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차에서 보았다... 머리 없는 시체와 하얀 거인

[리뷰] 시마다 소지 <기발한 발상, 하늘을 움직이다>

등록 2011.03.18 10:38수정 2011.03.18 10:38
0
원고료로 응원
a

<기발한 발상, 하늘을 움직이다> 겉표지 ⓒ 시공사

▲ <기발한 발상, 하늘을 움직이다> 겉표지 ⓒ 시공사

열차 내의 폐쇄된 화장실 안에 있던 시체가 감쪽같이 사라졌다. 시체가 변기를 통해서 빠져나갈 수도 없고 좁은 창문을 통과할 수도 없다. 창문이 충분히 넓더라도 마찬가지다. 죽은 시체가 스스로 움직여서 창문을 넘는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된다.

 

더 황당한 일도 있다. 열차 바닥에 놓아두었던 목이 잘린, 머리 없는 시체가 일어나서 걸어다닌다. 그것도 앞이 보인다는 듯이 직접 길을 찾고 문을 여닫으면서.

 

하얀 거인에 관한 이야기도 있다. 달리던 열차가 탈선을 했는데 객차 하나가 하늘로 오르려는 듯이 위로 솟구치면서 궤도를 벗어났다.

 

그 충격 때문에 밖으로 떨어진 기관사는 붉은 눈으로 자신을 내려다보는 하얀 거인을 보았다고 한다. 기차는 마치 거인이 엄청난 힘으로 들어올린 것처럼 탈선한 것이다.

 

이런 이야기들이 담겨있는 소설이라면 십중팔구 공포소설이나 판타지소설을 떠올릴 것이다. 논리적인 인과관계를 중시하는 추리소설에 등장할 만한 소재는 아니다. 그런데도 시마다 소지는 자신의 1989년 작품인 <기발한 발상, 하늘을 움직이다>에서 이런 괴담들을 잔뜩 늘어놓았다.

 

한밤중 열차 안에서 발생한 기이한 일들

 

추리소설에서 트릭이 중요시되던 시대가 있었다. 그 시대의 대가들도 이런 초자연적인 트릭 여러 가지를 한 작품에 담아버린 경우는 드물었다. 작가는 제목처럼 기발한 발상을 가지고 있었기에, 이렇게 괴기스런 현상들이 어떻게 생겨났는지 독자들에게 납득시킬 자신이 있었던 것일까.

 

작품의 시작은 1989년의 도쿄다. 노숙자인 듯한 키가 작고 초라한 옷차림의 노인이 상점의 여주인을 칼로 찔러 죽이는 사건이 발생한다. 겉으로 보기에는 물건에 매겨진 소비세 12엔 때문에 옥신각신하다가 충동적으로 살해한 것처럼 보인다. 이 노인은 경찰서 취조실로 끌려오지만 이상한 얼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거릴 뿐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약간 정신이 나갔거나 치매에 걸린 노인 같다.

 

하지만 형사 요시키는 이 노인이 제정신일 뿐만 아니라 남들과는 다른 지성을 가지고 있다고 직관적으로 파악한다. 요시키는 이 노인의 과거를 파헤치기 시작한다. 노인이 오래전에 저지른 유괴사건으로 교도소에서 26년간 복역했다는 사실, 그 안에서 글을 배워 한 열차에서 벌어진 기괴한 일을 묘사한 환상적인 소설을 썼다는 사실을 알아낸다.

 

요시키는 수사를 해나가면서 지인에게 어떤 이야기를 듣고 혼란에 빠진다. 노인이 소설에서 다루었던 괴담들이, 1957년 1월 눈보라가 몰아치는 홋카이도의 한 기차에서 실제로 있었던 일이라는 것이다. 열차가 탈선하면서 승객들이 사망했기 때문에 사소한(?) 괴담들은 사람들에게 잊혀지고 말았다.

 

그렇다면 노인은 그때 그 열차에 탑승하고 있었거나, 아니면 당시의 승객에게 그 이야기를 전해들은 것이 된다. 형사과의 주임은 요시키에게 진범이 잡혔으니 사건을 종료시키라고 강요하지만 요시키는 계속 과거로 내려간다. 30년 전에 홋카이도의 기차에서 있었던 일과 노인이 상점주인을 살해한 사건 사이에는 어떤 연관이 있을까?

 

사회문제와 정통추리를 뒤섞은 시마다 소지

 

으스스한 괴담들을 잔뜩 늘어놓은 것 같지만, 그것은 단지 독자들의 눈을 사로잡기 위한 하나의 미끼일 뿐이다. 어지간한 독자들이라면 괴담의 정체가 무엇인지 알기 위해서라도, '기이한 현상을 어떻게 설명하는지 한번 볼까'하는 호기심 때문에라도 책에서 눈을 떼지 못할 것이다.

 

시마다 소지는 작품의 초반에 소비세에 관한 이야기를 한다. 소비세가 어떻게 물건가격에 붙게 되고 사람들은 어떻게 그 세금을 지불하는지 형사의 입을 통해서 설명한다. 추리와 사회문제를 뒤섞는 전형적인 방법이다.

 

소비세는 아주 작은 부분에 불과하다. 후반부로 갈수록 일본이 가지고 있는 본질적인 문제가 서서히 전면으로 드러난다. 요시키는 살인을 저지른 노인의 삶을 따라 과거로 가면서 노인은 그 문제 속에서 생겨난 희생양일 뿐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일본 사회라는 '하얀 거인' 때문에 기구한 삶을 살 수 밖에 없었던, 그러면서도 강인하게 삶을 헤쳐온 희생양.

 

개인적으로 추리소설을 좋아하고 많이 읽는 편이지만, 결말 부분을 보면서 눈물이 날 것 같은 심정이 들었던 추리소설은 이 작품이 유일하다. 물론 시마다 소지가 사회문제에만 매달린 것은 아니다. 현재와 과거의 사건을 논리적으로 하나씩 추적해가는 재미도 있다. 괴담들의 정체도 완벽하게 설명된다.

덧붙이는 글 <기발한 발상, 하늘을 움직이다> 시마다 소지 지음, 한희선 옮김, 시공사 펴냄, 13000원.
#시마다 소지 #기발한 발상, 하늘을 움직이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제발 하지 마시라...1년 반 만에 1억을 날렸다
  2. 2 대통령 온다고 수억 쏟아붓고 다시 뜯어낸 바닥, 이게 관행?
  3. 3 '한국판 워터게이트'... 윤 대통령 결단 못하면 끝이다
  4. 4 "쓰러져도 괜찮으니..." 얼차려 도중 군인이 죽는 진짜 이유
  5. 5 이러다 나라 거덜나는데... 윤 대통령, 11월 대비 안 하나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