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 쓴 겹말 손질 (90) 판매하고 팔고

[우리 말에 마음쓰기 921] '닭의 계란'이란 무엇을 가리킬까?

등록 2010.05.29 18:41수정 2010.05.29 1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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ㄱ. 판매하고 팔고

.. 조생은 책을 구입해 판매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 단지 파는 사람과 사는 사람 사이에서 거래를 중개해 수수료를 조금 받는 차원이 아니었다 ..  <이중연-고서점의 문화사>(혜안,2007) 72쪽


"중점(重點)을 두었다"는 그대로 두어도 되고, "힘을 모았다"나 "뜻을 두었다"로 다듬을 수 있습니다. '단지(但只)'는 '다만'으로 손보고, "거래(去來)를 중개(仲介)해"는 "다리를 놓아"로 손봅니다. '수수료(手數料)'를 가리키는 토박이말 '귓돈'이 있으나, 이 낱말을 널리 쓰기는 힘들지 않으랴 싶습니다. "조금 받는 차원(次元)이 아니었다"는 "조금 받는 매무새가 아니었다"나 "조금 받는 장사가 아니었다"로 손질해 줍니다.

 ┌ 판매(販賣) : 상품 따위를 팖
 │   - 염가 판매 / 할인 판매 / 판매 전략 / 판매 가격 / 석탄 판매가 부진하여
 ├ 구입(購入) : 물건을 사들임. '사들이기', '사들임'으로 순화
 │   - 구입 비용 / 구입 원가 / 구입 경로 / 구입 대금
 │
 ├ 책을 구입해 판매하는 데 (x)
 └ 파는 사람과 사는 사람 (o)

글쓴이는, 글 첫 줄에서는 '구입-판매'라 적지만, 다음 줄에서는 '파는-사는'이라 적습니다. 하나는 한자말이고 하나는 토박이말입니다. 두 가지 낱말은 뜻이 같으며 쓰임새 또한 같습니다. 우리들도 두 가지 낱말을 섞어서 쓰며, 책이든 신문이든 방송이든 저잣거리에서든 두 가지 낱말이 섞인 채 쓰입니다.

 ┌ 염가 판매 → 싸게 팔기
 ├ 할인 판매 → 깎아 팔기
 ├ 판매 전략 → 파는 길
 ├ 판매 가격 → 파는 값
 └ 석탄 판매가 부진하여 → 석탄이 잘 안 팔려

우리 말로는 '사고팔다'입니다. 한자말로는 '賣買'입니다. 그러나 '사고팔다'라는 말마디보다는 '매매'라는 말마디가 한결 자주 쓰인다고 느낍니다. '매매'란 우리 말 '사고팔다'를 한자로 옮겨적은 낱말일 뿐이나, 이런 얼거리를 바르게 느끼는 분이 몹시 드물며, 아이들한테 바르게 일러 주는 어른을 찾아보기도 퍽 어렵습니다.


그냥저냥 씁니다. 그냥저냥 물려줍니다. 그냥저냥 퍼뜨립니다. 아무래도, 우리 스스로 우리 삶을 그냥저냥 꾸리니까, 그냥저냥 흘려보내니까, 얄궂은 말마디이든 알맞는 말마디이든 제대로 안 살피며 함부로 쓰고 있지 않느냐 싶습니다.

한 번 있는 내 삶이 너무 짧기 때문에, 옳고 바르고 알맞는 말마디를 헤아리는 데에 쓰는 품이 너무 아깝기 때문일까요. 마음 쏟고 생각 쏟고 땀 쏟을 자리가 몹시 많기 때문에 말이나 글은 얼추 뜻만 알아챌 수 있으면 넉넉하다고 여기기 때문인가요.


 ┌ 구입 비용 → 사는 값
 ├ 구입 원가 → 사들인 값
 ├ 구입 경로 → 사들인 길
 └ 구입 대금 → 산 값 / 사며 치른 값

한 번 있는 내 삶이 길든 짧든, 언제나 알차고 싱그럽고 야무지게 꾸리려는 매무새로 말이고 글이고 생각이고 마음이고 하나하나 보듬어야 하지 않으랴 싶습니다. 한 번 있는 내 삶이니, 더더욱 어느 곳이든 제대로 마음을 바치고 땀을 바쳐야지 싶습니다.

할 일이 많은 우리들이기 때문에, 괜한 말잘못으로 비뚤어지거나 얄궂게 꼬여 궂은 일이 늘지 않도록 잘 다스릴 노릇이 아닌가 싶습니다. 대충대충 넘어가는 일이 늘수록 나중에 추스를 곳이 늘어나는 만큼, 처음부터 말이든 다른 일이든 무엇이든 빈틈이 없도록 힘쓰고 애쓸 노릇이 아니랴 싶습니다.

ㄴ. 닭의 계란

.. 거기에서는 농민들이 자기가 만든 바구니라든가 자기가 재배한 배추나 집에 있는 닭의 계란 같은 것을 팔아도 되었어요 ..  <테사 모리스-스즈키/한철호 옮김-북한행 엑서더스>(책과함께,2008) 385쪽

"자기(自己)가 만든"은 그대로 두어도 되나, "스스로 만든"으로 다듬을 수 있습니다. "자기가 재배(栽培)한"은 "손수 기른"이나 "손수 거든"이나 "손수 가꾼"으로 손질합니다.

 ┌ 계란(鷄卵) : 닭의 알. '달걀'로 순화
 │
 ├ 닭의 계란 같은 것을
 │→ 닭알 같은 것을
 │→ 닭알 따위를
 │→ 달걀 따위를
 └ …

이 자리에서는 '남녘이 아닌 북녘에서 살던 사람이 하는 말'을 옮겨적었습니다. 그래서, 이 보기글에서는 '달걀'이 아닌 '닭알'로 적어야 올바릅니다. 다만, 북녘사람 말투라 하여도 '달걀'로 고쳐 적을 수 있겠지요. 이 글을 읽는 사람은 남녘사람임을 헤아리면서.

그나저나, "닭의 계란"처럼 적는 글월은 얼마나 얄궂은지요. 자칫 잘못해서 이처럼 적었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만, "오리의 오리알"이나 "새의 새알"이나 "닭의 달걀"이나 "닭의 닭알"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겠습니까. 그냥 한자말 '계란'이라고만 하든지, "닭이 낳은 알"이라고 하든지 '달걀'이라고 적어야 올바릅니다.

 ┌ 닭의 알 (x)
 └ 닭이 낳은 알 (o)

국어사전을 들여다보면, '계란' 풀이를 "닭의 알"로 해 놓습니다. 뭔가 엉뚱하구나 싶어, '달걀' 풀이를 찾아봅니다. '달걀' 풀이는 "닭이 낳은 알"로 되어 있습니다.

그래, 우리가 한자말 '계란'을 쓰든, 이런 얄궂은 말을 털어내고 토박이말 '달걀(닭알)'을 쓰든, 국어사전에서는 낱말풀이를 옳게 해 놓아야 합니다. "닭이 낳은 알"이라 '달걀'이거나 '계란'입니다. 한자말 '계란'은 "鷄(닭) + 卵(알)"이에요. 이런 말짜임과 말풀이를 있는 그대로 살피지 못한다면, 이 보기글처럼 "닭의 계란"처럼 어이없는 글을 쓰고 맙니다. 더구나, 국어사전마저 말풀이를 엉터리로 달면서 우리 스스로 못 느끼기도 하고, 이런 엉터리 말풀이를 읽으면서 우리 말마디와 글줄이 어지러워집니다.

덧붙이는 글 | - 글쓴이 누리집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cafe.naver.com/hbooks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 글쓴이가 쓴 ‘우리 말 이야기’ 책으로,
<생각하는 글쓰기>(호미,2009)가 있고,
<우리 말과 헌책방>(그물코)이라는 1인잡지가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누리집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cafe.naver.com/hbooks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 글쓴이가 쓴 ‘우리 말 이야기’ 책으로,
<생각하는 글쓰기>(호미,2009)가 있고,
<우리 말과 헌책방>(그물코)이라는 1인잡지가 있습니다.
#겹말 #중복표현 #우리말 #한글 #국어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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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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