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리·추적의 명탐정 정약용(108회)

동경(銅鏡) <1>

등록 2011.01.28 11:13수정 2011.02.06 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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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은 삼강오륜에 입각해 유교적 사회질서를 고수해 왔다. 주자학 이외의 학문이나 문화를 배척해 왔으니 천주교의 전래를 유교문화에 대한 도전으로 간주했다. 보수주의적 유학자들은 천주교를 사교(邪敎)로 규정 짓기에 이르렀고 기다렸단듯 서양을 이적시(夷狄視)했다.

서양 여러 나라와 통상하거나 수교를 반대하는 척화양이론(斥和攘夷論)은 정통과 이단, 화(華)와 이(夷)를 구분하는 주자학적 세계관에 있었다. 이것은 중원을 떠받드는 모화사상(慕華思想)에 근거했다. 그렇다보니 규장각 직각(直閣)으로 도임 받은 윤창하는 자신의 주장을 전하께 건의했었다.


"전하, 신에게는 조선의 선비를 자처하며 거드름 떠는 이들이 들으면 깜짝 놀랄 이론(異論)이 있나이다. 신이 전하의 성지를 받들어 규장각에 몸담으면 스스로 동이족(東夷族)의 후예임을 자처하는 것이기에 중화(中華) 문화의 우월성에 젖은 사대부가와 다툼이 있을 것이오니, 신은 그 자리를 가납할 수 없나이다."

"그대에 대한 소문을 들었기에 과인이 부른 것이다. 그대가 승정원에 몸 담은 일이 있는 데다 기대승의 <논사록(論思錄)>을 따른다 하니 내 맘이 놓였소. 고봉(高峰)을 따르는 자를 항간에선 '논사파'라 한다는데 숫자는 몇이나 되오?"

"모두 일곱입니다만, 여러 이유로 헤어지고 지금은 신과 세 사람뿐이온데 지난 과시에 병과로 합격했으나 벼슬길엔 나오진 못했나이다."

"그렇다면 그들을 규장각에 들여 정령형상(政令刑賞)의 작업을 맡기시오. 과인이 보위에 오르기 전의 기록들은 도검을 앞세운 훈구파가 맘대로 주물렀으니 이제 그것들을 밝게 정리해야 될 때라 보오."

"전하, 신이 규장각에 몸담으면, 무엇보다 중원문화의 잘못된 부분부터 바로잡을까 하나이다. 전하의 뜻을 받들어 정령형상을 재정비하고 청(淸)나라를 돌아보고 온 좌승지 대감의 식견을 받아들이려 합니다."


좌승지는 민경호(閔炅豪)로 정조가 보위에 올라 사도세자를 죽음으로 몰아간 자들을 처단할 때, 벼슬을 사임하고 용인으로 낙향한 인물이었다.

그러던 그가 세 해 전, 청나라를 돌아보겠다는 뜻을 상주하여 기유년에 정사 이성원(李性源)과 청나라를 다녀왔었다. 이 무렵은 영우원(永祐園)으로 바꾼 사도세자 묘역을 수원으로 정한 터여서 수원의 읍치(邑治)를 팔달산으로 옮기는 중이었다.


민경호는 궁에 있을 때도 신진사료들의 주장을 경청해 전하께 고했고 서얼(庶孼)을 중임해야 한다는 점도 전하께 아뢴 공이 있었다.

그가 청나라를 돌아본 이유에 대해 아는 바가 없었던 것은 평소 벽파니 시파니 파당을 짓지 않은 온건파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윤창하는 뭣 때문에 도승지의 식견을 받아들인다는 말을 했는가?

그것은 민경호가 청나라로 떠나기 전 우연찮게 마련한 술자리에서 의외의 말을 했기 때문이었다.

"이보게 청암, 내가 조선 사람임을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네. 이 땅의 많은 유생들은 과시의 숲을 뚫었으니 당사자가 생각하기엔 대단한 우월감이겠지. 그러나 그게 부정부패에 얼룩지고 편법으로 벼슬길이 물들었다면 무슨 말을 하겠는가. 파당을 이루지 않는 한 벼슬길에 나가지 못한다면 그 아니 슬픈 일인가 그 말일세."

민경호가 왜 그런 말을 하는지 윤창하는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했다. 한 잔 술을 벌컥 마시고 민경호는 방향을 틀었다.

"청암은 나라의 장래를 생각해 봤는가?"
"무슨 말씀인지···."

"조선(朝鮮)은 12획과 17획으로 도합 29수를 가진 화수금수(火水金水)네. 이것은 물과 불이 다투는 하극상이 일어날 운수지. 그렇기에 개국 초엔 두 차례나 피비린내 풍기는 왕자의 난이 있었잖은가."
"아, 예에."

"물과 불이 부딪치는 조선(朝鮮)을 파자하면 그 의미가 심상치않네. 국호를 조선이라 한 것은 나라의 운세가 욱일승천하는 해처럼 맑고 찬연하며 고울 것이라 했지만 고약한 뜻이 숨어 있는 걸 아는 사람이 많지 않네."

조선이란 글자에서 '선(鮮)'을 파자하면 '어(魚)'와 '양(羊)'이 된다. 생선과 양의 고기는 신선해야 먹기에 좋은 것이기에 조선은 이리와 같은 외적(外敵)의  따가운 눈길을 피할 수 없는 게 숙명이란 말이다.

이것은 스스로 자기 민족을 낮춘 말이지 겸양은 아니었다. 그렇기에 제 민족의 본색을 알아야 하는 데도 그걸 멀리하고 오로지 중원문화의 우월성에 동조하고 모화(慕華)의 늪에 빠져 허우적댄다는 것이다.

"이보시게 청암, 내가 청나라를 가는 것은 중원인들이 감춘 기록을 찾으려는 것이네. 그들은 오래 전에 동이족의 문화를 빼앗아 주(周)나라에 귀속시켜 근거를 없애버렸네. 그렇다 보니 후대에 전해진, 동이족(東夷族)이란 말이 아무 제약도 받지 않고 사용된다는 점이네."

조선 왕실의 뿌리로 전해지는 동이족(東夷族)은, '동쪽에서 활(弓)을 잘(大) 쏘는 민족(人)'이란 뜻이다. 이런 점을 증명하듯 태조 이성계도 명궁이란 점을 부각시켰다. 그러나 이게 잘못이라는 것이다.

"동이는 그런 뜻이 아니네. 허신의 <설문해자>엔 동이가 활을 잘 쏘는 민족이 아니라 '쇠를 잘 만지는 민족'으로 동이(東銕)라 했네. 쇠를 잘 만졌으니 얼마나 강맹했겠는가. 그들이 이(銕) 자를 없애고 이(夷)로 한 것은 계략이 숨어있네. 이번에 사은사로 청나라에 간 것은 진한시대(秦漢時代)의 기록들을 찾기 위함이네."
"아, 예에."

"내 자네한테 부탁이 있네."
"말씀하십시오."

"전하께 규장각 책임자로 자넬 천거했으니 성심을 다해 주게. 특히 정령형상(政令刑賞)을 바짝 신경 써 다뤄주게."

민경호는 그 말을 남기고 사은사 행렬을 따라 청나라 길을 떠났다. 세 해가 지나는 동안 민경호가 궐 안에 돌아왔다는 말을 듣지 못한 채 정조 15년의 칠석제(七夕製)를 치르게 된 것이다.

정순왕후가 기우제를 올린 공으로 비가 온 탓인지 기갈 들린 농작물은 한결 갈증이 해소되어 파릇했다. 대비전의 정성이 하늘을 감복시킨 것이라고 관상감에선 차자(箚子)를 올려 칭송하자 전하 역시 정순왕후의 노고를 치하해 이미 하사한 성 밖의 운조루(雲鳥樓)를 좀 더 맵시 있게 수리할 것을 명한 것이다.

이 집은 민경호가 집터를 닦을 때 거북처럼 생긴 돌이 나와 풍수지리에서 말하는 '금거북터(金龜沒泥)'로 알려진 명당이다. 그 당시 관상감에서 집터를 보고 말했었다.

"거북은 하늘의 뜻을 살피는 신령스런 동물입니다. 우리나라의 산이나 땅 이름에 거북 구(龜)를 붙이고 명이 긴 사람에겐 귀령학수(龜齡鶴壽)란 글귀를 보내 장수를 축하하기도 합니다. 특히 금거북은 하늘에 사는 영물로 천지의 기운을 흡수해 만물을 낳는다고 했습니다. 이 거북이가 진흙에 빠지면(金龜沒泥) 오행에 이르는 토생금(土生金)이 되어 땅 속의 기운을 힘차게 빨아들이니 집터로선 더없이 좋은 곳입니다."

그래서인지 민경호는 운조루를 '자라형'이라 격을 낮춰 청나라로 떠나기 전 전하께 아뢨다.

"마마, 신이 사는 운조루(雲鳥樓)를 관상감에선 다시없는 명당으로 알고 있으니 신이 청나라에 가 있는 동안 대비마마께 하사하십시오. 이후 대비전에서 공을 세우시면 허술한 곳을 수리해야 합니다."

그랬기에 사은사 행렬이 청나라로 떠나자 전하께선 상대가 원하는 걸 말하기도 전에 운조루를 상급으로 내린다고 공표했었다. 정순왕후는 대뜸 노했다.

"집이라니오? 궁에 있는 나는 내명부의 으뜸인 선대왕의 빕니다. 머무를 곳이 없어 일개 신하의 집에 머문 답니까? 내가 원하는 건 조정에 들어갈 신하에요. 하나 둘 벽파를 내몰았으니 기우제를 올려 비를 내리게 했으니 줄기차게 쏟아지는 빗발처럼 속이 확 트일 벼슬자릴 원했어요. 그런데 고작 집입니까?"

"마마, 노여워하지 마십시오. 숭인동에 있는 그 집을 좌승지가 운조루(雲鳥樓)라 한 것은 신령한 집터를 감추려 '구름과 새가 머무는 곳'이라 한 것입니다. 전하께서 마마의 공덕을 아시기에 서운함이 없도록 내리신 것이니 못이기는 척 받아주심이 옳은 일이라 보옵니다."

주위의 신하들이 거듭해서 주장하는 바람에 정순왕후 역시 눈 딱 감고 받아들였다. 그런데 이 날, 대비전에 있던 별감들이 자정 넘어 순라를 돌다가 몸채의 마룻장 밑에서 서성이는 사람을 붙잡았다. 그는 대비전에 무수리로 일하는 사월이였다.

그녀는 마룻장 밑에 들어가 무엇을 찾는 듯, 입고 있는 옷은 거미줄과 검뎅이로 더러워졌는데 낡은 보자기에 싼 물건을 꽉 움켜쥐고 있었다. 별감이 달려들어 물건을 빼앗고 보니 놀랍게도 그것은 사람의 뼈였다. 소식을 들은 정순왕후의 엄한 추궁이 떨어졌다.

"네 이년! 이 뼈는 웬 거냐?"
"쇤네가 무덤에서 파 온 아비의 유골입니다."
"무어라? 그걸 가지고 마룻장에 들어간 건 네 아비 뼈를 묻기 위해서렸다?"

정순왕후는 하얗게 질린 낯으로 부들부들 떨며 고함질렀다. 엷은 빛살을 떨구는 달은 중천을 넘어 서녘으로 기울어 가는 참이었다.

[주]
∎정령형상(政令刑賞) ; 구장각 도서의 기원이 된 기록
∎동이족(東銕族) ; 동이족은 쇠(金)를 잘 다스리는 민족. 여기에서 썼던 이(銕)는 이(夷)로 바뀌고, 이(銕)는 철로 변했다.
#추리,명탐정,정약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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