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 7개월 전, 스타디움에서 폭탄이 터졌다

[리뷰] 리사 마르클룬드 <폭파범>

등록 2011.03.31 09:23수정 2011.03.31 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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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파범> 겉표지
<폭파범>겉표지황금가지
수많은 범죄소설의 주인공들을 직업별로 분류해보면 사립탐정이나 형사가 가장 많을 것이다. 그 다음으로 많은 직업을 찾아보면 아마도 기자가 아닐까.

기자가 범죄소설의 주인공이 되는 것도 어찌보면 자연스러운 일이다. 대형사건이 발생하면 기자는 경찰들 다음으로 빨리 현장에 도착하게 된다. 그리고 기사를 쓰기 위해 경찰들을 만나서 취재를 해야하고 사건관련 기자회견장에도 참석해야 한다.


기자들은 또 진범이 잡힌 이후에 사건을 재연하는 현장검증도 취재한다. 그러니 기자들은 사건에 대해서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을 수밖에 없다. 범죄소설의 주인공이 되기에도 무리가 없을 것이다.

또 한가지, 범죄소설 작가들 중에는 전직 기자였던 사람들이 상당수 있다. 이들이 자신의 경험을 살려서 기자를 주인공으로 등장시킨다면, 독자들은 사건의 추적과 함께 언론사 내부의 분위기를 만끽하는 즐거움도 덤으로 얻을 수 있다.

여성작가 리사 마르클룬드의 데뷔작

저널리스트 경력을 가진 스웨덴 작가 리사 마르클룬드의 <폭파범>이 바로 그런 작품이다. 주인공인 안니카 벵트손은 <크벨스프레센>이라는 신문사에 근무하는 기자다. 결혼을 해서 두 자녀와 남편이 있는 안니카는 집과 사건현장, 신문사를 오가며 바쁜 일상을 보내고 있다. 30대 초반의 나이에 사건팀장 자리에 발령을 받을 만큼 능력을 인정받고 있다.

크리스마스를 일주일 앞둔 새벽 3시, 집에서 곤하게 자고 있던 안니카는 한 통의 전화를 받는다. 올림픽 준비가 한창인 스톡홀름의 스타디움에서 폭발 사건이 발생했다고 알려주는 편집장의 전화다. 안니카는 즉시 현장에 달려가고 그곳에서 수십 조각으로 찢겨나간 시신이 발견되었다는 사실을 알게된다.


올림픽까지는 약 7개월 가량이 남은 시점이다. 이번 사건으로 북쪽 스탠드를 받치고 있던 기둥 몇 개가 무너지면서 초록색 관중석이 박살이 난 상태다. 시민들은 올림픽에 반대하는 세력이 벌인 의도적인 테러라고 생각하며 공포에 떤다. 망가진 스타디움이야 올림픽 개막 전까지 복구할 수 있겠지만, 그 사이에 또다른 테러가 발생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계획적인 테러라는 여론과는 달리, 안니카는 이 사건이 개인적인 범행이라고 생각한다. 피해자를 증오한 누군가가 우연하게 스타디움을 범행현장으로 선택한 것이다. 스타디움에서 작동하던 경보장치들이 모두 해제되어 있었던 걸로 봐서 내부자도 연관되어 있을 가능성이 많다.


안니카는 사건현장을 방문하고 관련자를 만나본다. 경찰서 내부 취재원에게 정보를 묻기도 하면서 사건관련기사를 하나씩 작성하기 시작한다. 그러던 도중에 다른 경기장에서 또다시 폭발사건이 발생한다. 안니카의 생각대로 이 사건은 정말 개인적인 범행일까?

작가가 그려내는 기자들의 세계

작가는 폭탄으로 사람을 죽이는 잔인한 살인사건과 함께 신문사 내부의 풍경도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다. 대형사건이 터졌을 때 늘 그렇듯 편집국은 활기가 넘친다. 겉으로는 침착해보이지만 편집장의 날카로운 눈매와 기자들의 곧게 편 등에서 긴장감을 느낄 수 있다. 그 안에서 주도권을 잡으려는 기자들 사이에 갈등과 알력도 생겨난다.

<폭파범>에서 그 갈등은 안니카를 중심으로 일어난다. 젊은 나이에 요직에 올랐으니 그녀를 시기하는 사람들도 분명 있을 것이다. 안니카보다 나이가 많지만 승진하지 못한 한 기자는 평소에도 공개적으로 그녀를 무시하는 발언을 한다. 사건팀의 비서도 안니카를 차갑게 대한다. 안니카가 팀장이 된 다음부터 사건팀이 삐걱거리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안니카는 이렇게 불편한 분위기 속에서도 자신의 일을 해나가려고 하지만 쉽지 않다. 안니카는 때로는 동료에게 분통을 터뜨리고 때로는 혼자 눈물을 흘리기도 한다. 그러면서 자신은 기자로서도 빵점이고 아내와 엄마로서도 빵점이라고 생각한다.

안니카가 자신의 고민을 말하자 작품에 등장하는 한 인물은 안니카에게 이런 말을 한다. 가장 힘들게 직장 생활을 하는 사람은 남성 위주의 직장에서 일하는 젊은 여성이라고. <폭파범>은 '여기자 안니카 시리즈'의 첫 번째 편이다. 북유럽의 복지국가 스웨덴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에도 호기심이 생기지만, 이후의 작품들에서 안니카가 어떻게 자신을 둘러싼 환경을 변화시킬지 궁금해진다.

덧붙이는 글 | <폭파범> 리사 마르클룬드 지음 / 한정아 옮김. 황금가지 펴냄.


덧붙이는 글 <폭파범> 리사 마르클룬드 지음 / 한정아 옮김. 황금가지 펴냄.
#폭파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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