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사에 의욕이 없다고 질책 받는 아이인데...땀이 비 오듯 해도 연습은 쉬지 않는다. 힘들어도 아이들의 표정은 밝다.
서부원
다 그런 건 아닐 테지만, 이번 축제를 준비하는 아이들 중 상당수는 공부엔 전혀 관심이 없어 수업시간 내내 졸거나 선생님들로부터 지적깨나 당하는 '문제아'들이다. 개중에는 얼마 전 학교폭력 문제로 교무실을 제집 드나들 듯이 한 아이도 있다. 수업 중 그들의 희멀건 눈빛이 이렇듯 초롱초롱해진 건 오로지 축제 때문이다.
지각을 밥 먹듯 하는 아이가 이른 아침, 그것도 쉬는 날 학교에 달려나오는 것. 또, 공부하기 싫어 교과서는 물론 볼펜도 가져오지 않는 아이가 제 몸보다 큰 가방에 온갖 소품을 담아 챙겨오는 걸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책 읽으라면 채 10분도 버티지 못하고, 야자 시간이면 엎드려 잠자기 바쁜 아이가 비 오듯 흐르는 땀을 손으로 훔쳐가며 춤에 몰입하는 모습이 너무나 진지해 차라리 낯설다. 축제는 이 아이들의 해방구인 셈이다.
매일 학교에 나오지만 아무런 의지도 욕심도 없이 하루하루를 보낸다고 핀잔을 듣는 아이들이지만, 축제를 앞둔 요즘만큼은 전혀 다르다. 입시 공부에만 젬병일 뿐, 톡톡 튀는 아이디어에 순발력과 재치를 두루 갖췄다. 즉흥적으로 춤동작을 고안하는가 하면, 기존 노래를 편곡해서 쓴다. 또, 진행자로서 애드리브도 전혀 어색하지 않다.
무엇보다도 아이들끼리 서로 협의하여 기획하고 자발적으로 움직인다. 담당 분야만 따로 있을 뿐 위계도 없고, 위계가 없으니 명령과 복종이 있을 리 없다. 아이들끼리 지지고 볶는 셈인데, 그렇다고 중구난방 어수선하지는 않다. 꼭지별 연결 동작을 연습하고 마무리하는 데 시간이 빠듯할 거라 우려했더니, 걱정할 것 없다며 되레 큰소리친다. 주무부서로서 아이들과 함께 축제를 치러야 하는 학생부 교사들이 되레 데면데면할 지경이다.
학교행사도 교육의 일환이고 보면 결과보다는 과정이 더 중요하다. 말하자면, 축제 역시 막상 당일 치르는 것보다 준비하는 일련의 과정이 훨씬 더 의미 있고 중요하다는 의미다. 고백하건대 지금껏 축제를 '학교와 교사가 장을 마련하고 공부에 찌든 아이들에게 하루쯤 일탈을 허용하는 것' 정도로 여겨왔다.
쉬는 날과 무더위도 아랑곳하지 않고 축제 준비에 비지땀을 흘리고 있는 아이들을 바라보면서, 무엇이 진정한 교육인지를 다시금 성찰하게 된다. 아이들을 놀게 해야 한다. 그런다고 아이들이, 어른들이 우려하는 대로, 아무 생각 없이 놀지는 않는다. 뭘 하면 즐거운지, 또 뭘 해야 다른 아이들이 더불어 즐거워하는지를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축제의 공연 큐시트도, 주간 테마 프로그램도 모두 아이들의 머리에서 나온 것이다. 무대 위에서 공연하는 것도, 스태프도, 심지어 졸업한 동문 선배들을 찾아가 후원을 부탁하는 일조차 온전히 아이들의 몫이다. 축제를 마무리하고 나서 느끼는 성취감이 남다를 수밖에 없는 이유다. 아닌 게 아니라 학교생활 중에 언제 또 그런 느낌을 가져볼 수 있을까.
그런데도 고작 학생부장이랍시고 하는 짓이란 거칠게 말해서, 그들이 기획한 축제가 '선량한' 다른 아이들 공부에 방해가 되는 건 아닌지 감시하려는 '수작'일 뿐이니. 늘 그렇듯, 교육자인 양 너스레 떨며 아이들이 신나게 노는 것을 무작정 백안시하는 나 같은 기성세대, 곧, '꼰대'들이 문제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잠시 미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내 꿈은 두 발로 세계일주를 하는 것이다.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
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