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425)

― '들여다보는 정도의 대상', '비난의 대상', '타도의 대상' 다듬기

등록 2010.11.30 15:19수정 2010.11.30 1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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ㄱ. 들여다보는 정도의 대상

.. 어머니나 가족 중의 누군가가 한 번쯤 들여다보는 정도의 대상이 되었다 ..  <고은-황토의 아들>(한길사,1986) 30쪽


'가족(家族)'은 '식구'로 고쳐쓰고, '중(中)의'는 '가운데'로 고쳐 줍니다.

 ┌ 한 번쯤 들여다보는 정도의 대상이 되었다
 │
 │→ 한 번쯤 들여다볼 뿐이었다
 │→ 한 번쯤 들여다보고 말았다
 │→ 한 번쯤 들여다보기만 했다
 └ …

살가이 잘 쓰는 말투든, 얄궂게 잘못 쓰는 말투든 누군가 가르쳐 주기 마련입니다. 누군가 가르쳐 주었기에 배워서 씁니다. 아무한테서도 안 배우고서 쓰는 말투란 없습니다. 어릴 적에 부모님이나 마을사람들 말을 듣고서 배우든, 책을 읽어서 배우든, 우리들은 누군가한테서 말을 배웁니다.

이렇게 배운 말은 오래도록 내 머리와 입과 손에 남습니다. 뒷날 내 말투가 살갑다고 느끼든 얄궂다고 느끼든, 오래도록 배거나 익은 말투를 고치거나 다듬기는 어렵습니다. 깊이 뿌리내려 있고, 널리 자리잡고 있거든요.

처음부터 옳게 배우도록 애써 주어야 합니다. 처음부터 그릇되게 길들지 않도록 마음써 주어야 합니다. 처음부터 알맞고 흔들림이 없도록 다스려 주어야 합니다. 처음부터 어긋나게 물들지 않도록 헤아리고 보듬어야 합니다.


 ┌ 한 번쯤 들여다보고 말 뿐이었다
 ├ 한 번쯤 들여다보기만 할 뿐이었다
 ├ 한 번쯤 들여다보기는 해 주었다
 ├ 한 번쯤 들여다보기는 했다
 └ …

이상한 말투를 나중에 아예 안 쓰게 되었다 하여도 마음속 깊은 곳에 조용히 웅크리고 있을 뿐입니다. 서울사람들한테서는 느끼기 어렵지만, 경상도나 전라도 사람들을 보면 쉬 느낄 수 있어요. 제 사투리와 높낮이가 죽는 날까지 이어갑니다. 제 말씨와 말투가 언제까지나 이어집니다.

이리하여 글쟁이들 말투를 살피면 퍽 씁쓸해요. 이분들 말투는 입보다는 책으로 익혔을 텐데도 '어릴 적부터 입으로 익힌 말투' 못지않게 당신들 얄궂은 대목을 씻어내지 못하거든요. 털어내지 못합니다. 그냥 그대로 얄궂은 말과 글을 마구마구 쓰며 살아요.

사람이나 어떤 물건을 한 번쯤 가만히 들여다보고 그친다면, "들여다보고 만다"고 하거나 "들여다볼 뿐이다"고 말합니다. 그렇지만 보기글에는 "들여다보는 정도의 대상이 되었다"고 적어요. 잔뜩 이 말 저 말 갖다 붙입니다. 덕지덕지 말을 꾸밉니다. 이렇게 꾸미는 말버릇, 아니 글버릇은 언제 어느 책에서 보고 배웠을까요. 언제부터 이렇게 손에 착 달라붙는 글투가 되었을까요. 왜 이런 말투를 떼어낼 생각은 조금도 없을까요.

ㄴ. 비난의 대상

.. 그리하여 1906년 3월 초순에는 군인과 순찰의 싸움이 있었고, 풍기 문제로 협률사는 비난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  <유민영-한국극장사>(한길사,1982) 17쪽

'초순(初旬)'은 '첫머리'로 다듬습니다. "군인과 순찰의 싸움이 있었고"는 "군인과 순찰이 싸우기도 했고"로 다듬어 봅니다.

 ┌ 비난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
 │→ 비난을 받기도 했다
 │→ 비난거리가 되기도 했다
 │→ 손가락질을 받기도 했다
 └ …

비난을 받는 사람이 "비난의 대상"일까 궁금합니다. 일본말로 적는다면 "非難の對象"처럼 적을 텐데, 우리 말로 적을 때에는 "비난받는 사람"이나 "비난받는 대상"처럼 적어야 알맞아요. 보기글에서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로 적어 보아도 넉넉합니다. '비난(非難)'이라는 한자말을 쉽게 풀어서 '손가락질'이라 해도 어울립니다. 이렇게 다듬어 주면 토씨 '-의'는 저절로 떨어지니 훨씬 낫다고 할 수 있네요. "손가락질을 받기도 했다"라든지 "쓴소리를 듣기도 했다"라든지 "나쁜 소리를 듣기도 했다"라든지 "꾸지람을 듣기도 했다"라든지 등도 적어 볼 만합니다.

ㄷ. 타도의 대상

.. 그들 자본가에게서 인간성을 기대한다는 것은 악마에게서 선의를 기대하는 것보다 더 어리석은 일입니다. 놈들은 타협이나 화해의 대상이 아니라 오직 타도의 대상일 뿐입니다 ..  <김남주-시와 혁명>(나루,1991) 197쪽

"인간성(人間性)을 기대(期待)한다는 것은"은 "사람됨을 바라는 일은"이나 "사람다운 마음을 바라는 일은"으로 다듬습니다. '악마(惡魔)'는 그대로 두어도 되지만, '나쁜 놈'이나 '나쁜 녀석'으로 손볼 수 있습니다. "기대하는 것보다"는 "바라기보다"나 "꿈꾸기보다"로 손질합니다.

 ┌ 타도(打倒) : 어떤 대상이나 세력을 쳐서 거꾸러뜨림
 │   - 타도 대상 / 외세 타도를 주장했다 / 독재자 타도 운동이 벌어지고 있다
 │
 ├ 타도의 대상일 뿐입니다
 │→ 거꾸러뜨릴 녀석일 뿐입니다
 │→ 거꾸러뜨려야 할 뿐입니다
 │→ 무찌를 녀석일 뿐입니다
 │→ 무찔러야 할 뿐입니다
 │→ 물리칠 녀석일 뿐입니다
 │→ 물리쳐야 할 뿐입니다
 └ …

한자말 '타도'를 써야겠다면 쓸 노릇이지만, 알맞게 써야 합니다. "타도의 대상"이 아닌 "타도할 대상"이거나 "타도 대상"입니다. 어찌어찌 자꾸 말잘못이 나타나 군더더기 토씨 '-의'를 붙이고 말았다면 '타도'를 걸러내어 "거꾸러뜨릴"을 넣거나 "쓰러뜨릴"을 넣거나 "무찌를"을 넣거나 "물리칠"을 넣거나 "이겨낼"을 넣어 줍니다.

 ┌ 타협이나 화해의 대상이 아니라
 │
 │→ 타협이나 화해할 사람이 아니라
 │→ 타협이나 화해할 수 없고
 │→ 우리가 물러서거나 손을 맞잡을 사람이 아니라
 │→ 우리가 물러서거나 손을 맞잡을 수 없고
 │→ 서로 한뜻이 되거나 손을 잡을 수 없고
 └ …

한자말 "타협(妥協)이나 화해(和解)"를 써야겠다면 쓸 일이지만, 이 또한 알맞게 써야 합니다. "타협의 대상"이나 "화해의 대상"이 아닙니다. "타협 대상과 화해 대상"이요, "타협할 대상과 화해할 대상"입니다. 이래저래 글잘못이 드러나 구질구질 토씨 '-의'를 끼워넣고 말았다면 '타협'이나 '화해'를 풀어내어 "물러서고 손을 잡을"을 넣거나 "뜻을 맞추고 손을 맞잡을"을 넣습니다. 또는 "어깨동무할"이나 "사이좋게 지낼"을 넣어 봅니다.

알맞게 쓸 말을 생각해 줍니다. 바르게 넣을 글을 헤아려 봅니다. 착하게 쓰고 참다이 쓰며 곱게 쓸 이야기를 곱씹습니다.

하나씩 가다듬을 말이며 글입니다. 차분히 돌이키며 어루만질 말이자 글이에요. 따스히 보듬고 넉넉히 가꿀 말이랑 글입니다.

한 마디를 읊든 두 마디를 외든 매한가지입니다. 내 사랑을 한결 깊이 담도록 마음을 쏟아 주면 좋습니다. 내 믿음을 한껏 즐거이 싣도록 생각을 기울여 주면 기쁩니다. 이렁저렁 쓰는 말이 아닙니다. 여러모로 더 살피면서 쓸 말입니다. 대충 쓰거나 아무렇게나 써도 되는 말이 아닙니다. 곰곰이 톺아보면서 알뜰살뜰 아껴 줄 말입니다.

돌아올 말이 곱기를 바라면서 건네는 말을 곱게 가다듬지 않습니다. 언제나 나부터 곱게 말을 할 뿐입니다. 늘 나 스스로 내 말과 넋과 삶을 곱게 여밀 노릇입니다. 어디서나 내 매무새를 곱다시 추스릅니다. 어느 곳에서든 내 마음밭을 곱다시 일구며 살아갑니다.

머리로 짓는 말이 아니라, 몸으로 내놓는 말입니다. 지식으로 짜맞추는 글이 아니라, 삶으로 길어올리는 글입니다. 대단한 한글이거나 훌륭한 토박이말이 아니에요. 수수한 한글이요 사랑스러운 토박이말입니다.

덧붙이는 글 | - 글쓴이 누리집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cafe.naver.com/hbooks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 글쓴이가 쓴 ‘우리 말 이야기’ 책으로,
<사랑하는 글쓰기>(호미,2010)와 <생각하는 글쓰기>(호미,2009)가 있고,
<우리 말과 헌책방 (1)∼(9)>(그물코)이라는 1인잡지가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누리집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cafe.naver.com/hbooks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 글쓴이가 쓴 ‘우리 말 이야기’ 책으로,
<사랑하는 글쓰기>(호미,2010)와 <생각하는 글쓰기>(호미,2009)가 있고,
<우리 말과 헌책방 (1)∼(9)>(그물코)이라는 1인잡지가 있습니다.
#-의 #토씨 ‘-의’ #우리말 #한글 #국어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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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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