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아이가 죽었다, 우리 모두가 범인이다

[리뷰] 누쿠이 도쿠로 <난반사>

등록 2012.01.25 09:37수정 2012.01.25 09:37
0
원고료로 응원
a

<난반사> 겉표지 ⓒ 문학동네

대부분의 사람들은 살면서 사소한 원칙들을 무시하곤 한다. 강도나 절도같은 심각한 범죄가 아니라 글자 그대로 사소한 것들이기 때문에 크게 신경쓰지도 않는다.

가정에서 생긴 쓰레기를 모아서 지하철역 쓰레기통에 버린다거나, 술 마시고 거리에서 구토를 하고 그냥 달아나거나 아니면 공공장소에서 담배를 피우고 꽁초도 아무렇게나 버리는 행동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이런 행동들은 실정법에 약간 저촉되거나 조금 양심에 찔리는 일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딱히 '범죄'라고 하기도 그렇다. 이런 짓을 하다가 남들에게 들키면 부끄럽고 민망하겠지만, 그 목격자도 그냥 못본 척하고 넘어갈 가능성이 많다.

물론 이런 행동이 나중에 어떤 큰 파장을 일으킨다고 생각하면 자제할 수도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런 상상력을 발휘하지 않는다. 가정쓰레기를 지하철역에 버린다고 해서 운행 중인 전동차에 사고가 발생하는 것도 아니고, 도로에 구토 좀 했기로서니 누가 죽는 것도 아니지 않나?

아이를 죽음으로 내몬 연쇄작용

누쿠이 도쿠로의 2009년 작품 <난반사>에서는 한 아이가 죽는다. 그런데 이 죽음의 원인이 참 애매모호하다. 겉으로는 불운한 사고처럼 보이지만 그 내막을 하나씩 들춰보면 결코 단순한 사고가 아니다. 사람들이 무심코 하는 사소한 행동들이 모이고 모여서 한 아이를 죽게 만든 것이다.

<난반사>에는 다양한 인물들이 등장한다. 그들은 모두 자기만의 편의를 위해서 또는 알 수 없는 허영심으로 어떤 행동들을 하게 된다. 대학생 안자이 히로시는 몸이 약해서 평소 감기에 자주 걸린다. 그때마다 병원을 찾아가는데 낮에는 사람들이 붐벼서 여유있게 진료를 받지 못한다.


그래서 히로시는 주로 응급환자들을 상대하는 야간에 병원을 찾는다. 감기로 야간에 병원을 찾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정말로 급한 환자가 생겼을때 문제가 될 소지가 있다는 사실을 애써 무시하면서.

직장에서 은퇴하고 아내와 단 둘이 살고 있는 60대의 노인 미스미 고조는 적적한 일상을 달래기 위해서 작은 애완견을 한 마리 구입한다. 매일 이 개를 데리고 산책을 하는 것이 낙이다. 문제는 애완견이 매일 같은 도로에서 변을 보는데 그 변을 자신이 직접 치우지 못한다는 점이다.


변을 치우려고 허리를 굽히면 신경통이 도져서 엄청난 통증이 몰려온다. 쪼그리고 앉아서 개똥이나 치우는 모습을 남들에게 보이고 싶지도 않다. 그래서 고조는 점점 쌓여가는 개똥을 그냥 방치해 둔다. 이 개똥 때문에 나중에 어떤 문제가 발생할지 상상하지 못한 채로.

파격적인 형식의 미스터리

이런 행동을 하는 사람들은 개인적인 사정만 생각하지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을 지려하지 않는다. 자기만 편하려고 하는 이기심에서 나온 행동이지만 이기주의가 범죄는 아니니 이들에게 책임을 추궁하기도 힘들다.

<난반사>에는 이외에도 많은 사람들이 등장한다. 허영심에서 지역사회운동을 시작한 전업주부, 어려운 환자는 받지 않으려고 하는 젊은 의사, 경쟁을 싫어하고 적당주의에 물든 공무원 등. 이들의 행동이 묘하게 연쇄작용을 일으키면서, 개미구멍 하나로 둑이 무너지듯이 한 아이를 죽음으로 몰아간 것이다.

어린아이의 죽음 만큼 안타까운 일도 드물다. 태어나서 이제 막 걸음마를 시작한, 제대로 세상을 보지도 못한 아이라면 더욱 그럴 것이다. 실제로 이런 식의 사고가 현실에서 일어나기는 힘들다. 그렇지만 개인이 무심코 저지른 악의 없는 행동이 원인이 되서 발생하는 대형사고도 있지 않을까.

<난반사>를 읽고나면 평소에 이기적으로 한 행동 때문에 누군가가 지금쯤 큰 곤욕을 치르고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진짜로 사람이 죽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인간의 운명은 아주 사소한 일 하나로도 갈리는 법이다.

덧붙이는 글 | <난반사> / 누쿠이 도쿠로 지음 / 김소영 옮김 / 문학동네 펴냄


덧붙이는 글 <난반사> / 누쿠이 도쿠로 지음 / 김소영 옮김 / 문학동네 펴냄

난반사

누쿠이 도쿠로 지음, 김소영 옮김,
문학동네, 2011


#난반사 #누쿠이 도쿠로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세계에서 벌어지는 기현상들... 서울도 예외 아니다
  2. 2 세계 정상 모인 평화회의, 그 시각 윤 대통령은 귀국길
  3. 3 돈 때문에 대치동 학원 강사 된 그녀, 뜻밖의 선택
  4. 4 신장식 "신성한 검찰 가족... 검찰이 김 여사 인권 침해하고 있다"
  5. 5 디올백 무혐의, 어느 권익위 고위 공직자의 가상 독백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