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397)

― '천만의 말씀'을 곰곰이 톺아본다

등록 2010.04.08 19:39수정 2010.04.08 1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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ㄱ. 천만의 말씀 1

 

.. 흔히들 서울이 고향인 사람은 고향이 없는 사람들이라고 하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  <한정식-사진, 시간의 아름다운 풍경>(열화당,1999) 41쪽

 

어릴 적부터 "천만의 말씀"이라는 말을 곧잘 들었고, 저도 이런 말을 흔히 썼습니다. 그렇지만 이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무엇을 가리키는지는 몰랐어요. 어른들이 말하니 그러려니 했고, 말뜻을 제대로 알려주는 어른이 없었습니다. 귀와 입에 익숙하니 동무들끼리 즐겨서 쓰는 말마디로 자리잡았으며, 이 말마디를 고치거나 다듬으려고 생각해 보지 않았습니다.

 

어린 날에는 말놀이를 하듯이 "천만의 말씀, 만만의 콩떡이야!"처럼 이야기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말마디가 텔레비전에 나왔는지 만화책에 실렸는지는 떠오르지 않습니다. 그저 이 말을 주고받면서 키득키득 웃은 일이 떠오릅니다. 하나하나 따진다면 "웃기는 말씀, 콩떡이나 쑤어 먹지!" 하는 이야기일 텐데 "웃기는 소리 집어치워!"나 "아니거든?"이나 "같잖은 소리는 마!" 하고 이야기하기도 했으나, '콩떡'이라는 말마디를 읊는 느낌이 좋아 이렇게 이야기하지 않았느냐 싶습니다.

 

 ┌ 천만의 말씀이다

 │

 │→ 아닌 말씀이다

 │→ 아니라고 느낀다

 │→ 아니지 싶다

 │→ 아니라고 말하겠다

 │→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 나는 아니라고 본다

 └ …

 

어느 말투가 옳고 어느 말투가 그르느냐 하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옳고 그름은 굳이 따지지 않아도 됩니다. 누구나 어릴 때에 둘레에서 듣는 말투에 따라서 제 말투를 가다듬는다는 이야기입니다. 옳고 그름에 앞서 우리 삶을 담는 말마디를 살펴야지 싶습니다.

 

둘레 어른들이 옳고 알맞게 이야기를 하고 있으면 아이들은 아주 저절로 옳고 알맞게 이야기하는 버릇을 익힙니다. 둘레 어른들이 그릇되거나 엉터리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면 아이들은 아주 마땅하게 그릇되거나 엉터리 말투에 길들고 맙니다. 욕지꺼리를 내뱉는 어른이 가까이 있으면 아이한테는 욕지꺼리가 익숙하고, 사랑스러운 말마디를 즐기는 어른이 곁에 있으면 아이들은 사랑스러운 말마디를 즐거이 꺼냅니다.

 

그러니까, 우리들이 토씨 '-의'를 붙여 버릇하는 말투를 즐겨쓴다면 우리 어른들만 이러한 말씨를 쓰지 않고 아이들 또한 쓴다는 소리입니다. 우리들이 토씨 '-의'를 비롯해 갖가지 얄딱구리한 말씨를 걷어낼 줄 아는 매무새라 한다면 아이들은 누구나 스스럼없이 살갑고 알뜰히 제 말씨를 일구거나 돌볼 줄 안다는 소리입니다.

 

"천만의 말씀" 같은 말마디야 쓰고 싶으면 쓸 노릇입니다. 다만, 이러한 말투를 쓴다 하더라도 이러한 말투를 늘 듣고 자랄 아이들을 얼마나 헤아리고 있는가를 차근차근 짚고 살피고 톺아보아야겠습니다.

 

ㄴ. 천만의 말씀 2

 

.. 어느 날 갑자기 선언을 통해서 사람들의 의식이 바뀔 수 있다? 천만의 말씀입니다 ..  <손석춘, 김규항, 박노자, 손낙구, 김상봉, 김송이, 하종강, 서경식-후퇴하는 민주주의>(철수와영희,2009) 29쪽

 

"선언(宣言)을 통(通)해서"는 "선언을 해서"나 "외치는 말로"나 "외치는 목소리로"로 손봅니다. "사람들의 의식(意識)이"는 "사람들 생각이"로 손질해 줍니다.

 

 ┌ 천만의 말씀입니다

 │

 │→ 웃기는 말씀입니다

 │→ 터무니없는 말씀입니다

 │→ 얼토당토않은 말씀입니다

 └ …

 

옳지 않다는 뜻에서 읊는 말마디 "천만의 말씀"이란, "터무니없는 말씀"이나 "어처구니없는 말씀"이나 "어이없는 말씀"을 가리키기도 합니다. 하나도 안 맞는 이야기라는 셈이고, 조금도 알맞지 않은 이야기라는 셈이며, 어느 모로 보더라도 맞을 수 없는 이야기라는 셈입니다.

 

이리하여, "말도 안 되는" 말씀이 되고, "있을 수 없는" 말씀이 됩니다. "꿈 같은" 말씀도 될 텐데, "뜬구름 잡는" 말씀이 되었다가 "뜬금없는" 말씀도 될 테지요. 어쩌면 "귀신 씨나락 까먹는" 말씀이 될 수 있습니다. "같잖은" 말씀이랄지, "되도 않는" 말씀이 될 수 있어요.

 

 ┌ 말도 안 되는 말씀입니다

 ├ 있을 수 없는 말씀입니다

 ├ 꿈 같은 말씀입니다

 └ …

 

이 보기글에서는 이런저런 말마디로 우리 생각을 나타낼 수 있는 한편, 단출하게 "아닙니다"나 "아니에요"로 갈음할 수 있습니다. 또는 "그럴까요?"나 "그리 될까요?"나 "그렇다고 생각합니까?"처럼 되물을 수 있어요. "그렇지 않습니다"나 "그럴 수 없습니다"나 "그럴 일은 없습니다"처럼 가다듬어도 잘 어울립니다.

 

살피기 나름이고 돌아보기 나름입니다. 살피는 만큼 알뜰살뜰 나타낼 말을 찾을 수 있고, 돌아보는 만큼 알맞게 가리킬 말을 얻을 수 있습니다.

 

 ┌ 아닙니다

 ├ 그럴 일은 없습니다

 ├ 그렇지 않습니다

 └ …

 

생각을 기울일 때에 살아나는 말입니다. 생각을 그러모을 때에 빛이 나는 말입니다. 생각을 쏟을 때에 일어나는 말입니다. 우리는 늘 주고받는 말 한 마디에 우리 고운 생각을 넉넉히 담아내면서 우리 삶을 함께 북돋울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웃과 나누는 글 한 줄에 우리 너른 생각을 따스히 펼쳐내면서 우리 살림을 함께 일굴 수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 - 글쓴이 누리집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cafe.naver.com/hbooks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 글쓴이가 쓴 ‘우리 말 이야기’ 책으로,
<생각하는 글쓰기>가 있고,
<우리 말과 헌책방>이라는 1인잡지가 있습니다.

2010.04.08 19:39 ⓒ 2010 OhmyNews
덧붙이는 글 - 글쓴이 누리집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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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 글쓴이가 쓴 ‘우리 말 이야기’ 책으로,
<생각하는 글쓰기>가 있고,
<우리 말과 헌책방>이라는 1인잡지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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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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