 않겠다>(샘터,1987) 100쪽

 

'다행(多幸)히' 같은 말마디는 굳이 다듬지 않아도 됩니다. 다만 때와 곳에 따라 조금 더 헤아려 볼 수 있습니다. 이 대목에서는 '고맙게도'나 '뜻밖에도'나 '반갑게도'로 다듬을 수 있어요. "-는 사실(事實)을 당연(當然)한 것으로 받아들인다" 또한 그대로 두어도 됩니다. 그저 이 자리에서는 "-는 생각을 마땅하게 받아들인다"라든지 "-는 삶을 즐겁게 받아들인다"로 손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다듬거나 손보면서 글흐름을 돌아볼 때에, 글쓴이가 말하고자 하는 이야기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똑같은 느낌이라고는 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굳이 이처럼 다듬거나 손보는 까닭은, 말하고자 하는 이가 어떤 이야기를 말하고자 하는가를 찬찬히 돌아보면서 말과 글을 다룬다면 더 좋겠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듣는 사람 자리에서 어떻게 말을 들려줄 때에 한결 알맞고 좋을까를 살피고 싶기 때문입니다.

 

"나의 생활(生活)"은 "내 삶"으로 손질하고, "회사 다닐 거야"는 "회사 다닐 테야"나 "회사를 다니겠어"로 손질하며, "의식화된 것인데"는 "의식화되었는데"쯤으로는 손질해 줍니다.

 

 ┌ 의식화(意識化) : 어떤 대상에 대하여 깨닫거나 생각하게 함. 특히, 계급 의식

 │    을 갖게 한다는 뜻으로 쓴다

 │   - 의식화 작업 / 노동자들이 의식화되면서 /

 │     조선의 농민들을 의식화한다는 것은 어려운 면도 있겠으나

 │

 ├ 엄마인 나의 생활을 보며 의식화된 것인데

 │→ 엄마인 내 삶을 보며 생각하게 된 셈인데

 │→ 엄마인 내 삶을 보며 느끼게 되었을 텐데

 │→ 엄마인 내 삶을 보며 배웠을 텐데

 │→ 엄마인 내 삶을 보며 몸에 배었을 텐데

 └ …

 

국어사전 뜻풀이에 잘 나와 있듯이 우리들은 '의식화'라는 말마디를 "계급 의식을 갖게 한다"는 뜻으로 으레 쓰고 있습니다. 그야말로 계급 의식을 느끼게 하도록 애쓰는 쪽이든, 이러한 쪽을 안 좋게 보는 쪽이든 똑같이 쓰고 있습니다.

 

그러면 '의식화'란 어떤 일일까요? 말 그대로 헤아리자면 "의식을 하도록 한다"는 이야기이겠지요. 다음으로 '의식(意識)'이란 무엇일까요? "세상을 보는 눈과 머리를 깨운다"는 소리입니다. 그러니까, 좋게 보든 얄궂게 보든 '의식화'라고 하는 일은 "우리 세상을 제대로 파헤치거나 올바르게 꿰뚫어보도록 이끄는" 일이라 하겠습니다. 하나도 나쁘게 여길 말마디가 아니요, 조금도 얄궂게 돌아볼 말투가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 나라는 자유민주주의 나라가 아닙니다. 정부에서는 우리 나라가 자유민주주의라고 내세우지만, 속살을 들여다보았을 때에는 자유민주주의가 아닙니다. 자유도 민주도 죄 억눌려 있습니다. 왜냐하면 국가보안법이 도사리고 있거든요. 국가보안법을 비롯해 초중고등학교 제도권교육이 오로지 입시지옥으로 얽매여 있습니다. 꿈을 펼치며 아름답게 살아갈 나날을 열어젖히는 사회살이가 아니라, 돈을 많이 벌지 않으면 뒤처져 버리거나 나동그라질밖에 없는 사회 얼거리이고요.

 

이리하여 이 나라에서 '의식화'라 한다면 겉과 속이 다른 우리 세상과 나라와 정부와 얼거리 모두를 샅샅이 깨우친다는 이야기입니다. 우리는 누구나 우리 세상뿐 아니라 내 삶터와 보금자리와 마을이 어떤 모습인가를 참답게 알고 깨우치고 느끼며 돌아볼 수 있어야 합니다. '의식화'란 어떤 주의나 사상을 억지로 집어넣는 일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 아름답고 바르게 살아가자는 흐름이요 결입니다. 그렇지만 이렇게 세상을 올바르게 읽고 가슴에 새기는 흐름과 결이란 어쩔 수 없이 기득권이든 권력자이든 우리 삶터를 어떻게 짓누르거나 억누르면서 뒤틀고 있는가를 깨닫기 마련이고, 이렇게 깨닫고 나면 잘잘못을 바로잡도록 힘을 기울입니다.

 

잘잘못을 바로잡도록 힘을 기울이다 보면 기득권이든 권력자이든 싫어하거나 짜증스레 느끼기 마련이요, 이러는 가운데 저절로 '의식화' 같은 말마디를 얄궂거나 나쁘게 받아들이도록 뿌리박아 버립니다. 말이 말다울 수 없도록 하고, 사람이 사람다울 수 없도록 한달까요. '의식화'가 말썽거리가 아니라 의식화를 가로막는 사람이 말썽거리입니다만, 말이 비틀리고 넋이 뒤틀립니다. 의식화를 어떤 밥그릇 지키기로 써먹으려는 사람이 골칫거리입니다만, 글이 짓눌리고 삶이 억눌립니다.

 

 ┌ 의식화 작업 → 생각 깨우기 / 생각 열기

 ├ 노동자들이 의식화되면서 → 노동자들이 깨어나면서 / 노동자들이 세상을 배우며

 └ 농민들을 의식화한다는 것은 → 농민들을 깨우친다는 일은

 

우리는 우리 말을 제대로 써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 말을 올바로 써야 합니다. 우리 말을 제대로 느끼고 제대로 다루어야 합니다. 우리 말을 참답게 깨닫고 참답게 가꾸어야 합니다. 지식쪼가리를 머리에 쑤셔넣는 배움이 아닌 말 한 마디에 사랑과 믿음을 고이 담는 배움으로 이어가야 합니다. 지식부스러기를 먹고사는 사람이 아닌 삶을 살찌우는 넋과 얼로 살아가는 사람이 되도록 다스려야 합니다.

 

한자말로 하자면 의식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 말로 하자면 깨어나야 합니다. 깨우쳐야 합니다. 일깨워야 하고 깨달아야 합니다. 알아내야 하며 알아채야 하고, 알아들어야 하고 알아보아야 합니다.

 

'의식을 한다'이든 '의식을 하게 한다'이든 바로 '알도록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앎을 내 머리나 가슴에 품는다'는 이야기입니다. '앎을 받아들인다'는 소리요, 이 앎이 슬기로 거듭나도록 갈고닦는다는 셈입니다.

 

삶이 삶답도록 갈고닦습니다. 말이 말답도록 갈고닦습니다. 넋이 넋답도록 갈고닦습니다. 그리고 우리 세상이 참세상다울 수 있게끔 갈고닦는 길에 내 한 손을 보태어 놓습니다.

덧붙이는 글 | - 글쓴이 누리집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cafe.naver.com/hbooks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 글쓴이가 쓴 ‘우리 말 이야기’ 책으로,
<생각하는 글쓰기>가 있고,
<우리 말과 헌책방>이라는 1인잡지가 있습니다.

2010.04.05 13:21 ⓒ 2010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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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가 쓴 ‘우리 말 이야기’ 책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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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 #외마디 한자말 #우리말 #한글 #국어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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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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