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세로 1억7백만 통... 부끄럽지 않나

[取중眞담] 200억 대 세금 들여 1조 이상 경제효과?

등록 2012.02.16 19:12수정 2012.02.17 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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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로운 방식으로 돌아가면서 쓰는 코너입니다. [편집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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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7대자연경관 선정 작업을 진행하는 스위스의 뉴세븐원더스재단 설립자 버나드 웨버 이사장(왼쪽)과 장폴 이사(자료사진) ⓒ 권우성


기자는 지난해 12월 27일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와 서귀포시를 상대로 국제전화요금 사용내역(2010년 12월부터 2011년 11월까지)에 관한 정보공개를 청구한 바 있다. 하지만 세 곳 모두 '비공개'를 통보해왔다. 세 곳에서 제시한 '비공개' 결정의 이유는 이랬다.

"도의 국제 공공전화요금은 7대자연경관 요금이 포함돼 별도의 일반 국제전화요금을 구분하기 어려우며 7대자연경관 요금은 N7W재단과 KT간에 NDA(Non Disclosure Agreement, 기밀유지협약)가 체결되어 있어 우리 도에서는 N7W와 KT간의 NDA를 존중하여 전화요금 내역을 공개하지 못함을 널리 양해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하지만 이들의 '비공개' 결정은 기존의 '공개' 결정을 뒤집은 것이었다. 기자는 이미 지난해 5월 제주시와 서귀포시를 상대로 국제전화요금 사용내역(2008년부터 2011년 4월까지)에 관한 정보공개를 청구했고, 그 내역을 모두 제공받았기 때문이다. 거기에도 전화투표 요금은 포함돼 있었다.

한 달에 전화요금 2만 원 쓰면 '위대한 조상' 소리 듣는다?

이렇게 제공받은 사용내역에 따르면, 제주시와 서귀포시에서 사용한 국제전화 사용요금은 연 200만~300만 원 수준이었다. 하지만 세계 7대자연경관 선정투표가 진행된 2011년 3월부터 국제전화 사용요금이 급격하게 늘어났다.

제주시의 경우 2011년 2월 254여만 원에서 3월 3163여만 원으로 늘더니 4월에는 2억3860만 원으로 급증했다. 이와 같은 추세는 서귀포시에서도 그대로 발견됐다. 2011년 2월 100만여 원에 불과하던 국제전화 사용요금이 3월 5575여만 원, 4월 1억8072여만 원으로 크게 늘어난 것.

제주시와 서귀포시에서 2011년 1월부터 4월까지 사용한 국제전화요금은 총 5억1040만 원이었다. 평소 두 지방자치단체에서 사용해온 국제전화요금이 연 200만~300만 원 수준이었다는 점을 헤아리면 5억여 원의 전화요금은 대부분 세계 7대자연경관 선정투표에 집중한 결과였다. 


심지어 이것도 모자라 서귀포시에서는 지난해 4월 말 '1인당 1일 10통화'를 목표로 '공무원 자비 전화투표 참여'계획까지 세웠다. 정규직 공무원(1003명)을 대상으로 1인당 한 달 1만∼5만 원 범위 안에서 자비로 세계 7대자연경관 선정 투표에 참여하자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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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1년 4월 24일 오전 서귀포시 성산 일출봉 잔디광장에서 '제주-세계 7대 자연경관 선정 범국민추진위원회' 주최로 열린 '세계 7대 자연경관 제주 선정기원 관광문화축제'에서 정운찬 범국민추진위원장과 우근민 제주도지사, 뉴세븐원더스 설립자 버나드 웨버 등 제주도민들이 참석해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 유성호


세계 7대자연경관 선정 투표를 가장 앞서서 이끌었던 우근민 제주특별자치도지사도 이러한 '공무원 자비 전화투표'를 독려했다. 그는 지난해 5월 2일 열린 직원조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한 사람이 100통화를 한다고 치면 1만8000원 정도 든다. 우리 100만 내외 도민이 100표씩만 찍도록 하면 1억 표가 금방 된다. 이런 기회에 우리가 한 달에 2만 원 정도 더 쓰면 후대에 자손들로부터 '가장 위대한 조상'이라는 소릴 들을 수도 있다. 한번 해보자."

이러한 '공무원 자비 전화투표'가 공무원노조에 의해 실행 전 중단되긴 했지만 '공무원 동원'이라는 씁쓸한 뒷맛을 남겼다. 강문상 전국공무원노조 서귀포시 지부장은 당시 기자와 한 전화통화에서 "공무원들을 동원하려고 머리를 짜내고 있는 상황"이라고 전하기도 했다.

시민사회단체 압력에 결국 전화요금 공개... 총 268억 썼다

제주도는 지난해 6월 편성한 추경예산안에 '투표용 공공전화요금' 30억 원을 포함시켰다. 세계 7대자연경관 선정 투표에 세금 30억 원을 쓰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같은 해 9월까지 진행한 전화투표건수는 1억 통을 넘어섰다. 전화투표 1통당 198원이라는 점을 헤아리면 예산범위에서 훨씬 벗어난 약 200억 원의 혈세가 전화투표에 사용된 것이다.  

이렇게 과도한 전화투표로 인한 논란이 크게 일자 제주도는 언론과 시민단체의 국제전화요금 정보공개 청구에 '비공개' 결정으로 대처하기 시작했다. 그러는 동안 세계 7대자연경관 선정투표에 들어간 전화요금이 400억 원에 이른다는 주장까지 나왔다.

그러던 제주도가 지난 9일 세계 7대자연경관 선정투표에 사용한 행정전화요금을 전격 공개했다. 제주도가 제주도의회 문화관광위원회에 세계 7대자연경관 선정과 관련된 현안보고를 하면서 행정전화요금 내역을 공개한 것이다. 

그동안 '비공개' 결정으로 대응해오던 제주도가 서둘러 '공개'로 태도를 바꾼 셈이다. 이는 제주지역 시민사회단체들이 감사원에 공익감사를 청구한 데 따른 '응급조치'로 보인다. 제주도가 전화요금 사용내역을 공개하기 이틀 전인 지난 7일, 제주환경련 등 제주지역 7개 시민사회단체들이 "세계 7대 자연경관 선정 과정의 의혹을 해소하기 위해 감사원에 공익감사를 청구했다"며 제주도를 세게 압박했던 터였다.

이날 제주도가 도의회에 공개된 바에 따르면, KT는 세계 7대자연경관 선정 투표와 관련 제주도 58억7600만 원, 제주시 76억700만 원, 서귀포시 77억300만 원 등 총 211억8600만 원의 전화요금을 부과했다. 총 1억700만 통(한통당 198원)의 전화투표를 했고, 제주도 공무원(7500여명) 1인당 평균 1만4000여 통의 전화투표에 참여한 셈이다. 
  
그런데 이러한 전화투표에 '혈세'만 들어간 게 아니다. 민간인들이 전화투표용도로 기탁한 돈이 있는데 그 금액도 무려 56억7000만 원이다. 결국 전화투표에 들어간 돈은 총 268억5600만여 원에 이른다.

제주도가 세금으로 쓴 211억8600만 원의 전화요금 가운데 지난해까지 KT에 납부한 금액은 104억2700만 원으로 드러났다. 다만 공영민 제주도 지식경제국장은 "KT에서 자신의 이익금 41억6000만 원은 미납요금에서 제외하기로 했다"며 "실제 부과요금은 170억2600만 원이어서 앞으로 65억9900만 원을 더 내야 한다"고 설명했다.

미납요금 65억9900만 원은 앞으로 5년 동안 매달 1억1000만 원씩 나누어서 내기로 했다고 한다. 연간 13억2000만 원에 이르는 세금이 5년 동안 전화요금으로 나가야 한다. '세계 7대자연경관'이라는 타이틀을 거머쥐기 위한 '출혈'은 이렇게 컸다.  

혈세 211억, 1조원 이상 경제효과를 위한 마케팅 비용?

세계 7대자연경관 선정 투표 캠페인은 선정 주체(뉴세븐원더스재단)의 공신력과 상업주의, 투표방식과 결과발표의 신뢰성과 공정성 등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하지만 제주도는 그런 논란들을 애써 외면했다. 그러면서 공무원들을 대거 동원해 211억여 원에 이르는 세금을 전화투표에 쏟아부었다. 뒤늦게 무차별적인 공무원 동원과 거액의 예산낭비를 향한 비판이 터져 나왔다.

제주도에서 전화투표에 사용한 211억여 원은 제주도의 2012년 예산액(3조763억 원)의 약 0.69%에 해당하는 수치다. 열악한 지방재정을 생각하면 이는 결코 작은 규모가 아니다. 그런데도 제주도와 범국민추진위 등은 "제주도 마케팅 비용으로 생각하자"고 항변했다. 정운찬 전 범국민추진위 위원장과 양원찬 전 사무총장의 발언이 대표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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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운찬 제주 세계 7대 자연경관 선정 범국민추진위원장 ⓒ 유성호

"(일부 언론이) 제주도를 먹여 살리기 위한 관광 비즈니스 마케팅에 해괴하고 비상식적인 잣대를 들이대고 있다. 지엽적인 문제를 침소봉대해 세계 7대 자연경관을 활용할 기회마저 좌초시켜 우리가 얻을 이익이 과연 무엇이냐?"(정운찬 위원장, 2월 3일 제주도청 기자회견에서)

"전화투표하는 것도 마케팅이다. 세계 7대자연경관 선정 효과에 비하면 마케팅 비용으로서 200억~300억 원의 전화비는 엄청 싸다."(양원찬 사무총장, 1월 31일, <오마이뉴스>와 한 인터뷰 중에서)

예상되는 1조 원 이상의 경제효과를 위해 전화투표에 200억 원대의 세금을 써도 무방하다는 투다. 하지만 '1조 원 이상의 경제효과'라는 장밋빛 전망은 '특정한 가정' 아래에서 나온 수치다. 한마디로 여론몰이를 위해 경제효과를 크게 부풀렸다는 것이다. 

세계 7대자연경관 선정의 경제효과와 관련된 보고서를 작성한 고태호 제주발전연구원 박사도 KBS와 한 인터뷰에서 "(특정) 가정 하에 분석을 한 것"이라며 "그 속에 내용을 보면 비현실적인 가정이라는 내용이 나와 있는데 그것은 얘기를 안하더라"고 난처해했을 정도다. 

제주도는 '만들어진' 1조 원 이상의 경제효과를 누리기 위해 세계 7대자연경관이라는 타이틀이 절실했는지 모른다. 여기서 경제효과란 결국 관광효과다. 그런데 제주도는 이미 그런 관광효과를 높일 수 있는 '최고의 타이틀'을 보유하고 있다. 생물권보전지역(2002년), 세계자연유산(2007년), 세계지질공원(2010년) 등 '유네스코 자연과학분야 3관왕'이 그것이다. 이는 세계에서도 유일한 기록이다. 유네스코(UNESCO)에서 지정(등재, 인증)한 것이기 때문에 '권위'도 높다.

그런 점에서 제주도는 공신력도 없고, 상업주의 경향이 강하고, 투표방식과 결과발표조차 신뢰할 수 없는 단체의 캠페인에 거액의 예산을 낭비할 게 아니었다. 오히려 권위있는 '유네스코 3관왕'을 홍보하는 게 관광객을 늘리는 가장 좋은 방법일 것이다. 게다가 이러한 '유네스코 3관왕'을 위협하는 해군기지 건설을 재검토하는 것도 당연하고 긴급하게 필요한 일이다.
#세계 7대자연경관 #제주도 #뉴세븐원더스재단 #우근민 #정운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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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전남 강진 출생. 조대부고-고려대 국문과. 월간 <사회평론 길>과 <말>거쳐 현재 <오마이뉴스> 기자. 한국인터넷기자상과 한국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2회) 수상. 저서 : <검사와 스폰서><시민을 고소하는 나라><한 조각의 진실><표창원, 보수의 품격><대한민국 진보 어디로 가는가><국세청은 정의로운가><나의 MB 재산 답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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