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천 정사>겉표지
김준희
젊은 남녀가 동반자살을 했다. 그럴경우 십중팔구는 사랑하는 남녀가 그 뜻을 이루지 못해서 함께 자살했다고 생각할 것이다.
요즘에는 자살관련사이트에서 만난 사람들끼리 자살을 시도하는 경우도 있지만, 그런 것이 없던 과거라면 젊은 남녀의 동반자살은 '정사(情死)'일 가능성이 더욱 높아진다.
이들을 죽음으로 몰고 간 것은 서로에 대한 애정이다. 현실에서는 여러가지 사정 때문에 그 사랑을 이룰 방법이 없고 그렇다고 서로를 잊고 살 수도 없다.
유일하게 잊을 수 있는 방법은 죽음뿐이니, 죽음으로 구원을 얻는다는 심정으로 사랑하는 연인과 같이 저 세상으로 떠나는 것이다. '사의 찬미'로 유명한 성악가 윤심덕이 애인 김우진과 함께 현해탄에 몸을 던진 것처럼.
가인(歌人)이 벌이는 두 차례의 동반자살렌조 미키히코의 2006년 작품집 <회귀천 정사>에는 기이한 죽음 또는 살인사건을 다룬 단편 5편이 실려있다. 1920년대와 1930년대의 일본을 배경으로 하는 이 단편들 중에서 백미는 마지막에 실린 <회귀천 정사>다. 여기에서도 서로 사랑하는 두 남녀가 동반자살을 시도한다. 그것도 두 차례나.
동반자살의 주인공인 소노다 카쿠요는 일본에서 천재 가인(歌人)으로 불린 인물이다. 1926년 34살의 나이에 스스로 목숨을 끊을 때까지 무려 오천 수가 넘는 노래를 지었다. 그는 오로지 가인으로서 34년을 산 것이다. 천재라고 불리며 부와 명예를 거머쥐었을 소노다가 왜 자살했을까.
소노다의 첫번째 동반자살 상대는 후미오라는 젊은 여인이었다. 후미오는 소노다를 사랑했지만 집안의 반대로 소노다를 만날 수 없는 처지가 된다. 그러자 소노다와 함께 동반자살을 시도하지만 미수에 그치고 둘 다 목숨을 건진다. 이 사건으로 후미오는 집안에 감금되는 상태가 된다.
그 다음해, 소노다는 찻집 여종업원 아야코와 다시 동반자살을 시도한다. 강에 돛단배를 띄우고 그 안에서 약을 마셨다. 아야코는 그 자리에서 죽지만 소노다는 이번에도 살아난다. 그렇지만 사흘 후에 머물던 여관방 안에서 스스로 목을 그어서 생을 마감한다.
몇 년 뒤에 소노다의 절친한 친구였던 한 남자가 소노다의 생애를 소설로 쓰면서 이 두 차례의 동반자살을 조사한다. 그러다가 뭔가 이상하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소노다의 죽음 이면에는 누구도 모르는, 알아서는 안되는 상상도 할 수 없는 비밀이 숨겨져 있는 것 아닐까?
죽음과 꽃이 등장하는 다섯 편의 단편하긴 모든 죽음의 현장에는 미스터리가 있는 법이니 소노다의 죽음에 의심을 품게 된 것도 무리는 아니다. 이 작품집에 실린 단편들은 각각 등장인물도 다르고 배경도 다르다. 공통점이 있다면 기이한 죽음을 추적한다는 점이다.
<등나무 향기>에서는 가슴을 칼로 찌르고 얼굴을 짓이겨놓는 연속살인사건이 발생한다. <도라지 꽃 피는 집>에서는 유곽에서 벌어진 연속살인, <오동나무 관>에서는 조직폭력배들 사이의 청부살인을 다루고 있다. <흰 연꽃 사찰>에서는 주인공의 기억에 남아있는, 어린 시절 어머니가 누군가를 죽이던 그 장면의 비밀을 찾아간다.
단편들 사이의 또다른 공통점은 꽃이 등장한다는 점이다. 한 사내는 죽어가면서 도라지꽃을 손에 쥐고 있고, 과거를 추적하던 인물은 '어머니가 왜 수련꽃을 땅에 파묻었을까'라는 의문을 갖는다. 이런 꽃들은 모두 복선과 반전의 실마리를 제공하면서 마지막이 되어서야 그 정체를 드러낸다.
소노다가 벌인 동반자살의 진실도 꽃을 매개로 해서 밝혀진다. 피범벅이 된 살인사건 현장의 잔인함이 몇 송이 꽃으로 중화될 수도 있을 것이다. 화려하게 피어오르지만 곧 허무하게 지고마는 꽃. 작품들 속에서 뜻하지 않은 사건으로 목숨을 잃는 사람들의 운명도 꽃과 비슷하다. 그렇게 본다면 살인사건과 꽃은 의외로 잘 어울리는 건지도 모른다.
덧붙이는 글 | <회귀천 정사> 렌조 미키히코 지음 / 정미영 옮김. 시공사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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