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죽어야 나라가 바로 선다

[역사소설 민회빈강19] 기다려라, 내가간다

등록 2010.04.20 09:15수정 2010.04.20 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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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곶교 살곶이다리 ⓒ 이정근


살곶이 다리에 이르렀다. 1420년 세종의 명으로 공조판서 박자청이 공사를 시작했으나 258척(尺-78m)에 달하는 하천 폭은 쉽게 정복할 수 없는 난공사였다. 교각을 세우면 홍수에 떠내려가기를 수차례 반복했다. 결국 세종이 승하할 때까지 완성하지 못하고 문종, 단종, 세조, 예종 시대를 거쳐 성종 14년에 완공된 다리다. 무려 63년에 걸친 대역사였다. 좌우를 살펴보았다. 멀리 왕실 사냥터 아차산이 보이고 뒤쪽으로 독도 둔덕이 보였다.

"저기가 떠나는 황제를 배웅하기 위하여 임금이 새벽부터 나와 대기하고 있던 곳이구나."


다시 한 번 쳐다보았다. 흔적은 없고 그날을 지켜보았던 미루나무 한 그루가 말없이 서있었다. 삼전도 수항단에서 항복식을 마친 홍타이지는 도르곤에게 뒤처리를 맡기고 서둘러 조선을 떠났다. 심양이 비어있기 때문이다. 그 청태종 환송식이 있었던 곳이 독도 둔덕이다.

일찍부터 나와 기다리라는 용골대의 전갈을 받은 인조는 날이 밝기 전 창경궁을 나섰다. 만백성의 어버이이며 천군만마를 호령하던 임금을 호종한 사람은 오직 한 사람, 도승지 이경직뿐이었다. 모두가 난리에 생사를 알 수 없는 부모형제와 처자식을 찾아 대궐을 떠났고 청나라 군이 무서워 도망가고 없었다.

해가 아차산에 얼굴을 내밀기 전 둑방에 도착한 인조는 하염없이 기다렸다. 우아한 초대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진시(辰時)부터 시작된 환송식에서 인조는 또 다시 홍타이지에게 무릎 꿇고 무운장도를 빌었다.

구차하게 살아가지고 굴욕에 치욕을 더했으니 인생이 불쌍하지 않니?

"제 나라를 치고 돌아가는 침략자의 무사귀환을 비는 심정이 어땠을까?"
씁쓸한 기운이 등골을 타고 흘러 내렸다. 싸늘했다.


"넌, 그 때 삼전도에서 목이 잘려 효수되었거나 적장이 목숨을 살려주었어도 궁에 돌아와 자결해야 해야 했어. 그래야 소현세자가 올라가고 나라가 제대로 굴러갔단 말이야. 그랬다면 후세의 사가들도 널 괜찮게 평가할 거야. 헌데, 구차하게 살아가지고 굴욕에 치욕을 더했으니 인생이 불쌍하지 않니?"
꺽쇠의 입가에 조소가 흘렀다.

"네가 궁에 돌아왔을 때, 널 따르는 놈이 몇이나 되었냐? 다 도망가고 없었잖아? 그 때 이미 백성들 마음이 너에게서 떠났단 말이야. 그런 목숨이 살아가지고 아들을 잡아먹고 며느리 손자를 아작 내려고 해? 흥, 어림없지. 내가 간다. 기다려라."
꺽쇠가 주먹을 불끈 쥐었다.


"너, 임금이라는 거 안다. 임금에게 이렇게 막말해서 미안하다만 '죽으려면 무슨 짓은 못하냐?' 라는 말 들어 봤냐? 넌 구중궁궐에만 있어 그런 소리를 들어보지 못했을지 모르지만 바로 그거다. 나 죽으려고 환장했거든..."
꺽쇠가 입술을 깨물었다.

"하지만 널 죽이기 전에는 난 못 죽어. 암, 못 죽고 말고, 네 목 따고 네가 가쁜 숨을 몰아쉴 때, 내 심장을 찔러 붉은 피를 네 얼굴에 뿜어 줄거야. 아써 임마."
꺽쇠의 비장한 결기가 핏발이 되어 두 눈이 충혈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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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의문 인조반정 당시 반정군이 통과했던 문이다 ⓒ 이정근


"네가 창의문을 부수고 도성에 입성했을 때, 난 쌍수를 들어 환영했어. 배다른 동생을 죽이고 계모를 서궁에 유폐시킨 광해 임금보다 나을 거라고 생각했거든. 근데 그게 아니었어. 서인인지, 남인인지 너희들끼리 다 해쳐먹고 백성들은 도탄에 빠져도 못 본체 했다 말야, 그게 어디 만백성의 어버이냐? 최소한 어버이라면 말이다. 자식들이 배곯지 않은지 정도는 살펴봐야지 않냐? 내 말이 틀렸냐? 이 호랑말코 같은 쉐이야."
시정에서 한참 유행하는 말이 꺽쇠의 입술에서 새어나왔다.

"그리고 너의 결정적인 실책은 대륙의 지각변동을 감지하지 못한 거야. 부모와 자식은 천륜으로 하늘이 무너져도 변함이 없지만 나라와 나라 사이에 불변의 법칙이 어디 있냐? 힘이 상방하면 친구처럼 지낼 수 있고, 조금 달리면 형제 나라, 많이 치우치면 아버지 나라, 뭐 그런 거 아니냐? 다시 말하면 형제 나라 하다가 우리가 힘이 세지면 친구나라 할 수도 있고 더 약해지면 부모나라 할 수도 있다는 얘기야. 내 얘기는 나라 사이에 영구불변의 관계는 없다 그 말이야 이 등신아!"
꺽쇠의 눈빛이 광채를 발했다.

"너는 국제정세를 잘 못 판단하여 전쟁을 불러왔어. 손자병법도 안 읽어봤냐?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이 좋고, 그보다 더 좋은 것은 아예 싸우지 않는 것이라고. 이 곰탱아."
꺽쇠가 마른 침을 삼켰다.

"네가 반정군을 이끌고 자하문 고개를 넘을 때, 나 신임 1년 차였어. 너에게 충성을 바치면 나라와 국가를 위한 일로 생각하고 신명을 바쳤어. 그런데 너희들은 니들 뱃속 채우기에 바빴고  백성들은 안중에도 없었던 거야. 백성 없는 나라가 어디 있냐? 그리고 망해가는 명나라가 밥 먹여 주냐? 이 등신아. 뜨는 해가 좋냐? 지는 해가 좋냐? 이 붕신아."
꺽쇠가 침을 퇴 뱉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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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문조도 100여년 후, 겸재 정선의 눈에 비친 흥인문 주변. 동대문 윗쪽의 동묘가 제법 위엄을 갖췄다. 청나라가 중원을 차지할 당시에는 여진족에 의한 한족 깎아내리기 일환으로 한족이 존경하는 관우의 위상이 추락했으나 여진족이 한족에 동화되면서 위상을 회복했다. 원나라시대 몽골족도 똑같은 길을 걸었다. 3시 방향에 오간수교가 보이고 현재 이대병원이 있는 10시 방향은 소나무가 울창한 낙산이다. ⓒ 이정근


살곶이 다리를 건넌 꺽쇠가 잰 걸음을 놓았다. 왕십리를 지나고 영도교를 건넜다. 커다란 기와집이 시야에 들어왔다. 곧 허물어질듯 을씨년스러웠다. 흥인문 밖에선 가장 크고 웅장한 집이었으나 대륙이 여진족에게 지배당하면서 쇠락한 집이었다.

"이건 또 뭐야?"
꺽쇠가 고개를 들어 쳐다보았다. 동관왕묘(東關王廟)라는 현판이 눈에 들어왔다.

"동묘잖아, 에이 재섭서."
꺽쇠가 가래침을 뱉었다.

"누가 할애비와 손자 아니랄까봐 너희들 하는 짓은 어쩜 이렇게 똑 같냐? 뭐 의주로 몽진했다고? 몽진 좋아하시네. 그게 도망간 게 아니고 몽진이냐? 남한산성에 숨어 있다가 항복하러 나오면서 정축출성이라고 하는 놈이나, 백성들 버리고 도망가면서 몽진이라고 하는 놈이나 다 똑같은 놈들이다. 너들 대가리에 먹물 들어있다고 제발 백성들 상대 장난치지 마라. 에이 더러븐 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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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석정 도성을 버리고 의주로 피난가던 임금의 행차가 임진강에서 해가 저물었다. 일본군 선발대가 한양을 지나 추격해오자 정자를 뜯어내어 불을 밝히고 나루를 건넜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온다. 뒤에 보이는 것이 임진 나루다. 1973년 복원된 화석정 현판은 공교롭게도 박정희 글씨다 ⓒ 이정근


임진년, 일본의 침략을 받은 조선 국왕 선조는 의주로 몸을 피했다. 이 때 호종한 사람이 선조의 다섯째 아들이며 인조의 아버지 정원군이다. 임금의 피신을 뒤늦게 안 백성들이 궁궐에 난입하여 불을 질렀다. 창덕궁과 창경궁이 불탄 것은 왜군에 의해서가 아니라 분노한 백성들에 의해 잿더미로 변했다.

조국의 명운이 백척간두에 걸렸다. 장군 이순신은 조국을 구하고자 분전했다. 임금 선조는 이순신을 의심하고 선전관을 보내 감시했다. 명나라가 참전했다. 일본이 물러가고 선조가 도성에 귀환했다.

명나라의 도움으로 나라를 구했다고 생각한 선조는 관우를 모신 사당을 지어 극진히 모시겠다고 명나라에 머리를 조아렸다. 후한 시대 장군 관우는 송대와 원대를 거치면서 중국인들이 의리의 사나이로 존경하는 인물이다. 알아서 기어주니 명나라는 흐뭇했다. 동관왕묘(東關王廟)라는 현판을 내려주며 고개를 끄덕였다. 명나라의 하명을 받은 선조는 2년간의 공사 끝에 중국식 건물을 완공하였다.

성공한 쿠데타는 역적질이 아니라고?

"정통성이 결여된 놈들이 하는 짓거리라곤 다 그래."
꺽쇠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정통성을 들먹이니깐 기분 나쁘다고? 그래, 말 나온 김에 한번 해보자, 니 할애비 말이다. 명종 임금한테서 후손이 끊어지니까 인달방에 쳐 박혀 있던 중종임금의 서자를 찾아내어 임금 자리에 앉혔잖아. 그 때부터 조선은 정통성이 훼손 된 거야. 왜냐고? 정실이 아닌 후궁 몸에서 난 방계로 흘렀으니까."

명종이 후사 없이 승하하자 왕실은 절망했다. 13살 어린 아들 순회세자를 가슴에 묻은 인순왕후가 왕재(王才))를 찾았으나 마땅한 인물이 없었다. 왕족을 샅샅이 뒤졌다. 겨우 찾아낸 것이 중종과 창빈안씨 사이에서 태어난 덕흥군의 아들 이균(李鈞)이었다. 급한 왕실은 이균을 불러들여 하성군에 봉하고 왕위에 앉혔다. 그가 선조다.

"그리고 너, 성공한 반역이니까 역적질이 아니라고? 멀쩡한 임금을 칼로 위협해 쫓아냈으면서도 역적질이 아니라면 뭐가 반역이냐? 성공했으니까 너희들 입맛대로 실록에 기록해두면 역사가 되고, 후대 사람들이 사실로 인정한다고? 잔머리 굴리지 말엄마, 백성들이 그렇게 우매하지 않거든, 그 사실(事實)이 사실(史實)은 될 수 있을지 몰라도 진실(眞實)은 아냐. 너희들이 아무리 우겨도 역적질은 역적질이단 말야."

콧바람을 씩씩거리며 흥인문을 통과한 꺽쇠가 배오개시장에 들어섰다. 시장은 활기 있게 돌아가고 있었다. 난리 통에 시장은 폐쇄되고 미친개들이 어슬렁거리던 골목길은 제법 점포를 갖췄다. 쌀 한 톨 없던 싸전에 쌀가마가 쌓여있고 잡곡 창고도 그득했다.

서남일을 찾는데는 어렵지 않았다. 두 사람이 마주한 순간, 그가 먼 길 마다하지 않고 찾아온 동지임을 직감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꺽쇠가 품속에서 지편을 꺼내 서남일에게 건넸다. 단 한 획, 을(乙)자가 쓰여진 지편이었다.
#살곶이다리 #창의문 #동묘 #인조 #선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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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事實)과 사실(史實)의 행간에서 진실(眞實)을 캐는 광원. 그동안 <이방원전> <수양대군> <신들의 정원 조선왕릉> <소현세자> <조선 건국지> <뜻밖의 조선역사> <간신의 민낯> <진령군> <하루> 대하역사소설<압록강>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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