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바이버 미션>겉표지
들녘
희생자의 소지품에 집착하는 연쇄살인범들도 있다. 그런 살인범은 대부분 자기만족을 위해서 살인을 한다. 그리고 그 기념(?)으로 희생자의 소지품이나 신체일부를 가져간다.
살인범은 현장에서 가져온 희생자의 신분증이나 장신구 등을 바라보면서 희생자를 떠올린다. 동시에 살인을 할 당시에 느꼈던 흥분을 되새기기도 한다.
희생자의 눈에서 생명의 빛이 사라져가던 모습을 떠올리며 살인의 순간을 돌아보는 것이다. 수집품은 연쇄살인범에게 살인의 충동을 억제시키는 역할도 한다. 희생자의 소지품을 손에 넣고 바라보면서 만족감을 느끼는 동안에는 살인의 충동도 그만큼 줄어든다.
그런 감정이 사라져버리면 그때는 또다른 사냥감을 찾아서 거리로 나아간다. 특정부류의 사람을 찾아서 살인을 하고, 그를 연상하게 해줄 물건을 가져온다. 그리고 시간이 지날 때까지 그 물건을 바라보면서 만족한다. 이런 과정이 계속 반복되는 것이다. 스스로 살인을 그만두거나 경찰에 체포되기 전까지.
살인사건을 파헤치는 독특한 콤비오가사와라 게이의 2004년 작품 <서바이버 미션>에서 연쇄살인범은 희생자의 머리를 통째로 가져간다. 벌써 네 명이나 죽인 이 살인범에게 수사진은 '머리사냥꾼'이라는 이름을 붙여준다. 머리사냥꾼의 표적이 되는 사람들의 직업은 다양하다. 외과의사, 사진가, 패션모델, 형사.
직업이 이렇게 다양하지만 공통점도 있다. 모두 아름다운 외모를 가진 젊은 여성이라는 점이다. 살인범이 희생자의 머리를 절단하는 데에는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을 것이다. 일반적으로는 사체의 신원이 밝혀지는 것을 방해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과학수사기법이 발달한 현대라면 머리가 없더라도 신원을 파악하는데 큰 어려움이 없다.
그렇다면 살인범은 머리 자체에 집착했다는 이야기다. 분명히 살인범은 자신이 죽인 여성들의 머리를 자신의 집 또는 특정한 장소에 보관해둘 것이다. 부패방지처리가 된 여성들의 머리 여러개가 마치 장식품처럼 놓여있는 공간. 상상만해도 등골이 서늘해지는 풍경이다.
이 연쇄살인범을 체포하기 위해서 경찰청은 아소 리츠라는 이름의 젊은 여형사를 특별수사관으로 임명한다. 리츠는 젊고 경험이 많지 않기 때문에 경찰청에서는 리츠에게 그녀를 도와줄 특별 에이전트를 소개해준다. 그 에이전트는 '닥터 키시모토'라는 인공지능 형사다. 인공지능 형사라고 해서 인조인간이나 사이보그 같은 존재는 아니다.
그는 경찰청에서 리츠에게 제공해준 노트북에 내장된 인물이다. 노트북을 켜면 3차원 디스플레이 화면에 한 인간의 홀로그래픽 영상이 떠오른다. 그가 바로 닥터 키시모토다. 그는 마치 사람처럼 보고 들으면서 리츠와 대화한다. 리츠가 밖에서 뛰어다니며 모아온 정보를 들려주면, 키시모토는 그것을 분석하고 추리한다. 리츠와 키시모토는 이렇게 호흡을 맞추며 연쇄살인범을 추적하기 시작한다.
머리사냥꾼의 정체는 무엇일까젊은 미모의 여성들만 노리는 연쇄살인범의 정체도 궁금하지만, 그보다 더 흥미로운 것이 바로 닥터 키시모토다. 미래에는 발달된 인공지능 기술을 바탕으로 친구나 애인역할을 하는 로봇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고독하고 마음이 여린 사람들은 그 로봇과 대화하면서 마음의 위안을 얻을 수도 있다.
그렇더라도 리츠는 위화감을 지울 수가 없다. 프로그램으로 작동하는 전자회로에 비밀을 털어놓거나 사생활을 밝힌다는 것이 아직까지는 이해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도 시간이 지나면서 리츠는 키시모토에게 마음을 열기 시작한다. 노트북 위에서 망령이나 허깨비처럼 떠오르는, 작은 집적회로에 갇힌 한 남자에게 연민을 느꼈는지도 모른다.
아니면 어려서 부모를 잃고 혼자서 살고 있는 리츠도 외로움에 지쳤기 때문일 것이다. 때로는 키시모토에게 화를 내고 소리지르지만, 단지 대화를 하고 싶어서 밤 늦게 키시모토를 불러내기도 한다. 키시모토는 노트북을 켜면 나타나는 '램프의 요정' 같은 존재다.
<서바이버 미션>은 '리츠와 키시모토 시리즈'의 첫 번째 편이다. 작가는 범죄소설에 등장하는 어떤 형사들 못지않게 독특한 콤비를 만들어낸 것이다. 인공지능 형사인 닥터 키시모토와 리츠가 앞으로 어떻게 유대감을 이어갈지, 어찌보면 허상에 불과한 키시모토의 운명이 어떻게 될지가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