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한 가상체험, 현실과 게임의 경계는?

[서평] 오카지마 후타리 <클라인의 항아리>

등록 2011.09.22 10:46수정 2011.09.22 1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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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인의 항아리> 겉표지
<클라인의 항아리>겉표지비채
▲ <클라인의 항아리> 겉표지 ⓒ 비채

재미있는 컴퓨터 게임을 하다보면 시간가는 것을 잊게 된다. 신선놀음에 도끼자루 썩는 것을 모르는 것처럼 모니터를 들여다보면서 하염없이 시간을 보내는 것이다.

 

오래 전에 <대항해시대 2>가 한참 유행했을 때, 친구 한 놈은 그 게임에 빠져서 학기 중인데도 며칠 동안 학교에 나오지 않았던 적이 있었다. 그 시간 동안 그 녀석은 자신이 대서양과 태평양을 누비고 다니는 모험가가 된 기분을 만끽했을 것이다.

 

게임을 하는 동안에는 모니터가 자신 앞에 펼쳐진 망망대해고, 마우스는 배를 조종하는 키나 마찬가지다. 아무리 대학생이라지만 며칠간 학교를 빼먹는다면 거기에는 부작용이 따르기 마련이다.

 

그런데도 사람을 컴퓨터 앞에 붙잡아 놓는 힘, 그것이 바로 잘 만든 게임의 힘이다. 재미있는 소설이 그렇듯이 완성도 높은 게임도 항상 현실을 잊게 해준다. 현실 속의 자신은 찌질한 존재일지 모르지만 게임에서는 그렇지 않다.

 

그 안에서 자신은 정글과 동굴 속을 헤치고 다니는 탐험가이자 일당백의 전사다. 거듭되는 모험과 전투를 통해서 떼돈을 벌고 희귀아이템을 찾아내서 전투력을 강하게 만들 수도 있다. 매력적인 이성도 얼마든지 만날 수 있다. 체력이 약해지더라도 물약 한 병이면 다시 원상복귀된다. 이렇게 멋진 세상이 모니터 속에서 펼쳐지는데 왜 굳이 현실로 돌아와야 한단 말인가?

 

완벽하게 구현된 가상현실의 공간

 

오카지마 후타리의 1989년 작품 <클라인의 항아리>에서 주인공은 정말 믿기지 않는 게임을 접한다. 20대 중반의 주인공 우에스기 아키히코는 대학 재학 시절에 게임공모전에 응모했다. <브레인 신드롬>이라는 제목으로 게임의 원작을 써서 응모한 것이다. 하지만 이 작품은 분량이 너무 길다는 이유로 퇴짜 맞는다.

 

낙담하던 우에스기에게 '입실론'이라는 게임회사가 접근해온다. <브레인 신드롬>을 게임화하고 싶다는 것이다. 그것도 그냥 컴퓨터 게임이 아니라 여태까지 누구도 만들지 못했던 가상체험 게임이다. 게임이 시작되면 플레이어는 게임 속의 주인공이 만나는 광경을 실제로 보고 실제로 감촉도 느끼게 된다.

 

엄청난 흥분 속에서 우에스기는 계약서에 사인을 하고, 게임이 완성될 즈음에 테스트를 해달라는 부탁을 받는다. 우에스기가 직접 접한 게임은 환상 그 자체다. 우에스기가 침대 같은 공간에 편하게 누워서 마스크를 쓰면 게임이 시작된다. 우에스기는 아프리카의 작은 나라로 비행기를 타고 날아가고 그 안에서 일종의 스파이가 되어서 자신의 임무를 수행한다.

 

게임 속의 세상은 모니터에 펼쳐지는 것이 아니라 실제처럼 우에스기의 앞에 나타난다. 주인공은 모든 것을 보고 듣고 느끼면서 한 단계씩 임무를 완수해 나간다. 그러던 도중에 게임 속에서도, 그리고 게임을 중단하고 돌아온 현실에서도 이상한 일들을 경험하게 된다. 그런 일이 반복되면서 우에스기는 입실론 회사와 게임의 정체를 함께 의심하기 시작한다.

 

모든 것이 체험 가능한 게임 속 세계

 

작품의 제목인 '클라인의 항아리'는 예전에 독일의 한 수학자가 고안해낸 모델이다. 간단하게 말해서 '뫼비우스의 띠'의 입체버전이면서 그보다 더 복잡한 구조다. 이 모델의 특징은 3차원 상에서 구현할 수 없고, 안과 밖이 구별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작품 속에서 '클라인의 항아리'는 플레이어에게 가상체험을 제공하는 장치의 이름으로 등장한다.

 

안과 밖이 구별되지 않는 것처럼 그 장치 안에서는 실제와 가상의 구분이 모호해진다. 자신이 게임을 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면, 그 게임 속에서 자신이 겪는 일들도 모두 현실이라고 보면 되지 않을까.

 

우에스기에게 이 문제는 그렇게 간단하지가 않다. 반면에 작품 속에서 게임을 테스트하는 다른 인물은 마음 편하게 게임 속 자신의 역할을 즐긴다. 실제로는 하기 힘든 일들이 게임에서는 플레이어가 원하는 만큼 펼쳐진다. 자신의 꿈을 이루는 가장 편한 방법은 게임 속에 있는지도 모른다. 그 때가 되면 정말로 게임과 현실의 구분이 힘들어질 것이다.

덧붙이는 글 <클라인의 항아리> 오카지마 후타리 지음 / 김선영 옮김. 비채 펴냄.

클라인의 항아리

오카지마 후타리 지음, 김선영 옮김,
비채, 2011


#클라인의 항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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