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의 TV 사극에서 정조 역을 맡은 두 배우. 왼쪽은 <성균관 스캔들>의 조성하, 오른쪽은 MBC <이산>의 이서진.
KBS·MBC
위와 같이 <성균관 스캔들> 속의 금등지사나 화성천도 이야기는 '새하얀' 거짓에 불과하지만, 이 드라마의 최종회에서 강조된 것 중 하나 만큼은 확실한 진실이다. 정조가 새로운 조선을 건설하겠다는 웅대한 포부를 가슴에 담아두었다는 내용만큼은 분명한 진실이다. 정조가 꿈꾸었다는 웅대한 포부의 실체를, 정조의 어머니인 혜경궁 홍씨가 남긴 회고록인 <한중록>에서 확인할 수 있다.
<한중록>에 따르면, 정조는 갑자년(甲子年)에 '대형사고'를 칠 계획을 갖고 있었다고 한다. 음력인 갑자년을 양력으로 환산하면, 서기 1804년 2월 11일부터 1805년 1월 30일까지다. 그래서 갑자년은 1804년이 될 수도 있고 1805년이 될 수도 있지만, 뒤에서 설명되는 바와 같이 정조는 1804년 3월을 전후해서 대형사고를 칠 계획을 갖고 있었던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이 글에서는 갑자년을 1804년으로 간주하고 이야기를 계속 전개하겠다.
그런데 왜 하필 갑자년이었을까? 정조의 생각을 이해하려면, 과거 동아시아인들의 시간관념을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현대 한국인들은 100년 혹은 1000년을 단위로 시대를 나눈다. 한국인들이 1999년 12월 31일에 그렇게 요란스레 '호들갑'을 떤 것은 그런 시간관념 때문이었다. 만약 지금까지도 계속해서 음력을 사용했다면, 1999년 12월 마지막 날의 그 같은 '호들갑'은 결코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음력을 사용하는 사회에서는 100년이나 1000년에 대한 관념이 그다지 강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사회에서는, 갑자년으로 시작해서 계해년으로 종결되는 60주년 관념이 훨씬 더 강력한 것이다.
그래서 만약 지금까지도 음력이 계속 사용됐다면, 새천년 전야에 호들갑을 떠는 서양인들을 보면서 한국인들은 "쟤들 왜 저래? 금년은 을묘년이고 새로운 갑자년(2044)이 도래하려면 앞으로 45년은 더 기다려야 하는데"라며 의아해 했을 것이다. 이처럼 음력을 사용한 과거 동아시아에서는 갑자년이 새로운 60년 즉 새로운 시대의 시작이었다.
갑자년이 새로운 60년의 시작이라는 점 외에도, 정조가 갑자년을 고대한 데에는 또 다른 이유가 있었다. 을묘년에 태어나 임오년에 죽은 사도세자가 갑자년에 70세가 된다는 점도 작용했던 것이다. 갑자년 1월 21일(1804.3.2)은 사도세자 탄생 70주년이 되는 날이었다. 그래서 정조에게는 갑자년이 더욱 더 의미 있는 해였던 것이다. 아마도 정조가 대형사고를 계획한 시점은 아버지의 생일이 있는 1804년 3월을 전후한 때였을 것이다.
정조, 대화합의 정치 속에서 '새로운 조선'을 꿈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