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학교를 졸업하면 무슨 일을 하면서 살까

[리뷰] 레브 그로스먼 <마법사들>

등록 2011.02.14 10:01수정 2011.02.14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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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사들> 겉표지 ⓒ 랜덤하우스

자신이 마법능력을 가지고 있다면 살아가는데 있어서 몇 가지 편리한 점이 있을 것이다. 나아가서 그 마법능력을 더욱 강화시키고 변화시킬 수 있다면 인생이 아주 많이 편해질 수도 있다.

마법을 이용해서 이번주 로또복권 당첨번호를 알아낼 수도 있을테고 마음에 드는 이성을 손쉽게 낚을 수도 있을 것이다. 부상을 당하거나 질병에 걸리더라도 치유마법을 통해서 육체를 다시 정상으로 돌려놓을 수도 있다.


이렇게 본다면 마법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대단한 행운처럼 보인다. 물론 마법능력이 있더라도 그것을 어떻게 사용하고 발전시켜야 할지 알아내지 못한다면 아무 소용이 없다. 그리고 현실세계에서 그런 방법을 알아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입시학원이나 자기계발서적은 도처에 널렸지만, 마법을 개발하는 과정을 가르쳐주는 곳은 어디에도 없기 때문이다. 혼자서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능력을 향상시키는 것도 한 방법이겠지만 그러다가 민폐를 끼치게 될지도 모른다. 불꽃마법을 연습하다가 힘조절에 실패해서 집을 홀랑 태워버릴 수도 있는 일 아닌가.

마법대학에 모인 마법사 지망생들

레브 그로스먼의 2009년 작품 <마법사들>의 주인공인 쿠엔틴에게도 이런 능력이 있다. 고등학교 3학년인 쿠엔틴은 3년 전부터 마술에 관심을 갖고 있었다. 쿠엔틴은 학업성적이 뛰어나지만 어딘가 모르게 우울해보이고 다른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한다. 그가 마술에 관심을 가진 계기도 그렇다. 사람들과 어울리지 않아도 되는 과외 활동을 찾다보니까 그렇게 된 것이다.

아무튼 쿠엔틴은 지루할 때면 아이팟으로 음악을 들으며 동전을 손에 감추고 카드를 섞고 가느다란 플라스틱 지팡이에서 꽃을 뽑아내며 정서적으로 메마른 시간을 수백 시간씩 보냈다. 이런 마술은 기본적으로 사람을 속이는 것이지만 어쨌든 그는 연습에 연습을 거듭해서 마술에 능숙해지게 됐다.


졸업을 앞둔 어느날, 쿠엔틴은 우연히 한 대학교 교정에 들어가게 된다. 그곳에서 학장의 안내를 받아 다른 수백 명의 학생들과 함께 시험을 치른다. 필기시험과 몇 차례의 면접을 거쳐서 시험에 최종합격한 다음 날, 쿠엔틴을 안내한 학장은 이곳이 브레이크빌스 마법학교라는 사실을 그에게 알려준다.

이런 마법학교는 전 세계에 있다. 영국에 하나, 유럽 대륙에 두 개, 아시아에 네 개가 있고 뉴질랜드에도 하나가 있다. 이 학교에서는 마법에 재능이 있는 학생들을 선별해서 그들을 마법사로 키운다. 그러니 3년 전에 쿠엔틴이 동전과 카드를 가지고 마술연습을 할 때부터 이 학교에서는 그를 주시해온 셈이다.

쿠엔틴은 잠시 혼란에 빠지지만 이 학교에 입학하기로 마음을 결정한다. 그동안 자신이 동경해왔던 마법의 세계가 열린 것이다. 이제 쿠엔틴은 아이비리그에 갈 일도 없고 경영 컨설턴트가 되거나 사법시험을 볼 일도 없다. 이 학교에 있는 몇 년 동안 열심히 마법을 갈고 닦아서 상급 마법사가 되는 것이다. 그러면 일반 사람들과는 차원이 다른 삶을 살게 되지 않을까?

마법의 세계에 사는 사람들의 고민과 갈등

쿠엔틴도 열심히 공부하고 연습하지만 그럴수록 현실세계와는 점점 멀어져간다. 얼마 없던 친구들과도 연락이 끊기고 방학이 되도 부모님이 계신 집에 가는 것이 꺼려진다. 동경하던 마법이 현실로 된 순간, 그동안 살아왔던 현실세계가 비현실적인 존재로 변한 것이다.

쿠엔틴의 세계는 복잡하고 흥미로운 마법의 세계고 일반인들의 세계는 지루하고 가정적인 세계다. 일반인들은 쿠엔틴을 이해하지 못하고 쿠엔틴은 일반인에게 다가가기 싫어한다. 이런 이질감에서 시작된 내면의 갈등은 작품의 후반부로 나아갈수록 점점 심해진다. 학생들은 끼리끼리 모여서 게임을 하고 술을 마시고 판타지 소설에 등장하는 환상세계로 떠나서 모험을 한다.

이런 모험도 쿠엔틴의 공허함을 달래주지는 못한다. 쿠엔틴은 생각한다. 마법으로 현실을 왜곡시키는 것이 아니라, 고군분투하면서 현실에 적응하려고 노력하는 편이 더 좋지 않았을까. 마법을 배우지 않았더라면, 다른 사람들처럼 슬프고 황폐한 인생을 책과 술로 달래며 근근이 살아갈 수 있지 않았을까.

마법사들이 펼치는 모험보다도 그들이 겪고 있는 실존적 고민이 더욱 흥미롭다. 마법을 가지고 있으면 여러 가지 편리한 점도 있겠지만, 현실을 등지고 마법사가 된다는 것이 꼭 좋은 일만은 아닌 것 같다.

덧붙이는 글 | <마법사들> 레브 그로스먼 지음 / 박산호 옮김. 랜덤하우스 펴냄.


덧붙이는 글 <마법사들> 레브 그로스먼 지음 / 박산호 옮김. 랜덤하우스 펴냄.

마법사들

레브 그로스먼 지음, 박산호 옮김,
랜덤하우스코리아, 2010


#마법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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