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을 꿈꾸는 탐정, 주홍색을 싫어하는 여학생

[리뷰] 아리스가와 아리스 <주홍색 연구>

등록 2012.01.13 11:20수정 2012.01.13 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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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홍색 연구> 겉표지 ⓒ 비채

추리소설을 좋아하는 독자라면 일본작가 아리스가와 아리스의 <주홍색 연구>를 보는 순간 저자가 셜록 홈즈의 팬이라는 사실을 직감할 것이다. 역사상 가장 유명한 탐정인 셜록 홈즈는 코난 도일의 1887년 작품인 <주홍색 연구>를 통해서 데뷔한다.

그로부터 113년이 지난 후에 아리스가와 아리스는 같은 제목이지만 전혀 다른 작품을 발표한다. 현대의 추리작가 중에서 셜록 홈즈의 영향을 받지 않은 사람은 아마 거의 없을 것이다.


특히 아리스가와 아리스에게 있어서 셜록 홈즈는 '단순하게 영향을 미친 탐정'보다 더 대단한 존재였을지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셜록 홈즈의 데뷔작과 같은 제목의 작품을 당당하게 발표할 수 있었을 것이다.

대부분의 추리소설 마니아들이 그렇듯이, 아리스도 초등학교 시절에 추리소설에 빠져들었다. 작가는 셜록 홈즈 같은 명탐정들이 활약하는 세계에 심취해서 '언젠가는 나도 이런 작품들을 써봐야지'라고 마음먹지 않았을까.

그렇게 본다면 아리스의 <주홍색 연구>는 셜록 홈즈에게 보내는 일종의 기념비 같은 작품이자, 또한 어린 시절 자신을 추리소설로 이끌어준 위대한 탐정에 대한 그리움이 만들어낸 작품일 것이다.

어려운 성장기를 보낸 여대생

아리스의 <주홍색 연구>에는 오렌지색을 보면 일종의 두려움을 느끼는 여대생 기지마 아케미가 등장한다. 일본에는 '만두가 무서워요'라는 만담이 있다고 한다. 만두가 무섭다는 말은 그냥 웃어 넘길 수 있겠지만, 특정 색에 대해서 유독 심각한 반응을 보이는 사람에게는 호기심이 생긴다. 그 색에 대해서 어떤 기억을 가지고 있기에?


아케미는 어린 시절 부모를 잃고 이모집에서 얹혀 살며 청소년기를 보냈다. 이모집 별채에 살던 열다섯 살 때, 본채에서 불이나서 이모부가 사망하는 모습을 직접 목격한다. 그때부터 주홍색을 보면 불을 연상하고 불길에 휩싸여 사망한 이모부가 떠오른다. 특정 색에 대한 지독한 트라우마인 셈이다.

트라우마를 극복하려면 그것에 정면으로 맞서야 한다. 아케미는 자신이 다니는 대학교에서 범죄사회학 강의를 하는 히무라 히데오를 찾아간다. 히무라는 교수이면서 동시에 경찰의 사건수사에 참여해서 자문과 조언을 해주는 탐정이기도 하다. 히무라 덕분에 수많은 어려운 사건이 해결되었을 만큼 그는 현장에서 능력을 발휘해 왔다.

아케미는 히무라의 명성을 듣고 그의 연구실을 찾아온 것이다. 아케미가 의뢰한 사건은 2년 전에 이모의 별장에서 일어난 사건이다. 그 별장에서 살인사건이 발생했는데 아직까지 해결되지 않은 상태다. 아케미는 어린 시절에 부모를 잃고 그 후에는 화재로 이모부가 죽는 모습을 보았다. 또 2년 전에는 다른 살인사건을 겪었으니 참으로 힘든 성장기를 보낸 것이다.

히무라는 아케미의 의뢰를 받아들이고 사건을 조사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며칠 지나지 않아서 2년 전 사건의 관계자가 살해당하는 일이 발생한다. 히무라는 이 살인이 2년 전의 살인사건, 그리고 아케미 이모부의 목숨을 앗아간 화재와도 연관되어 있다고 추측한다.

교수와 작가의 독특한 콤비 플레이

홈즈의 곁에 왓슨이라는 충실한 조수가 있었듯이, 히무라의 옆에는 작가와 동명의 등장인물인 아리스가와 아리스가 있다. 작품 속에서 30대의 추리소설 작가로 나오는 아리스는 상상력을 발휘해서 히무라에게 조언을 해주고 자신의 추리를 들려준다.

아리스의 노력은 그다지 빛을 발하지 못한다. 히무라는 아리스에게 "제 정신으로 하는 소리야?"라고 말하기도 한다. 아리스의 추리보다는 그가 가지고 있는 추리소설에 관한 생각이 더욱 흥미롭다. 아리스는 '추리소설이 갖는 애달픈 흥취'에 대해서 말한다.

살인사건에는 시체가 등장하고, 그 시체는 누가 자신을 죽였는지 말할 능력을 상실한 존재다. 즉 추리소설의 불가능성이란 것은, 아무리 물어도 대답하지 않는 자에게서 이야기를 끌어내는 것이다. 침묵하는 상대에게 거듭해서 질문하는 것은 안타까운 행위라는 것이다.

히무라도 독특한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다. 그는 '누군가를 죽이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있기 때문에 살인자를 사냥하는 거라고 말한다. 가끔씩은 그 누구를 직접 죽이는 악몽을 꾸다가 잠에서 깨어나기도 한다. 히무라에게 살인범을 추적하는 일은 곧 자신의 악몽을 극복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주홍색 연구>는 아리스와 히무라가 함께 등장하는 시리즈의 한편이다. 앞으로의 시리즈에서 히무라의 악몽이 어떻게 끝날지가 궁금해진다.

덧붙이는 글 | <주홍색 연구> 아리스가와 아리스 지음 / 김선영 옮김. 비채 펴냄.


덧붙이는 글 <주홍색 연구> 아리스가와 아리스 지음 / 김선영 옮김. 비채 펴냄.

셜록 홈즈 01 : 주홍색 연구

아서 코난 도일 지음, 김석희 옮김, 조승연 그림,
비룡소, 2013


#주홍색 연구 #아리스가와 아리스 #추리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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