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이 미신이라고? '영등굿'은 세계유산인데?

[세계유산 즐겨찾기③ 제주칠머리당영등굿] 바다 안전과 풍요를 비는 '영등송별대제'

등록 2010.04.07 16:45수정 2010.07.20 1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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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나 처음으로 제주도를 찾아갔다. '굿'을 보기 위함이었다. 아는 사람들이 들으면 아마도 뭔가에 홀렸거나 미쳤다고 할지도 모르겠다. 굿이라고 하면 미신이라고 치부하는 경향이 강하니까. 그래, 그런 이유에서다. 미신이라고 멀리했던 굿이, 정확히 말하면 '제주 칠머리당영등굿'이 도대체 어떤 굿이기에 유네스코 세계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된 것일까, 그런 호기심에 제주도를 찾은 것이다.

제주도 사람들은 서울, 부산, 대전 등을 한데 묶어 '육지'라고 일컫는다. 반면 육지 사람들은 제주도를 '삼다도(三多島)', '신화의 섬', '신혼여행 1번지' 등으로 신비로워 한다.


육지와 섬, 섬과 육지를 서로 갈라놓은 것은 다름 아닌 바다. 육지에서 바라보는 바다는 추억과 낭만이 깃든 곳이겠지만, 제주도에게 있어 바다는 치열한 삶의 터전으로 생과 사를 넘나들어야 하는 신성한 존재일 것이다.

굿을 보기 위해 처음으로 제주도를 찾아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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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등굿 '영등송별대제' 제주칠머리당영등굿의 대단원을 장식한 '영등송별대제'는 주민들의 참여 속에 진행됐다. ⓒ 최육상


지난 3월 28일, 따뜻한 남쪽이라 3월 말이면 벌써 봄이 왔을 것이라는 기대는 제주공항에 몸을 내리자마자 순식간에 무너졌다. 양력 11월 1일부터 3월 31일까지 동절기에 속하는 제주도의 바람은 몸을 휘청거리게 할 정도로 하루 종일 험악하게 불어댔다.

하지만 다음날인 29일은 거짓말처럼 바람이 잔잔했다. 이날은 '제주 칠머리당영등굿(이하 영등굿)'의 대단원을 장식하는 '영등송별대제'가 열린 날이었다. 굿판 주변 곳곳, 따스한 햇살 아래 흐드러진 벚꽃은 완연한 봄기운을 전했다. 굿에 참석한 사람들은 하루 만에 바뀐 날씨를 이렇게 빗댔다.

"정말이지, 영등할망이 바람 몰고 가버렸수당."


제주도에서 음력 2월은 시베리아로부터 서북계절풍을 몰고 '영등할망이 오시는 달', '영등이 드는 달'이라고 한다. 이때 부는 바람이 영등바람이며, 이 바람을 맞이하고 보내기 위해 마을의 신당(神堂)에서 벌이는 굿이 바로 '영등굿'이다. 영등굿은 음력 2월 1일 '영등환영풍어제'를 통해 영등할망을 맞아들인 뒤, 음력 2월 14일 '영등송별대제'를 끝으로 제주도를 떠나보내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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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등굿 6신위 영등굿은 영등신(영등대왕/해신선왕), 당신(도원수감찰지방관/요왕부인), 요왕신(남당하르방/남당할방) 등 3종 6신위를 모셔놓고 진행한다. ⓒ 최육상


이날 영등굿은 영등신(영등대왕·해신선왕)-당신(도원수감찰지방관·요왕부인)-요왕신(남당하르방·남당할방) 등 3종 6신위를 각각 좌-중-우에 모셔놓은 뒤, '초감제-본향듦-요왕맞이-씨드림/씨점-영감놀이-배방선-도진' 등의 순서로 진행됐다.

"상잠수 중잠수 하잠수, 특히 건입동 잠수들도 물에 들어갔다가 물질하러 갔다가 넋 나게 마십시오. 물속에 들었다가 거북이 보고 놀라게 마십시오. 바다에서 전복인가 소란가 하며 눈에 편식하여 때러 들어갔다가 아니어서 손이 끼게 하지 마십시오. 요왕님아 한 번 물에 들면 망사리 가득 많이 등에 지고 나가게 하여 이 자손들 편안하게 하십시오."

이는 <제주칠머리당영등굿>(국립문화재연구소-문무병, 이명진 글/백지순 사진/민속원/2008)에 실린 '영등굿' 채록 내용 중 '요왕맞이'의 한 대목이다.

영등굿은 이처럼 신들께 마을의 안녕과 바다에서의 안전, 풍어 등을 기원하는 종교의식이다. 그래서 굿은 전반적으로 엄숙한 분위기 속에서 굿을 주도하는 심방(무당)의 일거수일투족에 온갖 신경을 집중하게 만든다.

그러나 굿은 심방뿐만이 아니라 바다를 일터로 삼고 살아가는 주민들의 참여 속에 계속 이어진다. 소라와 전복 등의 씨를 바다에 뿌리는 '씨드림'과 그 씨가 잘 자랄지를 가늠해보는 '씨점', 그리고 영등할망 등을 잘 모셔가라는 의미에서 도깨비에게 음식을 대접하며 노는 '영감놀이', 음식을 짚배에 실어 바다에 띄워 보내는 '배방선' 의식 등 그 중심에는 해녀를 비롯한 주민들이 놓여 있다. 이는 바다를 향한 섬사람들의 애환과 바람을 한바탕 놀이로 날려 보내는 축제의 현장이기도 하다.

영등굿이 인류의 보편적인 세계무형문화유산이 된 이유는 이러한 종교의식과 축제가 결합된 데 있을 것이다. 세계무형문화유산은 사람들이 살아가며 느끼는 희로애락을 때로는 음악으로 때로는 춤으로 때로는 가면극으로 때로는 인형극으로 풀어낸다는 보편성이 있다.

그런 점에서 영등굿은 음악과 춤, 한바탕 어울림 마당놀이, 판소리 같은 사설 등을 한데 모아놓은 종합 예술의 성격이 강하다. 굿의 바탕에는 행복한 삶을 추구하는 인간의 보편적인 바람이 놓여 있음은 물론이다.

영등굿은 종교의식과 축제가 결합된 세계무형문화유산

영등굿은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 무렵까지 중요무형문화재 제71호인 칠머리당영등굿 기능보유자인 김윤수 심방(무당)을 비롯해 남녀 심방이 번갈아가며 읊는 사설과 각종 춤사위 그리고 북, 장구, 징, 설쇄 소리가 어우러지며 한껏 들썩거렸다.

그러나, 장장 9시간에 걸쳐 지켜본 영등굿은 이해하기 어려웠다. 굿이 긴 탓에 의식이 복잡한 이유도 있었지만 굿에서 모시는 여러 신들의 이름과 지역명 등도 낯설었기 때문이다. 그 중에서도 특히, 굿을 주관하는 심방들이 읊는 사설은 대부분 제주도 방언으로 되어 있어 굿을 이해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이야기의 흐름을 따라잡기가 힘들었다.

물론, 처음 보는 영등굿을 이해하기란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제주도 토박이 대학생들의 생각도 나와 비슷하다면 문제는 다르다. 점심 식사 시간 동안 굿이 잠시 멈춘 틈을 타 만난 이들은(김지은·김경은·김은영, 이상 제주대 사회학과 4학년) 영등굿을 접한 소감을 이렇게 밝혔다.

"전부터 들어보기는 했는데 영등굿을 직접 보는 건 처음이에요. 지명은 알겠지만 사설의 대부분이 방언이라 솔직히 알아듣기가 힘들어요. 심방이 이야기 전달을 좀 더 명확하게 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어요. 굿에 대한 지식이 별로 없는 상태에서 종교사회학과 교수님이 추천하셔서 와 봤는데, 앞으로 알고 보면 재미는 있을 것 같아요."

이어 이들은 "지난번 영등굿(영등환영풍어제)에서는 영등할망이 며느리를 데리고 와서 바람이 많이 불고 엄청 추웠다"면서 "오늘 바람이 잔잔한 걸 보니까 영등할망이 정말 바람과 함께 떠나신 것 같다"고 밝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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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등굿 현장에서 만난 대학생들 제주대 사회학과 4학년 동기생인 김은영, 김경은, 김지은(왼쪽부터). 제주도 토박이이지만 이들은 "영등굿을 처음 본다"며 호기심을 잔뜩 발동했다. ⓒ 최육상


삼별초, 4·3항쟁, 해녀... 숱한 상처와 아픔을 보듬고 있는 제주도

한편 이날 한 무리의 일본인 관광객 중에서 우연히 인터뷰를 했던, 일본의 전통가면예능 '노우(能)'를 연구한다는 노학자 '호리가미 켄'씨는 영등굿과 관련해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다.

"일본에도 마을마다 비슷한 전통의식이 많이 있는데 지금은 후계자가 없어 명맥이 끊어질 위기에 놓여 있습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영등굿을) 함께 하는 것을 보니 보기에 좋습니다."

보통 대를 이어가는 장인 정신은 일본이 우리나라를 앞선다. 그런 일본에서 오랜 전통의식을 연구하는 학자가 영등굿을 부러워하며 일본인 관광객들과 함께 김윤수 심방을 둘러싸고 카메라 세례를 퍼붓던 장면은 세계유산으로서 영등굿의 자긍심을 갖게 하기에 모자람이 없었다.

제주도에서는 무당을 심방이라고 한다. 굿이 끝난 뒤 인터뷰에 응했던 김윤수 심방은 자신을 단 한 사람도 무당이라고 부르지 않는다고 말했다. 육지에서는 무당 하면 왠지 가까이 하면 안 될 것 같은 느낌이 강한데, 굿이 끝난 이후 며칠 동안 만나 본 제주도 사람들은 대체로 심방에 대해 친숙함을 숨김없이 드러내 보였다.

이는 역사적으로 씻어내기 힘든 상처와 아픔을 너무도 많이 안고 있는 제주도의 특수성 때문일 것이다.

고려 때 몽고의 침략을 막으려던 삼별초가 자리를 잡은 곳도, 제2차 세계대전 말기 일제가 연합군에 대항해 최후의 보루로 삼았던 곳도 다름 아닌 제주도였다. 또한 4·3항쟁은 제주도 곳곳에 비극의 학살 현장을 남겨 놓았다. 그뿐인가. 바다 속으로 이름 없이 사라져 갔을 수많은 해녀들과 선원들의 영혼에 이르기까지 제주도는 섬사람들의 온갖 애환을 온몸으로 보듬고 있다.

실제 영등굿이 펼쳐지던 굿판 바로 옆에 자리한 '사라봉'에는 일본군이 파 놓은 방공호가 있으며 4·3항쟁의 처절한 학살터도 존재한다.

바다를 일터삼아 건강하게 일하고 배불리 먹기를 기원하는 영등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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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등굿 씨드림 씨망탱이(좁쌀을 넣은 망태기)를 던지며 노는 해녀 역할의 심방들. 소라와 전복 등 해산물이 많이 나기를 기원하는 '씨드림' 의식이다. ⓒ 최육상


각종 굿과 제례의 마지막은 항상 똑같다. 신이나 조상께 바쳤던 음식을 모두 모여 나눠 먹는 것. 영등굿도 예외는 아니었다. 참석자들이 많아 주로 굿을 행했던 신방과 '단골(굿을 끌어가는 본주)'들이 음식을 챙기기는 했지만. 바다를 일터삼아 건강하게 생업을 이으며 배불리 먹는 걸 바라는 것. 영등굿의 겉모습은 거창할지 모르지만 그 속에 담긴 의미는 이렇게 소박한 내용이지 싶다.

하지만 영등굿이 아무리 세계유산에 등재되었다고 해도 굿 자체에는 애환이 많다. 굿은 일본 제국주의에 의해 '미신'으로 낙인 찍혀 버린 뒤 좀처럼 그 굴레를 벗지 못하고 있다. 일제에 의한 '민족정신 말살정책'은 식민사관은 물론이고 아직도 청산되지 않은 친일파 문제에 깊숙이 배겨 있다. 그리고 일반 민중들의 민족의식과 전통의식이 아로 새겨진 굿에도 그 못된 영향은 잡신처럼 끼어들어 있다.

개인적인 바람이 있다면, 제주도 칠머리당영등굿이 육지 광화문 광장에서 바람 잘 날 없는 대한민국을 위해 한바탕 펼쳐지는 것이다. 영등할망을 비롯해 1만 8천 신들이 모두 총출동해 안 좋은 잡신들의 바람을 모두 거둬들이는 '바람잡이 굿'을 멋지게 벌였으면 좋겠다.

특히, 신들께 인정(재물)을 걸고 공덕을 바친 마을 사람들의 이름을 일일이 아뢰는 영등굿의 '열명(列名)' 의식처럼, 광화문 굿에서도 대한민국의 자긍심과 국민들의 살림살이를 거덜 내는 사람들, 특히 높은 위치에 있으면서 국가와 국민을 돌보지 않는 사람들의 이름을 한 사람도 빼놓지 않는 호된 '호명(呼名)' 의식이 있었으면 더욱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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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등굿에는 굿에 초청한 모든 신들께 재물과 공덕을 받친 주민들의 이름을 일일이 아뢰는 열명 의식이 있다. 굿판에 나붙은 이름과 돈이 인상적이다. ⓒ 최육상


#영등굿 #제주칠머리당영등굿 #세계무형문화유산 #세계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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