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마는 왜 여자를 죽이고 미라로 만들었을까

[서평] 테스 게리첸 <악녀의 유물>

등록 2011.12.26 10:41수정 2011.12.26 1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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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악녀의 유물> 겉표지

<악녀의 유물> 겉표지 ⓒ 랜덤하우스

테스 게리첸의 2008년 작품 <악녀의 유물>은 '제인 리졸리 시리즈'의 일곱 번째 편이다. 시리즈의 첫 번째 작품인 <외과의사>가 발표된 것이 2001년이니까 작가는 거의 일 년에 한 편 꼴로 작품을 발표한 것이다.

그 기간 동안 여러가지가 변했다. <외과의사>에서 서른 살의 주인공 제인 리졸리는 보스턴 경찰서 강력반 소속의 형사로 등장한다.


강력반으로 오기 전에 제인 리졸리는 마약단속반에서 근무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부서를 옮기면서 강력반의 유일한 여형사가 된 것이다.

남자들의 세계인 경찰서 강력반 안에서 제인은 처음부터 왕따 비슷한 처지에 놓인다. 남자 형사들은 제인이 의견을 내놓을 때마다 그녀의 말을 끊고 다른 질문을 던진다. 거기에 대해서 제인이 항의하면 남자들은 "그날인가 보군"이라며 모욕적인 말을 던지고 가버린다.

경찰서 강력반의 홍일점 제인 리졸리

한술 더 떠서 어떤 형사는 제인의 책상에 생리대를 놓아두고 그녀의 반응을 지켜본다. 그럴때면 제인은 울분을 꾹 참고 남자들의 도발에 넘어가서 흥분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 노력한다.

상관이 남자들의 이런 행동에 대해 지적하려고 하면 제인은 "날 대신해서 내 전투에 뛰어들지 말라고요!"라고 소리지른다. 어렸을 때부터 남자 형제들 틈에서 멸시 당하며 자라온 제인은 필사적으로 남자다운 성격을 가지려고 노력해왔다. 그래서인지 평범한 외모의 제인은 화장도 하지 않고 복장에도 신경쓰지 않는다.


대신에 강인한 여전사가 되기 위해 노력할 뿐이다. 다행히도 제인의 동갑내기 파트너인 배리 프로스트는 다정하면서 배려심이 많은 성격을 가졌다. 제인은 프로스트를 가리켜서 "부인이 교육을 잘 시켰나본데"라고 말할 정도다. 첫 작품에서 제인은 '외과의사'라는 별명의 연쇄살인범을 체포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면서 동료들에게 인정받기 시작한다.

그로부터 시리즈 안에서 4년의 시간이 지난 후에 <악녀의 유물>이 시작된다. 제인은 결혼해서 딸 하나를 가진 엄마가 되었지만 여전히 총을 들고 현장을 바쁘게 뛰어다닌다. 파트너인 배리 프로스트와의 팀워크도 견고하게 유지되고 있다. 이제는 다른 남자 형사에게 눈빛만으로 지시를 내릴 정도로 강력반 안에서 제인의 위치도 확고부동해졌다.


제인은 그래도 더욱 강해지려고 노력한다. 강력반도 남자들의 세계고 사이코 연쇄살인범도 남자들이다. 그 안에서 제인이 살아남으려면 강해지는 것 이외에는 방법이 없다. 제인은 자신을 꼭 닮은 딸을 안고 생각한다. 이 아이도 앞으로 투사가 될 것이라고. 그리고 딸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어떠한 위험도 무릅쓸 것이라고.

희생자를 미라로 만드는 연쇄살인범

<악녀의 유물>은 보스턴의 한 박물관에서 2000년 된 이집트 시대의 미라가 발견되면서 시작한다. 이 미라는 많은 고고학자와 매스컴의 관심을 사로 잡게 되고, 호기심 가득한 학자들은 이 미라를 CT 촬영하기로 결정한다. CT 촬영 도중에 미라의 몸속에서 총알이 나타나고, 정밀검사 결과 이 미라의 주인공은 2000년 전 인물이 아니라 최근에 살해된 현대인이라는 사실이 밝혀진다.

고고학적 호기심은 살인사건의 흥분으로 변한다. 제인은 프로스트와 함께 이 사건을 담당하지만 많은 것들이 의문 투성이다. 범인은 왜 여자를 죽이고 그 시체를 미라로 만들었을까?

작품 속에는 매력적인 외모의 젊은 여성 고고학자도 등장한다. 제인은 그녀를 보면서 질투 비슷한 감정을 느낀다. 자신이 예쁘지 않다는 사실 때문에, 세상을 편하게 살아가는 매력적인 여자들에게 화가 나는 것이다. 남자들은 예쁜 여자들의 비위를 맞춰주고 그녀의 말을 들어준다. 남자들의 세상에서 매력적인 여자들 또한 생존자다. 하지만 제인과는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살아남는 것이다.

'제인 리졸리 시리즈'에는 여성들을 노리는 연쇄살인범들이 많이 나타난다. 거기에 맞서 가며 제인은 지긋지긋하다는 생각을 한다. 항상 마주해야하는 피와 죽음이 역겹고 무엇보다도 실패가 지겨운 것이다. 이렇게 조금씩 변해가는 제인의 모습을 바라보는 것이 이 시리즈의 묘미다. 앞으로도 계속 제인의 활약을 볼 수 있기를 바란다.

덧붙이는 글 | <악녀의 유물> 테스 게리첸 지음 / 박아람 옮김. 랜덤하우스 펴냄.


덧붙이는 글 <악녀의 유물> 테스 게리첸 지음 / 박아람 옮김. 랜덤하우스 펴냄.

악녀의 유물 -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6-7

테스 게리첸 지음, 박아람 옮김,
랜덤하우스코리아, 2011


#악녀의 유물 #테스 게리첸 #제인 리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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