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애이불비
.. 한 번도 내게, 유년의 슬픔이나 비루함을 표현하지 않았던 엄마만의 애이불비哀而不悲. 50년 치를 한꺼번에 우는 것 같은 통곡을 보며, 적이 놀랐었다 .. <민봄내-그림에 스미다>(아트북스,2010) 19쪽
'유년(幼年)'은 '어릴 적'이나 '어린 날'로 다듬습니다. 그런데 '비루'가 '鄙陋'인지 '悲淚'인지 알 길이 없습니다. 사람들이 흔히 쓰는 한자말 '비루'는 "너절함"을 뜻하는 '鄙陋'인데, 이 자리에서는 아무래도 "슬퍼서 흘리는 눈물"을 뜻하는 '悲淚'여야 알맞지 않으랴 싶습니다.
보기글을 곰곰이 생각해 봅니다. "유년의 슬픔이나 비루함"에서 '비루'가 "슬퍼서 흘리는 눈물"을 뜻하는 한자말이었다면 잘못 쓴 겹말 글월입니다. "너절함"을 뜻하는 한자말이었다면 글쓴이 어머니를 얄궂게 깎아내릴 뿐 아니라 글흐름하고 안 어울립니다. 글쓴이는 이 자리에서 "슬픔과 눈물"이라고 적을 노릇이 아닌가 싶고, 이렇게 적어야 사람들이 옳고 바르게 알아듣지 않으랴 싶습니다.
글이란 자잘한 말장난이나 글장난이 아님을 헤아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사람들이 쉬 알아듣지 못할 말을 함부로 써서는 안 될 노릇임을 깨닫기를 바랍니다. 뭔가 내 내 나름대로 남다르게 쓰고픈 낱말을 고르는 일이란 잘못이 아니나, 내 나름대로 남다르게 썼다는 낱말을 사람들이 알아듣지 못한다면 하나도 남다른 낱말이 못 되고 조금도 남다른 글투가 못 됩니다.
"우는 것 같은 통곡(痛哭)을"은 "우는 듯 흐느끼는 모습을"로 고쳐 줍니다. '통곡'이란 다름아닌 "소리 높여 슬피 욺"을 뜻하니, "우는 것 같은 통곡"은 말이 되지 않습니다. "쉰 해 치를 한꺼번에 쏟아내는 듯 꺼이꺼이 우는 모습"이나 "쉰 해 치를 한꺼번에 몰아내는 듯 섧게 우는 모습"으로 아예 처음부터 새로 쓴다면 한결 잘 어울리리라 봅니다.
┌ 애이불비(哀而不悲)
│ (1) 슬프지만 겉으로는 슬픔을 나타내지 아니함
│ (2) 슬프기는 하나 비참하지는 아니함
│
├ 슬픔을 표현하지 않았던 엄마만의 애이불비哀而不悲
│→ 슬픔을 나타내지 않았던 엄마
│→ 슬픔을 드러내지 않았던 엄마 삶
│→ 슬픔을 말하지 않았던 엄마 모습
└ …
슬프면서도 슬프다는 빛이 드러나지 않도록 몸가짐을 추스르는 모습을 가리킨다는 '애이불비'를 생각해 봅니다. 이와 같은 때 으레 "티를 안 낸다"라 하든지 "얼굴에 드러내지 않는다"고 이야기합니다. "아무렇지 않은 듯한다"라 하거나 "숨긴다"라 하거나 "감춘다"고 합니다.
┌ 슬픔을 감추던 엄마
├ 슬픔을 숨기던 엄마
├ 슬픔을 내리누르던 엄마
├ 슬픔을 보여주지 않던 엄마
└ …
한국사람이 한국땅에서 한국이웃하고 나누는 한국말을 곱씹어 봅니다. 우리들은 슬프면서도 슬픔을 드러내지 않는다고 할 때에 한 마디로 딱 잘라 "슬픔을 감춘다"고 했구나 싶습니다. "슬픔을 감춘다"고 하면 참 슬프면서 슬픈 빛이 드러나지 않는다는 소리입니다. "슬픈 티를 내지 않는다"라 하거나 "슬픔을 얼굴에 드러내지 않는다"라 해도 잘 어울립니다만, "슬픔을 숨긴다"라 할 때가 가장 단출하면서 또렷합니다.
┌ 슬프지 않은 듯 웃던 엄마
├ 슬프지 않다는 듯 지내던 엄마
├ 슬프지 않다며 가만히 있던 엄마
├ 슬픔을 모르는 듯하던 엄마
└ …
보기글을 살펴봅니다. 보기글을 쓴 분은 "슬픔을 표현하지 않았던" + "엄마만의 애이불비哀而不悲"라고 적바림했습니다. 앞 글월과 뒷 글월은 같은 소리입니다. 같은 소리를 되풀이한 꼴입니다. 겹말이지요. 그런데 뒷 글월에는 '애이불비'라고만 적바림하지 않고 한자를 달아 놓습니다. 한글로 '애이불비'라고만 적으면 못 알아들을까 보아 걱정스러운 듯합니다. 또는 글멋을 내고자 한자를 달아 놓았는지 모르고요.
┌ 슬픔을 티내지 않던 우리 엄마
├ 슬픈 빛이 드러나지 않던 우리 엄마
├ 슬픈 모습을 찾아볼 수 없던 우리 엄마
├ 슬픔하고는 멀어 보이던 우리 엄마
└ …
거듭 말씀드리지만, 글쓰기는 글장난이 아닙니다. 말하기는 말장난이 아닙니다. 글쓰기는 내 삶입니다. 말하기 또한 내 삶입니다. 내 삶을 오롯이 드러내는 글쓰기입니다. 내 삶을 찬찬히 나타내는 말하기입니다.
이 보기글을 쓴 분은 아무래도 글멋을 살리거나 남달리 무언가를 보여주고 싶은 나머지 갖은 치레를 하며 겹말에다가 군더더기를 붙였으리라 봅니다. 수수하게 글을 썼어도 얼마든지 글쓴이 삶과 넋을 보여줄 수 있습니다만, 수수하게 글을 쓰는 맛을 아직 모릅니다. 아니, 수수하게 글을 써서는 글쓴이 삶이나 넋을 나타낼 수 없다고 잘못 안다고 해야겠지요. 꾸밈없이 쓰는 글로 내 삶이나 넋을 비롯하여 내 꿈이나 사랑을 고루 펼칠 수 있음을 모른다고 해야 할 터입니다.
┌ 슬프면서 슬프다 하지 않던 엄마
├ 슬프면서 슬픈 빛을 안 보이는 엄마
├ 슬프면서 아무 말을 않던 엄마
├ 슬프면서 꾹 참고 지내던 엄마
└ …
오늘날은 먼 옛날처럼 몇몇 지식인만 글을 쓰던 나날이 아닙니다. 오늘날은 먼 옛날처럼 남자만 글을 쓸 수 있던 나날이 아닙니다. 오늘날은 지식인이 아니어도 얼마든지 글을 쓸 수 있고, 어린이나 푸름이도 글을 쓸 수 있습니다. 손가락으로 꼽을 만큼 얼마 안 되던 여자만 겨우 글을 쓰던 지난날이 아니라 누구나 한글을 익혔으면 글을 쓸 수 있는 오늘날입니다. 어린이부터 할머니까지 마음껏 신나게 글을 즐길 수 있습니다.
┌ 슬픔 감추기 / 슬픔 숨기기
└ 슬픔 참기 / 슬픔 견디기
글쓰기가 얼마나 기쁘며 좋은 일인지 깨달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글쓰기로 내 삶을 나타낼 뿐 아니라 내 삶을 한껏 가꾸거나 돌볼 수 있음을 느껴 보기를 바랍니다. 글 한 줄로 아쉬움을 털고, 글 한 줄로 사랑을 나눕니다. 덧붙이는 글 | - 글쓴이 누리집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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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가 쓴 ‘우리 말 이야기’ 책으로,
<사랑하는 글쓰기>(호미,2010)와 <생각하는 글쓰기>(호미,2009)가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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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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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사성어'보다 좋은 우리 '상말' (97) 애이불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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