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급도 못 받았는데, 과태료까지 내라니?

이주노동자, '인도적 목적' G1 비자 얻기는 '하늘의 별 따기'

등록 2013.01.22 15:12수정 2013.01.22 1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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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8일 오후에 의료용 목발을 짚은 키르기즈스탄 출신 이주노동자와 하지정맥류로 걸을 때 통증을 느낀다는 우즈베키스탄 출신 이주노동자를 만날 기회가 있었다. 처음에는 단순히 아는 사람의 소개로 놀러온 것으로 알았는데, 이야기를 하다 보니까 둘 다 사연이 있었다.

키르기즈스탄 출신 이주노동자는 고용허가제로 한국에 온 지 6년째였는데, 건설현장에서 일을 하다 산재를 당했다. 산재를 당하고 수술을 한 다리에는 철심을 박고 있었고, 두 달 후에 철심 제거 수술을 받을 예정이라고 했다. 그런 그의 손에 두툼한 서류 봉투가 들려 있었는데, 살펴보니 소송 확인증과 소송과 관련하여 법원에서 발급해준 서류들이었다.

우즈베키스탄 이주노동자 역시 고용허가제로 입국하여 체류기한 만기를 앞두고 두 곳에서 임금체불을 당했는데, 한 곳은 800만 원, 한 곳은 1000만 원이었다. 두 곳에 대해 노동부 진정을 하자 노동부는 임금체불 사실에 대한 확인을 했지만, 임금을 받는 것까지는 도움을 주지 않았다. 노동부가 해준 것은 고작 임금체불확인원을 발급해준 것이었다.

두 사람은 소송 확인원과 임금체불확인원을 들고 다니면서 자신들이 합법적으로 체류할 수 있도록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면서 도움을 호소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과정이 여의치 않았던지 지난 금요일까지 자신들의 체류 자격 변경에 대해 확실한 도움을 주는 곳을 만나지 못한 상태였다.

일하다 다쳤는데도 산재 신청 안 하는 회사

a  키르기즈스탄과 우즈베키스탄 출신의 두 이주노동자가 산재와 임금체불로 상담하고 있는 모습

키르기즈스탄과 우즈베키스탄 출신의 두 이주노동자가 산재와 임금체불로 상담하고 있는 모습 ⓒ 고기복

산재를 당한 이주노동자는 이름이 알○이었다. 알○씨는 사고로 다리에 철심을 넣었고, 수술 후부터 지금까지 계속 의료용 지팡이를 짚고 다녀야 할 정도로 큰 사고를 당했다. 그런데 사측에서 산재 신청을 해주지 않아서 소송을 통해 산재승인과 체류자격 변경을 하고자 하고 있었다.

원칙적으로 산재 피해자는 체류자격이 없다 하더라도 소송에 관계없이 'G1' 비자로 체류자격을 변경하여 합법적으로 체류가 가능하다. G1 비자는 '치료, 임금체불' 등 인도적인 사유가 발생해 3개월 이상 체류가 불가피할 경우 발급해주는 비자다. 문제는 산재신청을 거부하는 대부분 사업장의 핑계는 산재보험에 가입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산재보험 당연 가입 사업장의 경우 산재보험에 가입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1인 이상 모든 사업장은 산재보험의 적용을 받을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굳이 소송을 통해 산재승인을 받을 필요가 없다. 이 부분에 대해 변호사 사무실에 왜 소송을 하느냐고 물었더니, 회사 측에서 산재를 신청해주지 않아서 체류기한을 넘기는 바람에 '미등록'이 되었는데, 보상도 받고 철심제거 수술도 하려면 체류 자격을 다시 얻을 필요가 있어서라고 했다.


변호사 사무소는 알○씨의 소송을 무료로 지원해주고 있었다. 그러나 아쉽게도 산재나 이주노동자 체류 관련한 비자 규정에 대해서는 잘 모르고 있었다. 알○씨가 여러 단체를 돌아다녔는데도 불구하고, 산재승인도 못 받고, 체류자격도 못 얻은 이유는 상담을 하고 법률지원을 하고 있는 단체들이 기본적으로 의사소통상의 한계가 있었고, 이주노동자와 관련한 기본적인 상식이 없다 보니까 쉽게 해결할 수 있는 문제를 소송까지 끌고 간 것으로 보였다.

산재 신청 기피 회사에 대응하는 방법


산업재해보상법에 의하면 모든 사업장은 산재보험을 의무 가입해야 하고, 각 사업장에서 사고가 발생할 경우 노동자의 채용형태나 체류자격 등에 관계없이 산재를 신청해야 한다. 이 말은 일반보험처럼 사업주가 임의 가입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산재보험 가입 여부와 상관없이 보험관계는 노동자가 일하는 순간부터 적용된다는 말이다.

그런데 사업주들이 산재 가입을 안 했다는 이유를 들어 산재 신청을 기피한다. 대개 사업주가 병원비를 지급하는 선에서 마무리 지으려고 한다. 노동자들은 산재 치료 후에 다시 일을 해야 하는 입장이다 보니 산재처리를 강하게 요구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사측에서 산재 신청을 기피해도 이 문제가 쉽게 드러나지 않는다. 흔히 이러한 절차를 공상처리라고 하는데, 이럴 경우 나중에 치료가 더 필요하거나 후유증이 남을 경우 그 부담은 산재피해자에게 그대로 전가되기 때문에 공상처리는 산재피해자의 피해를 가중시킬 여지가 있다.

이런 문제점 때문에 사업주가 산재 신청을 기피할 경우, 피해 당사자는 사업주 서명 날인 없이, 사유서를 써서 근로복지공단에 산재를 신청할 수 있도록 하고 있고, 사업주에게는 산재 발생 보고를 하지 않고 은폐할 경우 과태료 1000만 원 이하의 처벌을 하도록 하고 있다. 알○씨의 변론을 맡았던 변호사 사무소에서 이런 규정을 모르다보니까, 소송이라는 번거로운 절차를 통해 산재 승인을 받고자 했던 것이다.

산재는 사업주나 노동자뿐만 아니라, 국가 산업 발전에도 장애가 되기 때문에 재해예방노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래서 국가에서는 산재 예방 노력을 유인하기 위해 산재 발생률을 공사입찰 혹은 낙찰 적격 심사 신인도 평가의 중요한 항목으로 취급한다. 이 말은 산재 발생이 많은 업체에 대해 각종 불이익을 주는 한편, 산재가 적은 업체에는 각종 불이익을 면해 주거나 혜택을 준다는 것이다.

현실이 이렇다 보니, 각 사업장은 신인도 평가에서 인센티브를 받기 위해 산재를 은폐하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산재 발생 신고 의무를 어기다가 적발되더라도 벌금은 은폐로 인해 얻을 수 있는 이득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은 1000만 원 이하의 과태료에 그치기 때문에, 산재 은폐의 유혹을 떨치기가 쉽지 않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려면 산재 은폐 적발에 대한 과태료가 실효성이 있어야 하고, 산재 피해자 당사자들은 자신의 정당한 권리에 대해 스스로 주장할 수 있는 풍토가 마련되어야 한다.

월급도 못 받았는데, 과태료 내라는 출입국

a  출입국관리사무소에 걸려 있는 "외국인과 공존하는 열린사회 구현"이라는 구호

출입국관리사무소에 걸려 있는 "외국인과 공존하는 열린사회 구현"이라는 구호 ⓒ 고기복


임금체불을 당한 이주노동자는 원칙적으로는 G1 비자로 변경이 된다. 다만 그 과정이 쉽지 않고, 체류 자격 변경 과정에서 비용이 발생하기도 한다. 1800만 원이라는 적지 않은 임금을 받지 못한 우즈베키스탄 이주노동자, 김바○씨의 경우 합법적인 체류 자격을 갖고 있던 중에 임금체불을 당했다.

처음 회사에서 800만 원을 못 받았고, 옮긴 회사에서는 1000만 원을 못 받았다. 그런 가운데 국내 체류 기한인 4년 10개월이 지나고 말았다. 월급을 1년 넘게 제대로 못 받은 것도 억울한데, 그동안 체류 자격마저 미등록이 되고 말았다. 임금체불을 해결하려면 합법적인 체류 자격이 필요했던 김바○씨는 출입국관리사무소(이하 출입국)에 체류 자격 변경 신청을 했다.

그런데 출입국에서는 곧바로 체류자격 변경을 해주지 않고, 먼저 고용노동부로부터 '임금체불확인원'을 떼어 오라고 했다. 김바○씨는 고용노동부 쪽에다가는 '준다 준다' 약속만 하고 급여를 주지 않는 사장 말을 믿고 1년을 허비했다. 결국 고용노동부가 임금체불확인원을 김바○씨에게 발급해준 것은 사건이 검찰로 넘어간 후였다. 우여곡절 끝에 임금체불확인원을 받아든 김바○씨를 당황하게 한 것은 과태료 문제였다.

임금체불과 노동부 진정 과정에서 미등록이 된 김바○씨에게 출입국은 '400만 원의 과태료'를 요구했다. 월급 못 받은 것도 억울한데, 과태료까지 내라는 것은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김바○씨는 과태료를 물더라도 체류 자격을 얻는 쪽을 선택했다. 체류 자격 변경을 포기할 경우 1800만 원을 받을 수 있을지에 대한 확신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인도적 목적' G1 비자, 어떻게 개선해야 하나

G1 비자는 '치료, 임금체불' 등 인도적인 사유가 발생해 3개월 이상 체류가 불가피할 경우 발급해 주는 비자다. '인도적인 사유'로 체류자격을 부여한다는 것은 그 사유가 불가피하다는 의미이다. 그런 면에서 분명한 근거가 있어서 체류자격 변경을 허락할 때는 과태료 부과를 면제해주는 것이 마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출입국은 예외 없이 과태료를 물린다.

이에 대해 출입국에서는 G1 비자 발급을 용이하게 해주면, 체류 자격 변경 신청을 악용하는 사례가 늘어날 수 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조치라고 변명한다. 그러나 이주노동자들이 제도를 악용할 수 있을 만큼 G1 비자 신청이 쉬운 일이 아니다. 산재의 경우 근로복지공단의 승인과 함께 치료 과정이 3개월 이상이라는 분명한 의사 진단이 있어야 한다. 임금체불 같은 경우도 고용노동부가 발급한 '임금체불확인원'은 기본이고, 임금체불 청산이 3개월 이상 걸릴 것이라는 구체적인 근거가 있어야 한다.

한편 G1 비자 소지자는 원칙적으로 취업을 할 수가 없고, 아파서 병의원을 이용할 경우 일반 의료수가 적용을 받기 때문에 체류 중 질병에 노출될 경우 의료비 부담이 클 수밖에 없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임금체불을 당해 체류자격을 변경한 이주노동자가 일을 하지 않고, 체불임금을 받을 날만 기다린다는 것은 굶어 죽으라는 말이다.

이것은 결국 우리 사회가 피해자에게만 모든 책임을 떠넘기는 무책임한 행위를 용인하고 있다는 말이다. 그런 면에서 G1비자 소지자의 취업은 허락되어야 하고, 발급 과정에서 인도적 사유가 명확하면 과태료 부과 등도 면제되어야 할 것이다.
#G1 비자 #이주노동자 #임금체불 #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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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과 편견 없는 세상, 상식과 논리적인 대화가 가능한 세상, 함께 더불어 잘 사는 세상을 꿈꿉니다. (사) '모두를 위한 이주인권문화센터'(부설 용인이주노동자쉼터) 이사장, 이주인권 저널리스트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저서 『내 생애 단 한 번, 가슴 뛰는 삶을 살아도 좋다』, 공저 『다르지만 평등한 이주민 인권 길라잡이, 다문화인권교육 기본교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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