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균관 스캔들> 속의 문재신(유아인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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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가 고시학원 혹은 입시학원으로 변질될까봐 염려했다는 점에서, 성균관의 교육자들은 오늘날의 고등학교 교육자들과 비슷한 고민을 가진 셈이다. 성균관 유생들의 대과 합격률이 높아지는 것도 바람직한 일이지만, 올바른 학문적 소양을 갖춘 건전한 관료들을 양성한다는 성균관의 취지를 달성하려면 훌륭한 면학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이 무엇보다 필요했던 것이다.
오늘날에는 고등학생들이 입시에만 매달리고 학교 수업을 등한히 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내신제라는 제도를 두고 있다. 내신제의 근본 취지는 고교교육 정상화라 할 수 있다. 내신제의 취지가 얼마나 잘 관철되고 있는지는 장담할 수 없지만, 학교가 입시학원 일변도로 변질되지 않도록 하는 데에 이 제도가 일정한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과거의 성균관 교육자들도 오늘날의 교육행정가들과 비슷한 마인드를 갖고 있었던 것 같다. 이들 역시 일종의 내신제라 할 수 있는 원점제(圓點制)를 통해 유생들의 마음을 정규 교육과정에 붙들어 두려고 노력했기 때문이다.
오늘날에는 석차라든가 출결석, 봉사활동, 입상성적이라든가 하는 다양한 기준을 근거로 내신을 평가하지만, 성균관의 내신제인 원점제는 그렇게 복잡하지 않았다. 그것은 아주 단순하고 명쾌한 제도였다. 어떤 제도였을까?
<성균관 스캔들>의 시대적 배경인 정조시대에 실제로 성균관에서 생활한 윤기(1741~1826년)라는 선비가 남긴 반중잡영(泮中雜詠) 220수 속에서 원점제의 이모저모를 확인할 수 있다. 반중잡영은 성균관 내부(泮中)에 관한 갖가지 시(雜詠)로서 윤기의 유고시집인 <무명자집>에 수록되어 있다.
반중잡영의 어느 시에 따르면 "아침저녁으로 연달아 참석해야만 1점이 된다"고 했다. 아침저녁으로 연달아 무언가를 해야만 내신 점수 1점을 받았다는 것이다. 그 '무언가'가 무엇인지는, 이 시에 딸린 윤기 자신의 해설에서 확인할 수 있다.
"하루에 한 번 식당에 참석하는 것으로는 점수 계산을 허용하지 않고, 반드시 아침저녁으로 연달아 참석한 연후에야 1점이 되었다."성균관에서 아침식사와 저녁식사를 한 유생에게 원점 1점 즉 내신점수 1점을 부여했다는 것이다. 아침만 먹는 경우나 저녁만 먹는 경우에는 점수를 전혀 부여하지 않았다. 0.5점이란 개념이 인정되지 않은 것이다.
학교 식당에서 하루에 두 끼를 먹어야만 내신 1점을 받을 수 있도록 한 것은, 개별 유생의 시간표를 학교의 시간표에 맞춤으로써 유생의 하루일과가 학교를 중심으로 영위되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다. 출결석 실태나 석차나 봉사 성적이 좋은 유생에게 내신 점수를 준 게 아니라, 학교와 학업을 자기 생활의 중심에 두는 유생에게 점수를 부여했던 것이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학우들과 함께 식사를 하는 부지런한 유생이라면 강의에도 빠지지 않을 것이고, 밖에 외출했다가도 저녁에 일찍 돌아와서 학교에서 식사를 하는 성실한 유생이라면 다른 데에 정신을 팔지도 않을 것이라는 생각 하에 위와 같은 제도를 고안했다고 볼 수 있다.
사실, 밤에 열심히 공부하다 보면 아침에 늦게 일어나서 아침 식사를 거를 수도 있다. 하지만, 성균관은 유생들이 제때 자고 제때 일어남으로써 균형 잡힌 생활을 영위하기를 희망했다. 요즘 말로 하면, 저녁형 인간보다는 '아침형 인간'을 양성하려 한 것이다.
성균관에서 밥 많이 먹으면 출세길도 빨라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