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문객 없어 영정도 치워버린 초라한 빈소

금양호 희생자 찾은 이주노동자들... 영정도 못 보고 발길 돌려

등록 2010.04.12 16:56수정 2010.04.12 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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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금양호 침몰 선원 시신이 안치된 송도가족사랑병원 병원 정면 모습

금양호 침몰 선원 시신이 안치된 송도가족사랑병원 병원 정면 모습 ⓒ 고기복


"람방 때문에 왔어요? 아이고 어쩌나! 금요일에 시신을 인도네시아로 보내고, 오늘 아침까지 영정을 뒀는데, 꽃도 시들고 찾아오는 사람도 없고 해서 치웠어요. 어찌됐든 들어가세요."

지난 2일 천안함 수색을 마치고 귀항하던 중 캄보디아 국적 '타이요호'와 충돌해 침몰한 금양98호. 지난 11일 금양98호 선원의 빈소를 찾은 인도네시아 출신 이주노동자들이 병원 장례식장 입구에서 어디를 갈지 몰라하고 있을 때 지나가던 사람이 한 말이었다. 바닷바람에 탄 구릿빛 얼굴 가득 굵은 주름이 자글자글한 것으로 보아 그 역시 뱃사람임을 짐작할 수 있었다.

십여 명의 인도네시아인들이 조문을 왔는데, 영정을 치웠다는 사실을 미안해 하며 그는 우리 일행을 빈소로 안내했다. 고 김종평씨의 영정 사진 왼편으로 벽면에 붙여 놓은 수십 개의 근조 리본과 오른편에 놓인 근조 화한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그 옆에 차려져 있던 고 람방 누르카요의 빈소는 이미 치워져 전등마저 꺼져 있었다.

조문을 오는 사람이 없는지, 빈소를 지키던 사람들은 예기치 않았던 조문객에 당황해 했다. 인도네시아 이주노동자들 역시 쭈뼛쭈뼛 서서 어찌할 바를 몰라 하며 잠시 서로를 지켜보는 시간이 길게만 느껴졌다.

그런 조문객들에게 자리 앉기를 청한 사람은 빈소로 안내했던 선원이었다. 자리에 앉자, 건장한 체격의 남자들 몇이 동석을 하며 고인과 관계가 어떻게 되는지를 물어왔다. 관할 지역 경찰들이라고 밝힌 그들은 고인 부인 요청에 따른 유해 송환이 인도네시아 대사관 도움을 받아 지난 금요일에 이뤄졌다고 말해줬다.

그 가운데 ㈜금양수산 직원으로 보이는 사람은 조문을 온 사람들이 영정도 확인하지 못하고 가야 한다는 사실에 미안해 했다. 그는 고인과 같은 회사에서 근무하던 사람이 네 명이 더 있는데, 그 중 한 명이 부두에 있다면서 급히 전화를 했다. 하지만 연결이 되지는 않았다.

"유해 송환이 이뤄졌지만, 오늘 아침까지 영정을 뒀었는데, 찾아오는 사람이 없어 치웠습니다. 나중에 실종자들 합동 분향소가 차려지면 그때 다시 찾아오시면 고맙겠습니다. 멀리서 오셨는데 죄송하게 됐습니다."


인도네시아 이주노동자들이 조문을 오게 된 계기는 언론에서 금양98호 침몰 뉴스를 들으면서였다. 소식을 들은 이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죽은 사람은 어떻게 돼? 우리가 뭐 할 일이 없을까?"라고 서로 물었다. 그렇다고 그들이 고인과 안면이 있는 사람들은 아니었다. 단지 같은 인도네시아 사람이고, 같은 이주노동자라는 사실이 있을 뿐이었다.

일단 조문이라도 가서 할 일이 있을지를 알아보자고 의견이 모아지자, 일요일 오전 쉼터에 삼십여 명이 모였다. 병원이 위치한 인천까지 교통편 문제가 있어 그 중 열 명만 조문을 하기로 결정하고 출발한 것인데 결국 헛걸음을 하고 만 셈이었다.


"어제 대사관에 전화해서 확인했었는데, 아무런 말도 없었는데...... 잘 가라는 말 한 마디 못하고 보냈네......"

돌아오는 길에 누군가 툭 한마디 던졌다. 그렇게 말한 사람의 입장에서는 아무리 금요일에 유해를 송환했다고 하지만, 평일에 조문을 하지 못하는 이주노동자들을 생각하면 최소한 일요일 오후까지 영정을 차려줬으면 하는 아쉬움이 묻어 있었다.

외국인 고용허가제로 입국해 고기를 잡고, '코리안 드림'이라는 꿈을 낚으려 했던 람방은 그렇게 쓸쓸하게 대한민국을 떠났다. 오늘도 어김없이 언론에선 천안함 관련 뉴스가 쏟아지고 있다. 그런데 힘없고 가진 것 없는 이들의 죽음은 스쳐 지나가는 바람마냥, 뉴스거리가 되지 않는 모양이다. 참 모진 세상이다.
#금양호 침몰 희생자 #이주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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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과 편견 없는 세상, 상식과 논리적인 대화가 가능한 세상, 함께 더불어 잘 사는 세상을 꿈꿉니다. (사) '모두를 위한 이주인권문화센터'(부설 용인이주노동자쉼터) 이사장, 이주인권 저널리스트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저서 『내 생애 단 한 번, 가슴 뛰는 삶을 살아도 좋다』, 공저 『다르지만 평등한 이주민 인권 길라잡이, 다문화인권교육 기본교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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