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라면 다 버리고 와서 살 수 있지 않을까

[시베리아 이별여행⑩] 둘만의 세계를 떠나 계속 길을 가다

등록 2013.07.02 10:08수정 2013.07.02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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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에서는 장거리 승객들의 지루함을 덜어주려는 건지 낮 시간 동안 칸마다 달려있는 스피커를 통해 음악을 틀어주었다. 각자 재량껏 스피커를 끄거나 볼륨을 조절할 수 있었는데, 대개 조용한 러시아 곡들이었기에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순간, 내가 음악을 듣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구슬픈 멜로디 때문에 즐겨듣던 브리트니 스피어스의 <크리미널(Criminal)>이 흘러나오고 있었던 것이다. 주변 풍경과 앞뒤 음악에 어울리지 않는 최신 미국 음악의 등장에 어리둥절하기도 잠시, "엄마 울지 말아요. 나는 범죄자와 사랑에 빠졌어요"라는 가사가 반복되는 노래를 들으며 나는 묘한 감정에 빠져들었다.


부모님은 S와의 이 여행을 반대했다. 이제까지 교제를 반대해온 것처럼.

부모님이 S에 대해 물을 때마다 나는 '좋은 사람'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 그 이상 그와 있을 때 느껴지는 친밀감과 그를 오롯이 알고 있다는, 마찬가지로 내 모습 그대로 이해받고 사랑받고 있다는 느낌을 표현할 수가 없었다. '좋은 사람'이라는 말에는 '착하고, 나랑 가치관이 비슷하며, 서로 좋아한다'라는 뜻이 포함되었다. 그리고 나는 그것이 한 사람과 다른 한 사람이 만나 함께하는 이유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부모님은 달랐다. 어린 딸이 먼 이국에서 만난 인종도 국적도 다른 남자를 못미더워했고, 이것저것을 캐물었다.

부모님은 S를 내 남자친구로 인정하지 않았다

S는 이탈리아인이지만 오랫동안 독일에 살고 있었다. 당시 집권 중이던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전 총리로 대표되는, 부패가 판치는 이탈리아를 더 이상 견딜 수 없었다고 했다. 유럽연합 내에서는 이주가 비교적 자유로운 편이기 때문에 그는 독일 베를린을 자신의 새로운 거주지로 택했다. 그리고 내가 보기에 젊고 대안적인 문화의 중심지 베를린은 그와 아주 잘 어울렸다.


하지만 그는 고국에 대한 애정을 버리지 않았는데, 자주 이탈리아를 오갔고 이탈리아의 대표적 진보신문인 <라 레푸블리카(La Repubblica)>를 꼼꼼히 읽었다. 나도 그와 함께 이탈리아를 여러 번 방문했고 그의 고향 피렌체에서 오랜 지기들을 만나기도 했다.

그는 건축·인테리어 관련 일을 했는데, 프리랜서로 1년에 6~8개월 정도 일을 하고 나머지 기간 동안은 쉬었다. 6개월이면 생활하기에 충분한 돈을 번다는 것이었다. 그는 독립과 자유를 주는 돈과 그것을 벌 수 있게 해주는 일을 신성하게 여겼지만, 돈과 일에 노예가 되고 싶지는 않다고 했다. 자유 시간 동안 그는 삶을 즐겼고 그림을 그렸다. 그리고 그게 자신의 진짜 일이라 생각하는지 처음 만났을 땐 자신을 화가라고 소개하기도 했다.


자연히 그의 씀씀이는 검소했다. S는 대부분의 유럽 사람이 그렇듯 신용카드사용을 빚을 내는 거라고 생각하고 꺼려했다. 매일 신선한 먹을거리를 사기 위해 동네 슈퍼를 들렀다. 부모님 신용카드로 별로 필요하지 않는 것들을 사들이고 대형마트에서 일주일치 장을 봐 생활하던 나는 그의 생활방식이 처음엔 신기했지만 갈수록 이해가 되었다.

그러나 부모님은 그를 나라 잃은 떠돌이에 한철 막노동꾼으로 결론을 내린 듯했다. 그를 내 남자친구로 인정하지 않았고 어쩌다 화제에 올라도 부정적인 의견만 내놓았다.

진정한 사랑은 인간 내면의 가장 깊숙한 곳을 건드린다

외국에서 살다 보면 한국이 얼마나 생활하기 좋은 곳인지 깨닫게 된다. 고국이라 편하고 익숙한 언어와 문화 뿐 아니라, S도 이번 여행에서 인정했듯 객관적으로 보아도 그렇다. 그 이유로 발달된 기술과 잠들지 않는 밤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 기술이란 것이 대부분 사람 사이의 접촉을 최소화시키고 '빨리 빨리'를 위한 것이다. 자랑하는 24시간 문화도 대개 시급 5000원이 채 되지 않는 아르바이트생들로 운영이 된다. 그렇게 벌고 늘린 시간으로 여유를 즐기는 것 같지도 않다. 다양성이 인정 되지 않는다. 모두 한 목표만을 최고로 여기며 그것을 향한 경주를 한다. 여기서 낙오되지 않기 위해 공부를 하고 직업을 갖고, 결혼적령기에 비슷한 조건의 남자를 찾아 만나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는 삶에 나는 의미를 찾을 수 없었다.

부모님이 S를 반대하면 할수록 나는 사회를 비판했고, 그것을 초월한 우리의 사랑을 더 고귀한 것으로 이상화시켜 나갔다.

사실 나는 오랫동안 사랑은 지상에서 불가능한 것이라고, 사회와 양립할 수 없는 것이라고 여겨왔다. 십대 시절 전혜린의 글을 읽은 후부터였을 것이다.

전혜린의 유고집 <그리고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에는 잉게보르크 바하만의 시극 <만하탄의 신선>을 소개하는 꼭지가 있다. 사랑에 빠진 젊은 두 남녀가 그 사랑을 "생활의 서서한 파괴 작용과 둘만의 권태에 의해서 죽이"지 않기 위해 함께 자살을 결심하는 내용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는 언뜻 사랑을 권장하는 것 같아 보인다. 상대에게 잘 보이기 위해 화장품과 옷을 사는 등 자신을 꾸미고 계발하라고, 값비싼 선물로 마음을 표현하라고, 카페와 식당 영화관에서 문화를 함께 누리라고 한다. 그리고 주변에서는 언제 결혼을 할 거냐고, 결혼을 하고 나면 언제 아이를 낳을 거냐고 끊임없이 물어온다. 하지만 소비를 부추기는 광고를 걷어내고, 사회의 안정과 미래 노동 인구를 길러내기 위한 가족 제도를 걷어내고 나면 전혀 다른 그림이 나온다.

진정한 사랑은 인간 내면의 가장 깊숙한 곳을 건드린다. 그리고 그것을 경험하는 이들에게는 자신과 상대의 본질과 관계없는 피상적인 것들, 예컨대 외모나 지위는 하찮은 것이 되어버린다. 이들은 그래서 사회가 조장하는 욕망이나 그 대상을 가지지 못하게 되었을 때의 불안에서 자유롭다. 더 이상 굴복하지 않는다. 욕망과 불안을 동력으로 아무 생각 없이 시키는 대로 일하고 소비하는 것을 반복하는 성실한 사회 구성원 또는 에리히 프롬이 <사랑의 기술>에서 말한 '자동인형'이 될 수 없다.

당연한 것으로 여겨왔던 사회의 규칙과 관습에 의문을 품고 저항을 하기도 한다. 수많은 인간들 중에서 특별한 '나'와 '너'가 되었기 때문에 어제와 같은 의미 없는 반복을 할 수 없는 것이다.

그야말로 전혜린이 말한 "영구적 예외 상태"이며 "모든 것과의 투쟁 상태"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지금 S와 나는 우리 사랑을 방해하는 그 모든 것들로부터, 부모님을 포함한 우리를 아는 사람들과 나고 자란 곳, 그곳에서 각자에게 지워진 의무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었다.

우린 자유로웠고, 둘만의 세계를 이룬 듯 행복했다

기차를 타자 제한된 시간에 관광지를 모두 둘러봐야하는 촉박함도, 추운 거리를 헤치며 스스로 길을 찾아내야하는 부담도 없었다. 창조적인 시간을 보내고 싶어 부러 최소한의 책과 영화를 담은 휴대폰 외에 컴퓨터나 다른 오락거리를 가져가지 않았던 S와 나는 하루 종일 대화를 나누었다. 우리말을 알아듣는 사람이 없는 곳에서 우리는 자유로웠고 둘만의 세계를 이룬 듯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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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혼섬에서 더이상 사용돼지 않는 듯한 버스 정류장과 황량한 마을 풍경이 마침 듣고 있던 영화 <바그다드 카페>의 주제가 "Calling You"와 잘 어우러진다. ⓒ 예주연


이 느낌은 바이칼 호수와 올혼 섬에서 더욱 강하게 느껴졌다. 이르쿠츠크 시내를 벗어나 차로 네다섯 시간을 달렸다. 길은 황량했고 사람 그림자 하나 비치지 않았다. 겨우 닿은 호수는 세계에서 가장 큰 담수호답게 끝이 보이지 않았다.

그 중앙에 있는 올혼 섬에 가기 위해 얼음 위를 다시 차로 달렸다. 호수 양 영안에 장엄하고 신비한 풍경이 펼쳐졌지만 역시 인간의 흔적은 찾아 볼 수 없었다. 어쩌다 띄엄 띄엄 외롭게 서있는 자동차나 집 한 채를 보면서 나는, 여기라면 모든 걸 버리고 S와 도망쳐 와 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이까지 오는 기차 안에서 읽은 이광수의 <유정>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수양딸 남정임과 거짓 스캔들에 휘말린 주인공 최석이 도망쳐 온 곳이 바로 바이칼 호수였던 것이다.

최석은 결백을 증명하기 위해 자살을 결심하고 이곳을 찾지만 여행을 하면서 교장과 기독교 신자라는 사회적 지위와 이성으로 억눌렀던 정임에 대한 사랑의 감정을 자각하게 된다. 그러나 허무하게도 그를 뒤따라온 정임과 간발의 차로 재회하지 못하고 여행 중 얻은 병으로 죽고 만다.

최석이 도중에 시베리아 소도시에서 만난 비슷한 사연의 한국인 부부와 대비되는 모습이다. 그들은 사제지간으로 역시 거짓 스캔들에 휘말려 함께 죽으러 왔다. 무덤까지 파놓고 그 안에 누워 있다가 행복한 시간을 조금만, 조금만 더 연장시키자하다 죽음 대신 삶을 선택하게 된다. 그러나 최석은 그들의 변심을 경멸한다. 정임과 사랑을 깨닫지만 이루지 못하고 죽는 소설의 결말도 그의 이런 순결을 지켜주고 싶어서였는지 모른다.

나도 마찬가지다. <사랑의 기술>에서 에리히 프롬은 오늘날 사회에서 사랑은 아주 예외적인 현상이지만 불가능한 것은 아니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타협이나 도피 대신 부딪혀 이뤄내고 싶다. 무엇보다 이곳에 정착을 하고나면 지금은 광활하고 자유로워 보이는 풍경도 언젠가 나를 죄는 감옥이 될 것이고, 작고 평화로워 보이는 마을도 다시 내가 맞춰 살아가야하는 사회가 될 것이었다. 해결하지 못하고 피해왔던 문제들이 다시 수면에 올라올 것이었다. 우리를 헤어지게 만든 건 외부문제가 아니라 그것을 극복하지 못한 우리 자신이었으니까.

음악을 들으며 다른 일을 하지 못하는 내가 기차에서는 괜찮았던 이유는 흘러나오는 노래들의 알아들을 수 없는 가사, 낯선 멜로디 때문이었을 것이다. 먼훗날 그 노래들의 러시아어 가사를 알아듣고 <크리미널>을 들었을 때처럼 슬픈 감상에 빠지고 싶지는 않았다.

나는 계속 길을 가기로 했다.
덧붙이는 글 이 여행은 2012년 3월부터 한 달 동안 다녀왔습니다.
#시베리아 횡단 열차 #국제연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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