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뭉치는 더 이상 안내견으로 일할 수 없단다"

[연재동화] 안내견 뭉치와 로봇 친구 또또 (14) : 은퇴

등록 2012.03.11 21:08수정 2012.03.11 2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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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시 안에서 민재는 어찌할 줄 몰랐습니다. 자꾸 엉덩이를 들썩대며 창문을 열었다 닫았다 했습니다. 그런 민재의 손을 엄마가 가만히 잡았습니다.

"엄마. 우리 뭉치 괜찮을까? 지금 뭉치 얼마나 무서울까?"
"민재야. 너무 걱정 하지 마. 괜찮을 거야."


엄마는 민재를 안심시켜주려 했지만 걱정되는 것은 엄마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지금 민재와 엄마는 급히 안내견센터로 가고있는 중이었습니다. 이광훈 선생님으로부터 뭉치의 상태가 안 좋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서울을 벗어난 택시가 고속도로에 접어들어 속도를 높였습니다. 그러나 민재는 택시가 느릿느릿 기어가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한참을 달린 후에야 택시는 안내견센터에 도착했습니다. 택시에서 내리자 이광훈 선생님이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민재야. 어서 와라. 민재 어머니 어서 오세요. 걱정시켜 드려서 죄송합니다."
"선생님 우리 뭉치는. 뭉치는 괜찮은가요?"
민재는 이광훈 선생님의 팔을 잡으며 말했습니다.

"너무 걱정 하지 마라. 먼저보다 상태가 조금 안 좋아진 것 뿐이야."

선생님은 민재와 어머니를 동물병원으로 안내했습니다. 뭉치는 병원 안의 한쪽 구석에 있는 크레이트(이동식 개 집) 속에 있었습니다. 민재가 들어가자 뭉치는 민재가 온 것을 알고 있듯이 크레이트 안에서 벌떡 일어났습니다.


"뭉치야. 형 왔다. 민재형."
이광훈 선생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뭉치는 크레이트에서 밖으로 달려나왔습니다. 그러다가 바로 앞에 있는 자기 밥그릇을 엎어버렸습니다. 그 바람에 밥그릇에 있던 사료가 사방으로 튀었습니다. 뭉치는 다시 민재를 향해 오려고 했습니다. 그럴 때마다 이곳저곳에 부딪히고 물건을 넘어뜨렸습니다.

"뭉치. 기다려!"
이 선생님께서 뭉치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뭉치는 훈련이 잘된 안내견답게 그 자리에 우뚝 멈췄습니다. 그러나 이쪽으로 오고 싶어서 엉덩이를 들썩거렸습니다. 선생님이 뭉치를 데리고 민재에게로 왔습니다.


"선생님 뭉치가 왜 그래요?"
민재 어머니가 물었습니다.

"지금 본 것처럼 뭉치의 상태가 조금 더 나빠졌습니다. 지금 시력이 많이 떨어진 상태입니다. 겨우 눈 앞의 물체를 구별할 수 있을 정도입니다. 자세한 것은 수의사 선생님께서 말씀해 주실 것입니다."

그러나 수의사 선생님의 설명을 들어도 민재는 알 수가 없었습니다. 다만 합병증으로 인해 각막에 이상이 생겼고 어쩌면 실명할 수 있다는 말만 알아들을 수 있었습니다.

"뭉치야.아니지. 넌 절대 안 아플 거지? 나하고 공 가지고 놀자."
민재가 가방에서 파란공을 꺼냈습니다. 그리고 통통통 튀겼습니다. 그러나 뭉치는 제대로 공과 눈을 마주치지 못 했습니다. 민재의 어머니가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민재야. 뭉치가 공을 제대로 쳐다보지 못하는구나."
민재는 참고 있던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습니다.

'형. 울지 마. 이제야 형이 얼마나 힘들었는지를 알겠어. 내가 조금만  더 제대로 안내를 해주었더라면.. 미안해. 형.'
뭉치는 속으로 말하며 민재의 얼굴을 가만히 혀로 핥았습니다. 민재가 뭉치의 목을 와락 껴안았습니다.

"뭉치야. 안돼. 넌 앞이 안 보이면 절대로 안 돼. 이제부터 공 가지고 놀아도 야단 안 칠게."

민재의 손에서 공이 떨어져 바닥으로 굴렀습니다. 뭉치는 가만히 민재의 얼굴에 흐르는 눈물을 혀로 핥았습니다. 잠시 후 뭉치의 문제를 위한 안내견센터의 회의가 있었습니다. 민재와 어머니도 회의에 참석했습니다.

"뭉치는 현재로선 치료의 희망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민재 학생에게 새로운 안내견에 대한 대체 분양을 논의하려고 회의를 하고자 합니다."
황윤덕 팀장이 말했습니다.

"사실 민재 학생의 행동 패턴에는 뭉치가 가장 적격이었습니다. 우리도 그래서 뭉치와 민재 학생의 매칭에 상당히 보람을 느꼈습니다. 그런데 안타깝게 뭉치가 더는 안내견으로 활동하기 어려워졌습니다. 현재 민재의 대체분양할 안내견으로 백두가 어떨까 합니다. 백두의 담당 훈련사이신 김선우 선생님 말씀해 주시죠. "

"백두는 민재 학생에 행동 패턴에 맞춰 훈련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한 달 정도면 실제 활동도 무난하리라고 봅니다. 민재야. 그리고 민재 어머니. 조금 힘들고 불편하더라도 한 달 정도만 기다려 주시죠."
"싫어요. 전 뭉치 말고는 다른 안내견은 싫어요."
민재는 옆에 있는 뭉치를 꼭 안으며 말했습니다.

"민재야. 네 맘 알지만 그럴 수는 없단다. 뭉치는 이제 쉬어야 해. 더 이상 안내견 활동이 불가능하다고…."
황윤덕 선생님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씀하셨습니다.

"뭉치의 경과를 조금 더 지켜보면 어떨까요? 담당 수의사께서도 호너신드롬이 자연 치유되는 경우도 있다고 하셨으니까요."
이광훈 선생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건 조금 어려울 듯합니다. 담당 수의사로서 소견을 말씀드리자면…. 호너신드롬의 경우 재발 후 6개월 정도 지나면 자연 치유되는 예도 있습니다. 뭉치에게도 그런 점에서 희망을 품었었고요. 문제는 호너신드롬 말고도 거기에 따른 합병증에 대한 것입니다. 현재 뭉치는 안구건조증이 심하고 이에 따라 각막의 손상이 우려됩니다. 심하면 각막에 구멍이 생기는 각막천공으로 이어질 수도 있어요. 현재 뭉치의 시력이 떨어진 이유는 이와같이 각막에 문제가 생겨 투명해야 할 각막이 뿌옇게 변해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부분은 저로서도 어쩔 수가 없어요. 당장엔 감염을 방지하거나 인공 눈물을 투여하는 방법을 사용하고 있습니다만 언제 실명으로 이어질지 모르는 상황입니다."

안내견센터의 여러 선생님은 여러 가지 의견을 내놓았습니다. 그러나 결국은 민재에게 새로운 안내견을 대체 분양하는 것으로 결론이 났습니다. 뭉치는 이제 은퇴를 해야 했습니다. 은퇴하면 뭉치를 보살펴 줄 새로운 자원봉사자와 함께 살게 될 것입니다.

"선생님. 뭉치와 제가 함께 살 수는 없나요?"
"그건 곤란하단다. 뭉치는 이제 쉬어야 하고 뭉치를 보살펴 줄 새로운 자원봉사자를 만나야 해. 시각장애인과 함께 있으면 안내를 해야 한다는 부담감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을 수도 있고."
민재의 말에 황윤덕 선생님이 설명을 해주었습니다.

"그럼 잠시만이라도요. 한 달만 아니 일주일만이라도."
민재는 안타까운 마음으로 부탁을 했습니다.

"민재야. 정말 곤란하구나. 너의 마음은 잘 안다. 그러나 그런 마음이 오히려 뭉치를 더욱 힘들게 할 수도 있으니 조금 참으렴."
황윤덕 선생님은 정말 미안한 표정으로 말했습니다.

"팀장님. 이러면 어떨까요. 잠시 민재와 뭉치가 함께 있는 시간을 만들어 주는 것 말입니다. 민재와 뭉치의 추억 만들기를 위해서도 시간이 필요할 듯싶습니다. 누구보다 뭉치는 제가 잘 알고 있습니다. 뭉치는 시각장애인을 안내할 때 오히려 스트레스가 없어지는 것 같아요. 잠시지만 민재와 함께 지내는 생활이 도움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뭉치는 현재 누구보다 민재를 원하고 있어요."
이광훈 선생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선생님. 그렇게 해주세요. 우리 민재가 이렇게 뭉치와 헤어진다면 너무 힘들 것 같아요. 뭉치도 그렇고…. 서로에게 같이 있을 시간이 필요 할것 같아요."
민재의 어머니도 부탁하였습니다.

안내견센터에서는 이 주일 정도 민재와 뭉치가 함께 지내도록 하자고 했습니다. 민재와 어머니는 뭉치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렇지만 더이상 전처럼 뭉치가 민재형을 안내할 수는 없었습니다.
#안내견 뭉치 #시각장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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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는 1급 시각장애인으로 이 땅에서 소외된 삶을 살아가는 장애인의 삶과 그 삶에 맞서 분투하는 장애인, 그리고 장애인을 둘러싼 환경을 기사화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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