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흥군 나로도 봉래초등학교 방과후 학습 논술부 11명의 아이들. 모두가 사랑스러운 아이들입니다.
송성영
녀석들은 서로 내 옆자리에 앉겠다며 다투기도 합니다. 그렇게 녀석들은 내게 무한한 애정을 보여가며 수업에 집중하곤 했습니다. 하지만 한 달이 넘어서자 점점 집중력을 잃어가며 떠들기 시작했습니다.
"선생님이 가르치는 것이 너무 떠들고 있는 것 같지 잉. 그래서 너희들도 떠들고 있는 거지? 좋다. 이번에는 누가 나서서 나처럼 가르쳐 봐라 그러고 싶은 사람?"은근슬쩍 압력을 가했습니다. 내게 미안해서 조용히 할 줄 알았더니 눈치코치 없는 우연이 녀석이 불쑥 나섰습니다.
"저요! 저요! 내가 가르쳐 볼께요.""그려? 그럼 한번 가르쳐 봐봐."나는 떨떠름한 표정을 지어가며 마지못해 승낙했지만 녀석이 당당하게 나섰습니다.
"자, 이제 공부 끝….""와 하하하! 까르르…." 아이들 모두가 와르르 웃습니다. 나도 따라 웃습니다. 교실이 떠나갈듯 웃음바다가 됩니다. 한바탕 웃음 바람이 지나가고 잠시 조용해졌습니다. 다시 수업 시작입니다. 지난 시간에 글쓰기를 했던 것을 읽어나가며 재밌는 부분을 부각시켜 토론하는 시간입니다.
지난 시간에는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보물찾기'라는 제목으로 이야기를 만들어 나가는 시간이었습니다. 나는 아이들에게 천하무적의 고양이가 보물을 지키고 있는데 그 보물을 어떻게 가져올 수 있을까? 그 보물은 과연 무엇일까?라는 물음을 던졌습니다.
아이들은 온갖 보물에 관한 이야기보따리를 꺼내놓았습니다. 우리는 토론 끝에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보물은 그 어떤 금은보화보다 소중한 보물, 모든 것을 다 얻을 수 있는 '사랑'으로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리고 각자 나름대로의 상상력을 동원해 글을 썼습니다.
세은이의 보물은 '엄마의 생명'이었고, 진영이의 소중한 보물은 '생명'. 민서의 보물은 '믿음'이었습니다. 승민이는 '보물에 눈이 멀어 고양이와 거짓 친구가 되어 보물을 얻었는데 그 보물을 팔아먹으려고 몰래 숨겨 놓았다가 다 잃게 되었고 그 순간 가장 소중한 보물은 사랑이라는 것을 알았다'는 이야기를 이끌어 냈습니다.
3학년 막내 승연이의 보물찾기는 기발합니다. 고양이와 내기를 해서 보물을 찾는다는 이야기입니다. '고양이가 퀴즈를 냈는데 "여기에 귀신이 있을까?" 난 없다고 했다. 고양이가 믿지를 못해 귀신을 불러봤다. "귀신아~ 귀신아~" 귀신은 안 보였다. 그래서 내가 이겨 보물을 가져왔다'는 것입니다.
우연이는 엉뚱하게도 고양이에게 술을 먹여놓고 보물을 얻어 큰 부자가 되는 이야기를 썼고 유진이는 우유로 유인해서 겨우 보물을 얻었는데 보물 상자 안에는 사랑이라는 쪽지만 적혀 있었다는 이야기. 수지는 아이들이 죽어 나간다는 실험실에서 빛을 보았고 그 빛을 갖게 되어 사랑을 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만들어 냈습니다.
수빈이의 보물찾기에는 나름 반전이 있습니다. 고양이에게서 보물을 얻기 위해 고양이에게 온갖 음식들을 가져다주면서 친해졌는데 어느 날 고양이가 보물 상자를 놓고 떠났고 그 상자를 열어보니 쪽지가 있었다. 거기에는 '안녕 너에게 이미 선물을 주었어. 그 선물은 바로 사랑이었어'라고 적혀 있었다는 이야기입니다.
글쓰기에 관심이 많은 6학년 예빈이의 보물찾기는 오랜 시간을 두고 이루어집니다. 고양이의 보물을 빼앗기 위해 몇 년에 걸쳐 고양이와 친해지고 어느 날 고양이에게 은근슬쩍 보물 이야기를 꺼냅니다(다음은 예빈이가 쓴 보물찾기의 마지막 구절입니다).
"고양아, 우리는 친한 친구지? 그치?"고양이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고양아, 그럼 나한테 뒤에 있는 보물을 줄 수 있겠니?"그런데 고양이의 표정이 갑자기 어두워 졌다."미야옹! 너 말이야 나한데 관심이 있는 거 맞니? 처음부터 보물을 노린 거니?"나는 고양이가 내 마음을 꼭 집어 말해 당황했다."아…. 아니야…. 저. 절대로 그렇지 않아.""고양이는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나에게 말을 했다."미야옹! 사실 저 뒤에 보물은 없어…. 사실 난 너희 인간의 심리를 알아보려고 금성에서 보내진 특수요원이야.""뭐, 뭐라고?""미야옹! 너희 인간에겐 사랑이란 건 없는 거니? 세상에서 가장 멋진 보물은 사랑이야…."고양이는 싸늘하게 미소를 짓고 이상한 말을 했다. 곧 비행접시가 내려왔고 고양이는 이렇게 말했다. "미야옹! 보물은 사랑이야…. 사랑이라고…."고양이는 눈물을 흘리며 비행접시를 타고 날아가 버렸다.보물찾기 보따리를 마저 다 풀어 놓지도 못했는데 또 다시 교실 안이 소란스럽습니다. 몇몇 아이들은 계속 조잘 되고, 또 몇몇 녀석들은 누가 장난치고 떠들고 있다며 내게 고자질해가며 계속해서 떠들어 댑니다. 그만 떠들고 수업에 집중하자며 별의 별 회유를 해도 계속 떠듭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떠들지 말라며 나도 떠들고 있습니다. 내 입부터 닫기로 합니다. 내가 입을 닫고 아무 말도 하지 않자 30초도 채 안 되서 교실 안이 언제 그랬냐 싶게 조용해집니다. 떠드는 녀석들은 갑자기 입을 닫은 내 눈치를 실실 살피고 또 어떤 녀석들은 떠들었던 것이 미안한지 작은 목소리로 떠들지 말자고 합니다.
착한 녀석들입니다. 이런 녀석들에게 "그만 떠들지 못해!" 꽥 소리치며 불같이 화를 낼 뻔했습니다. 침묵은 모두의 감정을 물처럼 차분하게 가라앉혔습니다. 나도 거기에 포함됩니다. 화를 내며 조용히 하라며 소리 지를 뻔 했던 내 불기운도 물처럼 가라앉고 있습니다. 화를 내면 잘 해보겠다는 본래의 의도는 온데간데없이 수업 시간내내 분노와 두려움의 화염에 휩싸이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단 30초의 침묵은 스스로를 정화 시킵니다. 먼저 나를 정화시키고 그에 따라 아이들도 정화됩니다.
"너무 떠드니께 수업이 안 돼 지잉. 심하게 떠드는 사람은 어떻게 하믄 좋을까?""회초리로 때려 줘요!""그건 절대로 안 되지.""엎드려 뻗혀 시켜요.""그것도 안 돼.""손들고 서 있으라고 해요.""그것도 안 돼, 폭력적인 방법은 절대로 안 돼."누가 아이들에게 폭력적인 방법을 스스로 선택하도록 만들었을까? 갑자기 슬퍼집니다. 가슴이 아픕니다.
"너희들도 폭력적인 방법은 원치 않잖아?""예!""폭력적인 방법을 쓰지 않고 수업을 방해하지 않는 좋은 방법 없을까?""선생님이 결정하세요""아냐 이건 니들이 결정해야 혀""그람 떠드는 사람은 쩌쪽 의자에 따로 앉아 있으라 해요.""그래? 그러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예 좋아요! 그렇게 해요!"모두가 이구동성으로 말합니다. 결국 아이들의 결정에 따라 떠드는 사람은 따로 앉아 있게 하기로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리고 일주일이 지나갔습니다.
"오늘은 뭘 써 볼까?""꿈 꿨던 거요.""그래? 꿈 속 이야기를 쓰는 것도 괜찮겠다."대다수 아이들이 찬성을 했습니다. 하지만 늘 그랬듯이 어떤 주제에 대해 11명 모두가 찬성하는 경우는 많지 않습니다.
"아니요! 저는 꿈 안 꿔요.""꿈을 안 꾸는 사람도 있어?""저는 꿈 꾼 지가 3개월도 넘었는데요?""그럼 마지막으로 꾸었던 꿈을 쓰면 되잖어?""기억이 안 나는 데요."몇몇 녀석들은 꿈꾸었던 것 말고 다른 것을 쓰기를 원했습니다. 그리고 누군가 제안을 했습니다.
"그럼, 선생님이 주제를 내 주세요.""좋아 그럼 너희들 사랑 얘기를 쓰면 어떨까?"'사랑'이라는 말이 나오자 와르르 비명 소리를 내 지릅니다. 6학년 예빈이를 비롯한 몇몇 녀석들은 이미 남자 친구와 사귀었던 얘기를 써 본 적이 있었기에 담담한 표정이었고 몇몇 녀석들은 부끄러워 어쩔 줄 몰라 합니다.
"텔레비전 드라마에서 본 그런 사랑 말고 너희들이 느꼈던 감정을 그대로 써봐.""없는데요.""그래두 너희 친구 중에 사귀고 싶은 아이가 있을 거 아녀?""없는데요.""그럼, 앞으로 어떤 사랑을 하고 싶은지 그런 감정은 있잖어. 전에 승연이는 6학년 오빠한테 좋아한다는 고백을 받았다고 썼었고, 예빈 하고 수지는 좋아했던 아이 앞에 섰을 때 가슴이 쿵쾅거린다고 했었잖어….""나는 그런 적 없어요.""꼭 남자 친구나 여자 친구 얘기가 아니라도 좋아, 가족에 대한 사랑도 있을 것이고, 어떤 사랑이든 좋아 니들이 쓰고 싶은 사랑 얘기를 써 봐. 이상형도 좋고…."씩씩한 6학년 효경이는 사랑 얘기만 들어도 닭살이 돋는다며 쓸 얘기가 없다고 합니다.
"그럼 사랑 소리만 들어도 닭살이 돋는다 라고 그대로 쓰면 되잖어?""사랑이라는 말 그 자체가 싫어요!""그럼 사랑이라는 말 그 자체가 싫다 라고 시작하면 되잖어? 그리고 사랑이 왜 싫은지 니가 생각하는 그대로 쓰라구..."사랑에 관해 아무것도 쓸 것이 없다던 효경이는 한참을 소란스럽게 떠들더니 거침없이 글을 써내려가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사랑이 싫다. 사랑이란 것 자체가 싫다. 내가 사랑이 싫은 이유는 잘 모르겠다…. 난 사랑이란 감정을 느껴본 적 없다. 그냥 좋아하는 척, 설레는 척, 보고 싶은 척만 했지 사랑이 뭔지도 잘 모르겠고 사랑을 왜 하는지, 사랑이 왜 좋은지 모르겠다. 차라리 모르고 사는 게 속 편할 것 같다…. 그런데 나도 이상형이 있다. 그건 바로 폭력적이지 않고 착한 남자, 그리고 바람 피지 않는 남자, 친절한 남자이다. 그런데 '내가 이런 남자를 만날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든다. 하긴 사랑엔 관심 없으니까 상관없다. 그냥 사랑보단 행복이 좋다. 그냥 좋다. 아무 이유 없이…."강한 부정은 긍정을 뜻하기도 합니다. 효경이는 그 누구보다 사랑을 원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말했더니 효경이도 부정을 하지 않습니다. 효경이 뿐만 아니라 모든 아이들이 나름대로의 사랑 얘기를 썼습니다.
민서는 자신을 좋아했던 아이가 이사를 가면서 울음을 터뜨는데 자신의 마음 또한 속상하고 아팠고 다시 그 아이를 만나고 싶다는 얘기를 썼고 수빈이는 많은 친구들 앞에서 자신을 좋아한다는 한 아이의 고백을 받았는데 친구들에게 그 아이가 싫다 말했다고 합니다.
엉뚱하기 이를 데 없는 승민이는 꿈 얘기를 썼습니다. 짝사랑 하던 아이의 휴대폰 번호를 알아 내 문자를 날렸는데 '뭔 소리야? 닥쳐!"라는 답장을 받고 꿈에서 깨어났다고 합니다. 유진이는 유치원 때 서로 좋아했던 아이에 대해 구체적으로 썼습니다.
짝사랑하던 선배 얘기를 당당하게 쓰기도 했던 수지는 '그 사람이 왜 좋습니까? 이유요? 그런 거 없습니다. 좋아하는데 무슨 이유가 필요하고 싫어하는데 무슨 이유가 필요합니까? 그냥 내 심장이 그 사람을 선택했을 뿐입니다'라는 내용이 담겨 있다는 '참 서툰 사랑'이라는 책 내용을 소개했습니다.
몇몇 아이들은 수지가 쓴 그 내용을 이미 알고 있는지 고개를 끄덕입니다. 나는 당황스러웠습니다. 어른들의 사랑을 흉내 내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아이들의 사랑 얘기는 나 같은 어른들은 잘 모릅니다. 아이들이 사랑에 대해 얼마나 관심이 많은지 잘 모릅니다. 어른들이 아이였을 때 그런 생각을 했었다는 사실조차 까마득히 잊고 살아가기 때문일 것입니다. 나 또한 마찬가지였던 것입니다.
나는 아이들의 사랑 얘기를 통해 까마득히 잊고 있던 내 어린 시절의 사랑을 꺼낼 수 있었습니다. '국민학교' 5학년 때 였습니다. 전학 온 한 여자 아이가 있었습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인데 그 아이의 엄마는 아들이 없는 우리 동네 누구네 집안의 씨받이로 들어왔습니다. 그 아이 눈빛은 초롱초롱했지만 늘 슬퍼 보였습니다.
어느 날 학교에서 숙제를 내주었습니다. 집 근처에 사는 그 여자 아이와 한 조가 되어 별을 관찰하는 숙제였습니다. 누구보다도 그 아이와 함께 하고 싶었지만 그날 밤 나는 별을 관찰하지 못했습니다. 밤에 단 둘이서 만날 용기가 나지 않았던 것입니다. 하지만 나는 그날 밤 내내 떨리는 가슴으로 그 아이와 있었습니다. 그 아이와 함께 밤새 별을 관찰하는 상상을 하고 있었습니다.
아직도 나는 그 아이를 떠올리면 가슴이 아픕니다. 씨받이로 들어온 엄마 따라 이사 온 그 아이의 아픈 가슴이 전해져 아프고, 그날 밤 홀로 나와 별 볼일 없이 되돌아갔을 그 아이를 생각하면 가슴이 아픕니다. 그건 내가 그 아이를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그 사랑의 감정은 세상을 살아 게 하는 힘이기도 했습니다.
내 어렸을 적 가슴 아픈 사연을 간직하고 있던 아이, 눈빛이 초롱초롱했던 아이. 내가 사랑했던 아이, 그 아이는 바로 내 앞에 서 있는 아이들이기도 합니다. 지금의 아이들은 바로 내 과거의 가슴 아파했던 아이이기도 합니다. 잊혀져 가는 사랑 이야기를 들려주는 어여쁜 아이들입니다.
아이들에게 사랑타령이 가당키나 하냐구요? 어른들이 말하는 사랑이야 말로 가당키나 한 것일까요? 이 물음에 대해 어른인 나또한 자유롭지 못합니다. 나는 과연 아이들 만큼 순수하게 내 아내를 사랑하고 있을까? 아이들이 들려주는 사랑 얘기는 내게 피할 수 없는 질문을 던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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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살리고 사람을 살릴수 있을 것이라 믿고 있는 적게 벌어 적게 먹고 행복할 수 있는 길을 평생 화두로 삼고 있음. 수필집 '거봐,비우니까 채워지잖아' '촌놈, 쉼표를 찍다' '모두가 기적 같은 일' 인도여행기 '끈 풀린 개처럼 혼자서 가라' '여행자는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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