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400)

― '공전의 대성공'과 '눈부신 성공' 사이에서

등록 2010.04.27 13:34수정 2010.04.27 1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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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전의 대성공

 

.. 새 오페라 <후궁 탈출>은 1782년 7월 16일의 개막 공연에서 공전의 대성공을 기록했다 ..  <제러미 시프먼/임선근 옮김-모차르트, 그 삶과 음악>(포토넷,2010) 153쪽

 

"7월 16일의 개막(開幕) 공연에서"는 "7월 16일 개막 공연에서"나 "7뤟 26일 첫 공연"이나 "7월 16일에 한 첫 공연에서"로 다듬습니다. "대성공(大成功)을 기록(記錄)했다"는 "크게 성공했다"나 "큰 성공을 거두었다"나 "크게 사랑받았다"로 손질해 줍니다.

 

 ┌ 공전(空前) : (주로 '공전의' 꼴로 쓰여) 비교할 만한 것이 이전에는 없음

 │   - 공전의 대성공 / 공전의 히트 / 공전의 대성황이었던 것이다

 │

 ├ 공전의 대성공을 기록했다

 │→ 어마어마한 성공을 거두었다

 │→ 눈부신 성공을 거두었다

 │→ 엄청나게 성공을 했다

 │→ 크게 사랑을 받았다

 │→ 대단한 사랑을 받았다

 └ …

 

어린 날부터 "공전의 히트" 같은 말마디를 익히 들었습니다. 어린 날에는 텔레비전을 즐겨보고 라디오를 즐겨들었는데, 그무렵 음반이나 책이 잘 팔리면 으레 "공전의 히트"라고들 일컬었습니다.

 

어린 날 "공전의 히트"라는 말마디를 들을 때에 이 말마디가 무엇을 뜻하는지는 몰랐습니다. 말뜻을 알려주며 이 말을 하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이 말을 스스럼없이 꺼내는 분들 가운데 어린 우리들한테 말뜻을 조곤조곤 들려주는 분이란 없었으며, 저나 동무들이나 이 말마디가 무얼 뜻하는지를 궁금해 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맣이 팔리니'까, '잘나가니'까 이렇게 말하는구나 하며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러고 보면 어른들이 '구루마'라고 하면 우리들은 똑같이 '구루마'라고 듣고 말하고 머리에 새기며 살았지 '구루마'가 왜 '구루마'인지를 살피지 않았습니다. 나중에는 '구루마'는 '구루마'이지 '손수레'하고 다르다고까지 말하는 동무가 있었습니다. '바께쓰'는 '바께쓰'이지, 왜 '바께쓰'를 놓고 '양동이'라 하느냐고, 말을 왜 어렵게 하느냐고 따지는 동무가 있었습니다.

 

군대에서는 고참이나 새내기나 "일본말을 안 쓰면 깔본다"고 해서 어처구니없는 일본말을 버젓이 쓰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군대에서 벗어나 책마을 일꾼으로 일할 때에도 '생각있다'는 사람들이 '생각있다'는 책을 만들면서 '도비라'니 '피'이니 '하시라'니 하면서 일본말을 주워섬겼습니다. 참으로 웃긴 모습이라 할 텐데, 어린이 국어사전을 엮는 편집자조차 일본강점기에 스며든 찌꺼기말을 아무렇지 않게 뇌까리고 있었어요. 이런 모양새는 2010년 오늘날에 이르렀어도 하나도 달라지지 않습니다.

 

 ┌ 첫 공연에서 이루 말할 수 없는 사랑을 받았다

 ├ 첫 공연에서 그 누구보다 사랑을 받았다

 ├ 첫 공연에서 누구도 따를 수 없는 사랑을 받았다

 ├ 첫 공연에서 눈부시게 빛나며 사랑을 받았다

 └ …

 

국어사전에서 '공전'을 찾아봅니다. 한자로 '空前'으로 적는다는 낱말입니다. 국어사전을 넘기다가 벙 하고 뜹니다. 뭐 이런 쉬운 한자로 적힌 말이었느냐 싶으면서, '없다/비다(空) + 예전(前)'이라는 짜임새를 들여다보니 참 말이 안 나옵니다. 말 그대로 "예전에 없다"를 뜻하는 한자말 '空前'입니다. 다른 뜻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예 "예전에 없다"요 "지난날에 없다"요 "이제껏 없다"요 "여태까지 없다"입니다.

 

누구한테나 손쉽고 살갑고 알맞게 주고받을 우리 말마디를 내버리고, 고작 이런 하찮은 말마디를 너무 얄딱구리하게 쓰고 있는 우리들임을 느끼니 기운이 쪽 빠집니다. 우리는 참으로 우리 삶을 우리 슬기와 깜냥으로 아름다이 빛내는 말 한 마디를 북돋우는 데에는 영 젬병인 겨레인가요. 우리는 그야말로 우리 넋을 우리 힘과 땀으로 살뜰히 어루만지는 글 한 줄을 일구는 데에는 사뭇 머저리인 사람들인가요.

 

국어사전을 덮고 히유 한숨 한 번 내쉽니다. 아무래도 우리들은 '공전' 같은 낱말을 국어사전에서 뒤적일 일이 거의 없으리라 봅니다. 어린이일 때부터 늙은이가 되도록 이러한 낱말 하나 찾아보며 뜻을 옳게 아로새길 줄 모르는 가운데, 어쩌다가 국어사전을 뒤적인다 하더라도 말뜻과 말느낌과 말짜임을 제대로 읽을 줄 모르겠구나 싶습니다.

 

사랑스러운 말을 찾을 만한 눈썰미가 없습니다. 믿음직한 말을 붙잡을 만한 눈길이 없습니다. 따스한 말을 아낄 만한 눈높이가 없습니다. 넉넉한 말을 깨달을 만한 눈매가 없습니다.

 

 ┌ 공전의 대성공 → 놀라운 큰 성공 / 대단한 큰 성공

 ├ 공전의 히트 → 엄청난 인기 / 대단한 사랑 / 이제껏 없었던 인기

 └ 공전의 대성황이었던 것이다 → 무척 많은 사람한테 사랑을 받았다

 

그렇지만 옳고 바르게 엮인 국어사전 하나 아직 없는 우리 나라입니다. 말풀이와 보기글을 알맞고 알차게 담은 국어사전 하나 아직 없는 우리 겨레입니다. 해마다 한글날을 앞뒤로 우리 글이 온누리에 으뜸간다고 내세우거나 떠벌이면 뭐 합니까. 옳고 바르고 알맞고 알찬 국어사전 하나 엮는 일에는 옳고 바르고 알맞고 알차게 나라돈을 쓰지 못할 뿐 아니라, 슬기와 넋과 힘과 땀을 바치지 못하는 우리들인데요.

 

아니, 국어사전에 앞서 여느 우리 삶자리에서 옹글고 사랑스레 말할 줄 모르는 겨레입니다. 식구들끼리 동무들끼리 이웃들끼리 살갑고 따스히 이야기를 나눌 줄 모르는 겨레입니다. 옷치레 돈치레 집치레에, 자가용치레 학벌치레 계급치레에, 말치레 글치레 이름치레인 겨레입니다. 국민소득이 올라가도 가난한 사람은 똑같이 있으며, 사람들 지식이 높아지고 대학생 숫자가 치솟아도 엉터리 말과 글이 똑같이 있는 우리 나라입니다.

덧붙이는 글 | - 글쓴이 누리집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cafe.naver.com/hbooks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 글쓴이가 쓴 ‘우리 말 이야기’ 책으로,
<생각하는 글쓰기>(호미,2009)가 있고,
<우리 말과 헌책방>(그물코)이라는 1인잡지가 있습니다.

2010.04.27 13:34 ⓒ 2010 OhmyNews
덧붙이는 글 - 글쓴이 누리집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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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 글쓴이가 쓴 ‘우리 말 이야기’ 책으로,
<생각하는 글쓰기>(호미,2009)가 있고,
<우리 말과 헌책방>(그물코)이라는 1인잡지가 있습니다.
#-의 #토씨 ‘-의’ #우리말 #한글 #국어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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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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