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버린 우리 말투 찾기 (42) 속 2

[우리 말에 마음쓰기 898] '거울 속 이마', '일본적인 사고 속', '영화 속'

등록 2010.04.14 13:08수정 2010.04.14 13:08
0
원고료로 응원

 

ㄱ. 거울 속 이마에는

 

.. 거울 속 이마에는 데코가 가장 좋아하는 딸기가 앉아 있었습니다 ..  <쓰치다 노부코/김정화 옮김-마빡이면 어때>(청어람미디어,2007) 24쪽

 

딸기 모양으로 만든 머리핀을 꽂아 놓은 모습을 두고 "딸기가 앉아 있었습니다"로 적은 보기글입니다. 이 글월에서 '-었-'을 넣은 대목이 틀리지는 않으나, "앉아 있습니다"로 다듬으면 한결 낫습니다.

 

 ┌ 거울 속 이마에는

 │

 │→ 거울에 비친 이마에는

 │→ 거울에 비쳐진 이마에는

 │→ 거울로 보는 이마에는

 │→ 거울로 이마를 보니

 └ …

 

거울을 보면 내 얼굴이나 몸이 비칩니다. 가만히 거울을 들여다보면, 마치 "거울 속에 내가 들어가" 있는 듯 느낄 수 있습니다. 그래서 보기글처럼 "거울 속 이마"라고 적을 수 있겠지요. 그렇지만, 거울을 보니 "거울에 비친 이마"가 보이지, "거울 속 이마"가 보이지 않습니다. "거울로 내 이마를 보"는 모습이지, "거울 속 이마"를 보는 모습이 아닙니다.

 

차근차근 생각을 기울이면서 말을 해야 어긋나지 않습니다. 곰곰이 살피며 글을 써야 일그러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말을 하는 우리들이건 말을 들려주는 다른 사람들이건 말로 우리를 가르치거나 이끄는 사람들이건 말 한 마디 옳게 가누지 못하고 있는 오늘날입니다.

 

 

ㄴ. 일본적인 사고 속에서

 

.. 그렇다고 하면 일본적인 사고 속에서 기독교를 맛본다고 해도 좋지 않읍니까 ..  <엔도우 슈사뀨/유종미 옮김-내가 믿는 하나님>(샘,1986) 120쪽

 

'일본적인'은 무엇을 말할까 궁금합니다. '일본다운'? '일본사람다운'? '일본에서만 엿볼 수 있는'? '일본에서 으레 나타나는'? '-적(的)'을 붙이면서 두루뭉술하게 하지 말고, 누구나 환히 알아들을 수 있는 말투로 손쉽게 풀어서 적어 주면 좋겠습니다. '사고(思考)'는 '생각'이나 '생각틀'이나 '마음밭'이나 '마음바탕'으로 다듬어 봅니다.

 

 ┌ 일본적인 사고 속에서

 │

 │→ 일본답게 생각하면서

 │→ 일본다운 생각으로

 │→ 일본사람답게 생각하면서

 │→ 일본사람다운 생각을 하면서

 └ …

 

이 글월을 돌아보니 '사고'라는 한자말을 '생각'으로 고쳐쓴다 하더라도 "생각 속에서"처럼 쓸 사람이 있겠구나 싶습니다. "사고 속에서"가 아닌 "생각 속에서"라 적바림하더라도 올바른 말투가 아닌 줄 깨달을 사람이 오늘날에는 얼마 안 되겠다고 느낍니다. "생각하면서"나 "생각을 하면서"나 "생각틀에서"나 "생각하는 테두리에서"라 적바림해야 옳은 줄 헤아릴 사람은 몹시 드뭅니다.

 

아무래도 "사고 속에서" 바로 앞에 '일본적인'이라는 말마디가 붙었기 때문에 '사고'를 '생각'으로 다듬어도 '속'이라는 말투를 털어내지 못하는구나 싶습니다. 글월을 통째로 들여다보면서 말투를 찬찬히 손질해야겠습니다. 내 마음을 알맞게 나타낼 길을 곰곰이 돌아보고, 내 생각을 슬기롭게 뜻을 나눌 길을 한결 깊이 살피며, 내 넋을 알뜰살뜰 주고받을 길을 넉넉히 찾아야겠습니다.

 

말로 먹고살거나 글을 즐겨쓰는 분들은 누구보다 말과 글을 좀더 제대로 살필 줄 알아야 합니다. 말하기나 글쓰기는 말자랑 글자랑이 아니요 말치레 글치레 또한 아니며 말재주 글재주도 아닙니다. 나누는 말글이고 따스한 말글이며 넉넉한 말글이어야 합니다.

 

옳고 바르게 가누면서 너르고 깊은 뜻과 느낌을 담을 말글입니다. 알맞고 알차게 가다듬으면서 애틋하고 싱그러운 기운과 넋을 실을 말글입니다. 대충대충 쓰는 말글이 아닙니다. 아무렇게나 써도 될 말글이 아닙니다. '촉수엄금' 같은 말을 쓰더라도 알아들을 사람이 있다 하고, 이런 말을 못 알아듣는 쪽을 꾸짖는 사회 얼거리인데, 올바른 말글과 올바른 사회라 한다면 '촉수엄금' 같은 말을 써서는 안 됩니다. 전철을 타고 마실을 다니다가 '캐쥬얼 다이닝 레스토랑'이라는 이름을 내세우는 광고판을 보았는데, 이렇게 말재주를 피운다고 해서 어느 밥집 한 곳이 더 돋보이거나 훌륭해 보이지 않을 뿐 아니라, 참다운 광고글이라 할 수조차 없습니다.

 

 ┌ 일본사람 나름대로 생각하면서 기독교를 맛본다고

 ├ 일본사람 테두리에서 기독교를 맛본다고

 ├ 일본사람 생각으로 기독교를 맛본다고

 └ …

 

아름다운 삶을 찾고 아름다운 넋을 가꾸며 아름다운 말을 일굴 우리들이어야 하지 않느냐 생각합니다. 좋은 삶을 찾고 좋은 넋을 가꾸며 좋은 말을 일굴 우리들이어야 하지 않느냐 싶습니다. 맑은 삶을 찾고 맑은 넋을 가꾸며 맑은 말을 일굴 우리들이어야 한다고 느낍니다.

 

 

ㄷ. 영화 속

 

.. 영화 속에서처럼 / 아슬아슬한 고비들을 넘고 또 넘어 / 속도를 따라잡고 마침내는 ..  <서정민-망가진 기타>(삶이보이는창,2006) 50쪽

 

'속도(速度)'라는 한자말을 쓰는 일은 잘못이 아닙니다. 다만, '빠르기'라는 토박이말이 있으니 굳이 '속도' 같은 낱말을 쓰지 않아도 됩니다. 이 보기글은 시인데, 시에서 쓰는 낱말이라 하여도 꼭 '속도'여야 하지는 않으며, 얼마든지 손질하거나 다듬을 수 있습니다.

 

 ┌ 영화 속에서처럼

 │

 │→ 영화에 나오는 모습처럼

 │→ 영화에 비춰지는 모습처럼

 │→ 영화에 그려지듯이

 │→ 영화에서처럼

 └ …

 

이 자리에서는 '속'만 덜고 "영화에서처럼"으로 적으면 됩니다. 달리 더 군더더기를 붙일 구석이 없습니다. 이모저모 꾸밈말을 달 까닭이 없고, 애써 꾸밈말을 달려 한다면 "영화에 나오는 모습"이나 "영화에서 보는 모습"이라고 적으면 됩니다. "영화에서 보듯이"나 "영화에 나오듯이"나 "영화에서 그리듯이"라 적어도 되고요.

 

시에서뿐 아니라 수필도 그렇고 소설도 그러한데, 이야기 하나 엮는 솜씨를 선보이는 글쟁이는 수두룩해도 말과 글을 옳게 여밀 줄 아는 글쟁이는 거의 없습니다. 글을 쓰겠다고 나서면서 말글 바탕을 제대로 닦는 사람은 드물고, 학문을 한다고 외치면서 말글 밑앎을 살뜰히 익히는 사람은 얼마 없습니다.

 

문학이든 학문이든 말과 글로 이룹니다. 정치이든 교육이든 말과 글로 나눕니다. 그렇지만 문학을 하건 정치를 하건 말을 엉터리로 씁니다. 법을 다루든 의술을 다루든 말을 아무렇게나 다룹니다. '우리 글 바로쓰기'는 우리 말글을 보듬겠다는 몇몇 사람들만 익히거나 살필 일이 아닙니다. 어린이집 교사도 익혀야 하고, 아이를 낳아 기를 여느 어버이도 익혀야 하며, 구청장이나 시도 지사로 나서겠다는 분 또한 익혀야 할 일입니다.

 

아이들 앞에서 무슨 말을 어떻게 하시렵니까. 이웃사람과 함께 무슨 말을 어찌어찌 주고받으시렵니까. 우리 아이를 생각하고 우리 이웃을 헤아리면서 내 삶을 곱씹어야 합니다. 우리 아이한테 바른 말을 물려주고 우리 이웃하고 바른 말을 나누며 내 삶에 바른 말을 아로새겨야 아름답습니다.

덧붙이는 글 | - 글쓴이 누리집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cafe.naver.com/hbooks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 글쓴이가 쓴 ‘우리 말 이야기’ 책으로,
<생각하는 글쓰기>가 있고,
<우리 말과 헌책방>이라는 1인잡지가 있습니다.

2010.04.14 13:08 ⓒ 2010 OhmyNews
덧붙이는 글 - 글쓴이 누리집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cafe.naver.com/hbooks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 글쓴이가 쓴 ‘우리 말 이야기’ 책으로,
<생각하는 글쓰기>가 있고,
<우리 말과 헌책방>이라는 1인잡지가 있습니다.
#말익히기 #글다듬기 #우리말 #한글 #국어순화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AD

AD

AD

인기기사

  1. 1 고장난 우산 버리는 방법 아시나요?
  2. 2 마을회관에 나타난 뱀, 그때 들어온 집배원이 한 의외의 대처
  3. 3 삼성 유튜브에 올라온 화제의 영상... 한국은 큰일 났다
  4. 4 세계에서 벌어지는 기현상들... 서울도 예외 아니다
  5. 5 "과제 개떡같이 내지 마라" "빵점"... 모욕당한 교사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