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402)

―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누구의 목소리도' 다듬기

등록 2010.05.09 11:08수정 2010.05.09 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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ㄱ.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 윤팔병 선생은 일찍부터 그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다리 밑에서 스스로 자립하며 ..  <전태일기념사업회 엮음-전태일 통신>(후마니타스,2006) 132쪽

 

"스스로 자립(自立)하며"는 겹말입니다. "스스로 일어서며"나 "스스로 이 터전을 일구며"나 "스스로 밑천을 마련해"쯤으로 손봅니다.

 

 ┌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

 │→ 누구 도움도 받지 않고

 │→ 누구한테 도움도 받지 않고

 │→ 누구한테도 도움을 받지 않고

 └ …

 

국어사전에서 '누구'를 찾아봅니다. 보기글을 죽 훑습니다. '누구 + 의'로 적은 보기글은 보이지 않습니다. 후유 한숨을 쉽니다. 그나마 국어사전에서는 보기글을 어설피 싣지 않았군요.

 

그러나, "누구 얼굴"이나 "누구 가방"이나 "누구 책"처럼 '-의'를 안 붙이고 올바르게 적는 분들이 얼마쯤 될까 걱정스럽습니다. 학교를 다니던 어릴 적을 떠올려보면, "야, 이거 누구 연필이야?"라든지, "이거 누구 체육복이야?" 하고 말했습니다. "누구의 연필이야?"처럼 물은 일이 없고, 이렇게 말한 동무도 없었다고 느낍니다.

 

인터넷에서 '누구의' 꼴 말투를 찾아봅니다. "누구의 이상형과 가까울까", "누구의 단발머리가 더 잘 어울리나", "오늘은 누구의 생일이니", "누구의 몸값이 더 높을까요", "누구의 과실인가요", "누구의 것일까", "누구의 발에 공이" 같은 말투를 어렵잖이 찾아볼 수 있습니다. 모두들 "누구 이상형과 가까울까", "누구 단발머리가 더 잘 어울리나", "오늘은 누구 생일이니", "누구 몸값이 더 높을까요", "누구 잘못인가요", "누구 것일까", "누구 발에 공이"처럼 적어야 올바른 말투입니다. 그렇지만 이렇게 적어야 올바른 줄 제대로 깨닫는 분은 생각 밖으로 얼마 안 되는구나 싶습니다. 올바로 가다듬을 말투를 안다 할지라도 때때로 생각을 놓으면서 얄궂게 쓰는 일도 있으리라 봅니다.

 

 ┌ 누구 얼굴일까요? (o)

 └ 누구의 얼굴일까요? (x)

 

우리들이 써 온 말과 우리들이 오늘 쓸 말과 우리들이 앞으로 쓸 말은 토씨 '-의'를 얄딱구리하게 붙이지 않는 "누구 + (무엇)"입니다. "누구 아이예요?" 하고 묻고, "누구 책일까?" 하고 궁금해 하며, "누구 집인데 불쑥 찾아가니?" 하고 고개를 갸웃해야 알맞습니다.

 

그런데 "누구의 주제련가 ……" 하고 첫머리를 여는 노래말처럼, 우리들은 하루하루 '누구 + 의' 말투에 익숙해지고 있습니다. '누구' 뒤에 '-의'를 붙일 까닭이 없으나, '-의'를 안 붙이면 어쩐지 허전하다고 생각하고 맙니다.

 

스스로 곱고 맑은 말투를 붙잡지 않습니다. 스스로 사랑스럽고 믿음직한 말마디에 다가서지 않습니다. 스스로 튼튼하고 싱그러운 말결을 보듬지 않습니다.

 

 ┌ 누구 도움도 받지 않고

 ├ 누구 손길도 받지 못하고

 └ 누구 눈길도 받지 못한 채

 

아이를 키우면서 날마다 생각합니다. 어버이 된 내가 쓰는 말마디는 알게 모르게 아이한테 익숙한 말이 된다고. 어버이 된 내가 올바르게 말하면서 살아간다면 아이는 시나브로 올바르게 말하는 매무새를 익힌다고. 어버이 된 내가 아이 앞에서뿐 아니라 어디에서도 착하고 참된 몸가짐을 지키면서 이러한 몸가짐 그대로 말을 하고 글을 쓰고자 힘을 기울인다면, 아이는 제 어버이가 걸어가는 길을 즐겁고 반갑게 받아들이면서 기쁘게 물려받아 아이 말과 글을 한껏 알차고 어여삐 갈고닦을 수 있으리라고.

 

 

ㄴ. 누구의 목소리도

 

.. 그런데 여기 잡혀 있으면서 어떤 소리도, 누구의 목소리도 듣지 못했다. 깊은 산속이라 큰소리로 불러도 들리지 않는 걸까? ..  <오카 슈조/김정화 옮김-신들이 사는 숲 속에서>(웅진주니어,2010) 59쪽

 

"들리지 않는 걸까"는 "들리지 않을까"나 "안 들릴까"로 다듬어 줍니다. 꽤나 많은 분들이 말끝마다 '것(거)'를 붙이고 있습니다만, 알맞고 바르게 가다듬는 우리 말투를 헤아린다면 '것(거)'은 함부로 붙이면 안 됩니다. "그런 것 같아요"라는 말투에서 '같아요'라는 말마디가 올바르지 않다고들 이야기를 하지만, 이 말투에 함께 깃든 '것' 또한 올바르지 않음을 깨닫는 분은 몹시 드뭅니다. 학교에서도 집에서도 책에서도 알맞고 바르고 슬기롭고 싱그러운 말투를 가르쳐 주지 않은 탓이요, 누가 따로 가르쳐 주지 않는다 할지라도 스스로 옳고 바르게 말투를 익히고 갈고닦으려는 마음이 없는 탓입니다.

 

 ┌ 누구의 목소리도 듣지 못했다

 │

 │→ 누구 목소리도 듣지 못했다

 │→ 누군가 외치는 목소리도 듣지 못했다

 │→ 누군가 부르는 목소리도 듣지 못했다

 │→ 누군가 찾는 목소리도 듣지 못했다

 └ …

 

보기글에서는 '-의'만 덜어도 됩니다. 조금 더 뜻을 또렷하게 나타내고자 한다면 "누군가 외치는 목소리"라든지 "누군가 부르는 목소리"처럼 적어 줍니다.

 

우리 느낌 그대로 꾸밈없이 적으면 됩니다. 우리 생각 그대로 수수하게 밝히면 됩니다.

 

다만 오늘날 우리들은 참다운 우리 느낌이 무엇인지 갈피를 못 잡고 있습니다. 참다운 우리 생각이 어떠한 결인지 헤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흔들리는 삶에 흔들리는 넋이요, 흔들리는 넋에 흔들리는 말입니다. 거꾸로, 흔들리는 말에 따라 흔들리는 넋이 되다가는 흔들리는 삶으로 이어집니다.

 

한 마디 말을 하더라도 한결 사랑스럽게 나누고자 하는 마음이 없습니다. 한 줄 글을 쓰더라도 더욱 따뜻하게 펼치고자 하는 매무새가 없습니다.

 

 ┌ 아무런 목소리도 듣지 못했다

 ├ 아무 목소리도 듣지 못했다

 ├ 어떠한 목소리도 듣지 못했다

 ├ 사람 목소리도 듣지 못했다

 └ …

 

아무런 느낌이 없이 살아가기 때문이라 할는지, 아무런 생각이 없이 목숨줄만 붙어 있는 탓이라 할는지, 아무런 넋이 없이 밥그릇만 비우고 있어서일는지, "아무렴 어때?"라든지 "내 마음이지?"라든지 "다 알아듣잖아?" 같은 모습이 하루하루 늘어납니다. 내 아이를 생각한다면, 내 이웃을 헤아린다면, 내 살붙이와 동무를 곱씹는다면, 우리 삶터가 엉망진창이 되는 꼴을 그대로 지켜볼 수 있겠습니까. 우리 마을이 엉터리로 굴러떨어지거나 내팽개쳐지는 꼴을 마냥 팔짱 낄 수 있겠습니까.

 

말이 무너진 곳에서는 삶이 진작부터 무너져 있습니다. 말만 살린다고 말이 살아나기란 어렵습니다. 사람들 삶을 함께 살리면서 말 또한 나란히 살아나도록 힘을 기울여야 합니다. 우리가 발디딘 곳에서 무너진 삶을 보듬고, 우리가 돈에 눈이 멀면서 무너뜨린 자연을 껴안는 가운데, 우리 얼을 곱다시 빛낼 말을 소담스레 어루만질 수 있기를 빌어 마지 않습니다.

덧붙이는 글 | - 글쓴이 누리집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cafe.naver.com/hbooks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 글쓴이가 쓴 ‘우리 말 이야기’ 책으로,
<생각하는 글쓰기>(호미,2009)가 있고,
<우리 말과 헌책방>(그물코)이라는 1인잡지가 있습니다.

2010.05.09 11:08 ⓒ 2010 OhmyNews
덧붙이는 글 - 글쓴이 누리집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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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 글쓴이가 쓴 ‘우리 말 이야기’ 책으로,
<생각하는 글쓰기>(호미,2009)가 있고,
<우리 말과 헌책방>(그물코)이라는 1인잡지가 있습니다.
#-의 #토씨 ‘-의’ #우리말 #한글 #국어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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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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