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 없애야 말 된다 (314) 자동적

― '자동적으로 덥석 안겼다', '자동적 사고' 다듬기

등록 2010.05.23 11:16수정 2010.05.23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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ㄱ. 자동적으로 덥석 안겼다

 

.. 어쨌든 나는 자동적으로 외할머니의 젖가슴을 찾아 덥석 안겼다 ..  <강무지-다슬기 한 봉지>(낮은산,2008) 109쪽

 

'외할머니의 젖가슴'은 '외할머니 젖가슴'으로 다듬어 줍니다.

 

 ┌ 자동적으로 덥석 안겼다

 │

 │→ 저절로 덥석 안겼다

 │→ 곧바로 덥석 안겼다

 │→ 그대로 덥석 안겼다

 └ …

 

외할머니를 좋아하니 외할머니를 본 그 자리에서 덥석 안깁니다. 할아버지를 좋아하면 할아버지를 오랜만에 보게 될 때마다 그대로 덥석 안깁니다. 언니를 좋아하면 언니와 만날 때마다 바로바로 덥석 안길 테며, 오빠를 좋아하면 오빠 품에 저절로 덥석 안깁니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안기고, 누가 떠밀지 않아도 안기며, 누가 무어라 말하지 않아도, 우리 스스로 덥석 안깁니다.

 

우리 스스로 좋아할 때에 비로소 알맞게 살찌우는 말이 되고, 우리 스스로 아낄 때에 차근차근 가다듬는 말이 되며, 우리 스스로 사랑할 때에 아름답고 알차게 다스리는 말이 됩니다. 우리 스스로 좋아하지 않으면서 우리 말을 가꾸거나 일굴 수 없습니다. 우리 스스로 아끼지 않고서야 우리 말을 북돋우거나 돌볼 수 없습니다. 우리 스스로 사랑하지 않는데 우리 말이 빛나거나 어여쁠 수 없습니다.

 

저마다 좋아하는 길을 찾듯 저마다 좋아하는 말을 찾습니다. 누구나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듯 누구나 사랑하는 말을 받아들입니다.

 

오늘날 우리 말글이 어지럽거나 주눅이 들거나 엉망진창이 되고 있다면, 무엇보다도 우리 스스로 우리 말글을 좋아하지 않고 아끼지 않으며 사랑하지 않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다른 누군가가 가꾸어 주는 말이 아니요, 나라밖 어디에서 살뜰히 보살펴 주는 글이 아니거든요. 말을 하고 글을 쓰는 우리 스스로 가꾸며 보살피는 말이며 글입니다.

 

저절로 나아지는 말이 아니라 땀흘려 일구어야 나아지는 말입니다. 알아서 좋아지는 말이 아니라 힘껏 갈고닦아야 새로워지는 말입니다. 그냥저냥 쓸 만한 말이 아니라 하나하나 추스르고 가다듬어야 빛이 나는 말입니다.

 

 

ㄴ. 자동적 사고

 

.. 주인이 우리를 만만하게 보고 다른 사람들한테 음식을 먼저 준다는 식으로 비판적인 자동적 사고를 한다면 무척 억울하고 화도 날 겁니다 … 남자는 다 나쁘다는 자동적 사고의 증거는 무엇일까요 ..  <정희운-너 아니면 나>(이매진,2009) 133, 139쪽

 

"먼저 준다는 식(式)으로"는 "먼저 준다면서"나 "먼저 준다며"나 "먼저 준다는 투로"로 손봅니다. "사고(思考)를 한다면"은 "생각을 한다면"이나 "생각한다면"으로 다듬고, "날 겁니다"는 "납니다"나 "날 테지요"나 "나겠지요"로 다듬습니다. "사고(思考)의 증거(證據)"는 "생각하는 까닭"이나 "여기는 까닭"으로 손질해 봅니다.

 

 ┌ 비판적인 자동적 사고를 한다면

 │

 │→ 늘 비판만 한다면

 │→ 언제나 비판만 하고 있다면

 └ …

 

"비판적인 자동적 사고"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이와 같이 적힌 글을 읽으면서 이 글쓴이는 왜 이렇게밖에 글을 못 쓰는지 궁금합니다. 이 글을 읽는 다른 사람들은 이 글을 얼마나 잘 알아들을까 궁금합니다. 이 글쓴이는 이렇게 글을 써도 되는지 궁금하며, 이이가 이렇게 쓴 글을 사람들은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이거나 자연스레 받아들이거나 마땅하게 받아들이는지 궁금합니다.

 

"비판적인 생각을 자동적으로 한다"는 이야기인지, "자동적으로 비판적인 생각을 한다"는 이야기인지 알쏭달쏭합니다. 이 두 가지를 함께 가리키는 이야기는 아닐까요? 또는 아예 다른 무슨 생각을 가리키는 셈은 아닐는지요?

 

이렇게 쓰는 말투가 학문을 하는 사람들 말투이니, 이러한 말투는 건드리지 말고 넘어가야 할는지요? 아니, 학문말은 으레 이렇게 쓰고 있으니 이 학문을 파헤칠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 말투에 익숙해야 할 뿐 아니라 '학문하는 사람으로서 쉽고 마땅하게' 여겨야 하는지요?

 

문득 궁금해서 '자동적 사고'라는 말마디를 누리집 찾기창에 넣어 봅니다. 꽤 여러 곳에서 이 말투를 즐겨쓰고 있습니다. 심리학이라고 할는지 인지치료라고 할는지, 이러한 자리에서 '자동적 사고'를 즐겨쓰고 있군요. 더 깊이 파헤쳐 보니, '현실적 사고'와 '반사적 생각' 같은 말투가 보입니다. '자동적'과 '현실적'을 앞에 놓을 때에는 '사고'라는 한자말을 쓰는데, '반사적'에서는 '생각'이라는 우리 말을 씁니다. 쓰고자 한다면 모든 자리에서 똑같이 한자말 '사고'를 쓰든지 …….

 

 ┌ 남자는 다 나쁘다는 자동적 사고의 증거는

 │

 │→ 남자는 다 나쁘다고 여기는 증거는

 │→ 남자는 으레 다 나쁘다고 생각하는 까닭은

 │→ 남자는 늘 다 나쁘다고 헤아리는 까닭은

 └ …

 

'자동적 사고'를 어느 자리에 쓰고 있는가 곰곰이 헤아려 봅니다. "직면을 통한 자동적 사고의 교정훈련", "자동적 사고를 인식하고 그에 따른 자신의 행동을 깨닫는게 자아성장의 시작이다", "자동적 사고의 생각의 실수", "청소년기 부정적 자동적 사고의 내용특수성 검증", "한국판 적대적 자동적 사고 척도의 타당화 연구", "긍정적 자동적 사고", …… 같은 자리에 나타납니다. '자동적 사고'라는 말마디만이 아니라, 이 말마디를 넣은 글월이 모두 어수선하구나 싶습니다. 아니, 저한테는 어수선하구나 싶으나 이 말마디를 즐겨쓰는 학자나 대학생한테는 조금도 어수선하지 않겠구나 싶습니다.

 

"직면을 통하여"를 "곧장 마주하여"로 다듬은들, "자신의 행동을 깨닫는게 자아성장의 시작이다"를 "내가 어떻게 행동하는가를 깨닫는 첫걸음이다"로 손본들, "생각의 실수"를 "생각을 잘못함"이나 "잘못 생각함"으로 손질한들, "척도의 타당화 연구"를 "잣대가 올바른가 살핌"으로 고쳐 본들, 학문을 하는 분들 말마디는 달라질 듯하지 않습니다. 처음부터 학문말을 '자동적 사고'로 굳혀 놓았기 때문에 이 말마디를 비롯해 학문에서 쓰는 모든 글월을 어찌저찌 손볼 길이 없습니다. 누군가 슬기롭게 '자동적 사고'를 쉽고 알맞게 풀어내어 본다 하여도, 이처럼 쉽고 알맞게 풀어낸 말마디를 쓰기란 더없이 힘들겠습니다.

 

아예 여느 사람 삶하고 동떨어진 학문밭이 아닌가 싶습니다. 처음부터 여느 사람 삶자락하고는 나뉘어 있는 학문밭이 아니랴 싶습니다. 법에서 쓰는 말, 경제에서 쓰는 말, 병원에서 쓰는 말, 학교에서 쓰는 말 모두 여느 사람 삶터하고는 울타리를 치고 따로 떨어져 있구나 싶습니다. 이 보기글에서는 '자동적 사고'를 요모조모 손질해 볼 수 있으나, 심리학과 인지치료학을 깊이 들어간 자리에서는 어떻게든 가누기 참으로 어렵습니다.

 

삶이 드러나는 말이 아니라 삶이 없는 말입니다. 삶을 담는 말이 아니라 삶하고 멀어지는 말입니다. 삶이 있는 말이 아니라 삶이 죽는 말입니다.

덧붙이는 글 | - 글쓴이 누리집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cafe.naver.com/hbooks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 글쓴이가 쓴 ‘우리 말 이야기’ 책으로,
<생각하는 글쓰기>(호미,2009)가 있고,
<우리 말과 헌책방>(그물코)이라는 1인잡지가 있습니다.

2010.05.23 11:16 ⓒ 2010 OhmyNews
덧붙이는 글 - 글쓴이 누리집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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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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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 #적的 #우리말 #한글 #국어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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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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