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쇄살인, 그리고 독자에게 던져진 도전장

[서평] 아리스가와 아리스 <쌍두의 악마>

등록 2010.07.27 15:17수정 2010.07.27 16:05
0
원고료로 응원
a

<쌍두의 악마> 겉표지 ⓒ 시공사

고전추리소설의 황금기를 이끌었던 작가 엘러리 퀸은 자신의 '국명 시리즈'에서 독자들에게 공개적인 도전장을 던진 것으로 유명하다.

작품의 후반부에 어김없이 등장하는 도전장은 간략하게 말해서 '모든 단서를 보여주었다. 추측이나 넘겨짚기가 아니라 제시된 단서를 가지고 논리적으로 범인을 맞출 수 있다. 범인이 누구인지 맞춰 봐라!' 는 내용이다.


이런 도전장이 있다고 해서 독자가 범인을 '논리적으로' 알아 맞추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하긴 그게 쉬운 일이라면 작가가 엄청난 부담을 무릅쓰고 도전장을 던지지도 않았을 것이다.

도전장을 던질 때마다 트릭을 간파한 독자들이 범인을 맞추기라도 하면 작가로서 그만큼 체면 구기는 일도 없다. 심할 경우 밥줄이 끊길지도 모른다.

어떤 독자들은 '정말 모든 단서를 보여주었을까?'라고 의심할 수도 있다. 단서도 단서지만 복잡하게 얽힌 인간관계와 범행의 동기 등을 따져 나간다면 나온 단서만으로 범인을 지목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렇더라도 이런 도전장은 독자들을 흥미롭게 한다. 작가는 얼마나 자신이 있기에 도전해보라고 독자들을 도발할까?

외딴 마을에서 발생하는 연쇄살인

엘러리 퀸의 영향을 많이 받은 일본작가 아리스가와 아리스의 1992년 작품 <쌍두의 악마>(아리스가와 아리스 저, 시공사 펴냄)에서도 이런 도전장이 후반부에 연달아 세 차례 나온다. 주어진 단서를 따라가며 논리적으로 범인을 추적하는 추리물을 좋아하는 독자에게는 한번 도전해볼 만한 작품인 것이다.


무대는 일본 시코쿠에 있는 나쓰모리 마을이다. 나쓰모리는 사방이 막힌 산속에 300가구 남짓한 집들이 거북이처럼 웅크리고 있는 외딴 마을이다. 폭우가 쏟아지면 외부로 통하는 길이 단절되기도 하고 전화와 전기가 끊기기도 한다. 이 나쓰모리 마을에서 좀더 안쪽으로 들어가서 강을 건너면 기사라 마을이라는 작은 촌락이 나온다.

기사라 마을은 태생적으로 좀 독특한 곳이다. 원래 살던 사람들이 모두 떠나버려서 폐촌이 된 이 마을을, 증권계의 거물이었던 기사라 가쓰요시가 사들인 것이다. 그리고 기사라는 그 마을에 몇몇 무명 예술인들을 데리고 틀어박혔다. 가난한 예술인들이 경제적인 고민없이 창작에만 몰두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든 것이다.


당연히 이 마을은 외부로부터 완벽하게 차단된다. 일반인들은 사유지인 기사라 마을에 들어가지 못하고 방송인이나 기자도 출입금지다. 이 마을에 에이토 대학 추리소설연구회 회원인 마리아가 우여곡절 끝에 들어가게 된다. 마리아는 기사라 마을에 틀어박혀서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하며 외부와의 연락도 삼간다.

걱정이 돼서 찾아온 부모님과도 만나려 하지 않고 언제까지 이 마을에 머물겠다는 얘기도 없다. 마리아의 아버지는 고민끝에 마리아의 동기와 선배들로 구성된 추리소설연구회 회원들에게 이 문제를 논의한다. 그 마을에 가서 마리아에게 무슨 일이 있는지 알아보고, 가능하다면 마리아를 그곳에서 데리고 나와 달라는 것이다.

회원들은 의뢰를 받고 나쓰모리 마을과 기사라 마을로 향하지만 뾰족한 수가 없다. 기사라 마을 사람들은 노골적인 적의를 드러내며 일반인들을 마을에 들이려 하지 않는다. 전화를 해도 소용없다. 기사라 마을에 관한 궁금증이 증폭되는 가운데 폭우가 몰려오고 전화와 전기가 끊긴 두 마을에서 연쇄살인이 터진다.

독자들은 어떻게 작가의 도전장을 받아들일까

추리소설 애호가들이 모인 곳 주변에서 살인사건이 발생하고, 그 애호가들은 서로 머리를 맞대고 추리한 끝에 형사들을 앞질러서 사건을 해결한다. 추리소설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쯤은 이런 상상을 해보았을 것이다.

물론 현실속의 사건은 소설처럼 앞뒤가 딱딱 맞아 떨어지지 않을지도 모르고, 소설과 달리 복잡하게 얽혀있지 않을 수도 있다. 그렇더라도 추리소설을 읽으며 쌓아올린 내공을 실제 사건에 적용해 본다는 것은 무척 흥미로운 일이다. 자신의 추리가 옳건 그르건 상관없이.

작품 속에서 에이토 대학 추리소설연구회 회원들도 그렇게 사건을 바라보며 추리한다. 조용한 시골마을에서의 살인사건은 잔인하지만 회원들은 마음껏 추리의 날개를 펼치면서 사건의 진상에 다가간다.

그리고 그 안에서 독자에게 도전장을 던진다. 대부분의 단서는 실질적인 탐정역할을 하는 회원들에게서 나온다. 추리소설을 좋아하는 독자라면 <쌍두의 악마>를 읽으면서 그 도전에 응해보는 것은 어떨까.

자신의 추리가 틀려서 헛다리를 짚더라도 단서와 복선을 추적하는 재미가 있다. 어쩌면 자신의 추리와는 다른 방향으로 진상이 밝혀져야 더욱 만족스러운 작품이 될 것이다. 추리소설의 묘미 가운데 하나는 독자가 작가에게 속아 넘어가는 데에 있기 때문이다.

덧붙이는 글 | <쌍두의 악마> 1, 2. 아리스가와 아리스 지음 / 김선영 옮김. 시공사 펴냄.


덧붙이는 글 <쌍두의 악마> 1, 2. 아리스가와 아리스 지음 / 김선영 옮김. 시공사 펴냄.

쌍두의 악마 1

아리스가와 아리스 지음, 김선영 옮김,
시공사, 2010


#쌍두의 악마 #아리스가와 아리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3일마다 20장씩... 욕실에서 수건을 없애니 벌어진 일
  2. 2 참사 취재하던 기자가 '아리셀 유가족'이 됐습니다
  3. 3 [단독] '윤석열 문고리' 강의구 부속실장, 'VIP격노' 당일 임기훈과 집중 통화
  4. 4 23만명 동의 윤 대통령 탄핵안, 법사위로 넘어갔다
  5. 5 이시원 걸면 윤석열 또 걸고... 분 단위로 전화 '외압의 그날' 흔적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