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관이 성님네 논에서 자라는 어린 벼.
송성영
정신없는 첫 논농사... '글쓰기 농부'가 무색하구나우리 식구는 고흥에 정작하면서 동관이 성님에게 시시때때로 도움을 받고 있습니다. 땔감이 떨어질 무렵이면 여지없이 구원의 손길을 보내왔고, 얼마 전에는 성님 덕분에 끝물 딸기 하우스를 소개받아 딸기를 실컷 따먹고 잼까지 만들어 놓았습니다. 거기다가 어딘가에서 배추를 얻어다 건네줘 김치를 실컷 담가 먹기도 했습니다.
동관이 성님네 논바닥에서 볍씨가 싹을 틔우는 동안 제 논을 갈아엎었습니다. 고흥에 정착, 첫 논농사 입니다. 작년 첫 해는 소작할 논을 구하지 못해 밭농사만 지었는데 올해는 2천 평 가까운 논이 생겼습니다. 우리 집 주변에서 더불어 생태적으로 살고자 하는 몇몇 분들이 사들인 농지입니다. 그분들이 집을 짓기 전까지 소작을 하기로 했습니다.
벼논자리를 만들어 가면서 틈틈이 작년 가을에 심은 마늘과 양파를 수확했고 고추를 비롯해 참외 수박 오이 들깨 등을 조금씩 심어 나갔습니다. 우리 밭은 천 평 정도 됩니다. 5백여 평의 밭에는 오만 가지 채소를 심었고 나머지 5백 평의 공간에는 매실, 감귤, 감나무, 석류나무 등을 심었는데 채소밭과 더불어 시시때때로 풀 관리를 해줘야 합니다.
이른 아침 밭이나 논바닥에 나갔다가 초등학교 아이들 글쓰기 지도를 다녀오고 나면 여지없이 삽이나 호미를 손에 쥐었습니다. 얼마 전 책을 한 권 냈는데, 거기에는 '글쓰기 농부'라는 말이 들어가 있지만, 요즘 글쓰기는 엄두도 낼 수 없었습니다. 그동안 틈틈이 바다에 나가 돌미역을 채취해 놓았지만 반찬거리 낚시조차 나서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논두렁 쳐주는 디, 30만 원이 넘는다구요?"논을 갈아엎어 써레질에 모 심기까지 농기계 쓰는 데 마지기당 6만 원, 거기에 논두렁까지 치게 되면 백만 원 가까운 돈이 들어갈 판이었습니다. 생활비가 빠듯했습니다. 풀무고등학교에 다니는 큰아들 녀석이 기숙사 생활을 하다 보니 한 달 생활비가 두 배로 늘어났기 때문입니다. 모를 심고 나면 당장 몇 십만 원이 필요했습니다. 아내가 담담하게 말했습니다.
"안 되면 농협 빚이라도 져야지 뭐.""그려, 어떻게 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