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상륙작전 성공... 동시에 인심은 고약해졌다

[박도 장편소설 <어떤 약속>](33) # 10. 추풍령 ①

등록 2013.08.22 19:52수정 2013.08.22 1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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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킨리호 함상에서 인천상륙지점을 바라보는 맥아더 장군 ⓒ NARA, 눈빛출판사


인천상륙작전

1950년 9월 15일 유엔군의 인천상륙작전은 한국전쟁의 전세를 단박에 뒤집어놨다. 이 작전의 성공으로 낙동강까지 내려온 인민군은 허리가 끊어지는 치명적인 타격을 입은 반면 유엔군은 전세를 한순간에 역전시키는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그동안 유엔군과 인민군은 1950년 8월초부터 1950년 9월 하순까지 다부동 유학산 일대에서 서로 물러날 수 없는 치열한 공방을 벌였다. 이 전투에는 유엔군은 국군 제1사단, 제8사단 그리고 미 제1기병사단이 인민군은 제3사단, 제13사단, 제15사단 등 5개 사단이 참전했다.

인민군은 38선에서 낙동강까지는 일사천리로 남하했지만, 그 이후 식량과 탄약 등 전투소모품을 추가로 보급 받지 못해 다부동전투에서 매우 고전하며 전진하지 못했다. 이런 가운데 인민군은 유엔군의 인천상륙작전으로 낙동강전선의 남과 북에서 양면 공격을 받게 되자 그만 전의를 잃고 후퇴하기 급급했다. 이로써 다부동전투는 50여 일 동안 피아 약 3만 명에 가까운 사상자를 낸 채 그 막을 내렸다.

낙동강전선의 인민군 주력 부대는 주로 소백산맥과 태백산맥을 타고 북으로 패주했다. 경상남도와 전라남북도 전선의 일부 인민군은 지리산으로 잠입했고, 남은 일부 인민군들은 지리멸열 흩어져 경부 국도를 따라 북으로 도주하기 바빴다. 이들 도주병 가운데는 피난민으로 위장하기도 했다. 국군과 유엔군은 한 달 전의 후퇴 때보다 더 빠른 속도로 북상해 9월 28일 마침내 수도 서울을 수복했다.

그동안 인민군 점령지에 나부끼던 인공 깃발이 국군과 유엔군의 반격으로 수복되자 삽시간 그 자리에 태극기와 성조기·유엔기로 바뀌었다. 그와 함께 세상 인심도 돌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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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군이 서울 중앙청을 수복하자 즉시 유엔기를 게양했다(1950. 9. 27.). ⓒ NARA, 눈빛출판사


김천


1950년 9월 24일, 준기와 순희는 아홉산 골짜기를 떠나 대성리 마을을 거쳐 금오산 뒤로 갔다. 이들이 금오산 지봉인 오봉리 뒷산에서 산 아래를 살펴보니 국도에는 북상하는 국군과 유엔군 차량이 번질나게 달리고 있었다. 이미 도로 중간 중간에는 패주하는 인민군을 잡으려는 듯, 검문 검색하는 헌병들이 보였다.

그들은 위험한 도로로 내려가지 않고 곧장 산길을 따라 김천 방면으로 갔다. 김천으로 가는 중간에 계곡을 만나면 목을 축였고, 점심때는 등에 진 자루에서 쌀을 꺼내 생쌀을 씹으며 허기를 달랬다. 그날 저물녘에야 김천에 닿았다. 김천 시가지를 지날 때도 큰 도로로 가지 않고 산길이나 외곽 들길로 둘러갔다.


이미 국군이 김천을 수복했지만 그때까지 주민들이 피난지에서 돌아오지 않은 빈집들이 많았다. 준기와 순희는 여차하면 산으로 도망칠 수 있도록 산 아래 한 외딴집을 물색했다. 마침 김천 외곽 한 외딴집을 찾아 인기척을 내도 집안에서 반응이 없었다. 그들은 그 집으로 몸을 피했다. 사람의 훈기가 사라진 집은 어디나 썰렁하고 어수선했다.

준기와 순희는 빈 방으로 들어가 가쁜 숨을 몰아쉬며 언저리를 살펴봤다. 산 밑 외딴집 탓인지 군인들이 거쳐 간 흔적이 보였다. 집안 여기저기에는 M1 탄통이나 탄피들이 널려 있었다. 부엌은 피난민이나 군인들이 밥을 해 먹은 뒤 치우지도 않고 그대로 떠난 모양으로 지저분했다.

순희는 부엌을 대강 치운 뒤 밥 지을 준비를 하고, 준기는 땔감도 구할 겸 사주 경계로 주위를 맴돌았다. 장독대는 반 이상이 깨어진 채 비어 있었다. 소금 단지도 비었는데 숟갈로 긁자 한 종지는 담을 수 있었다.

순희는 집안에 있는 우물물을 길어다가 밥솥을 씻은 뒤 자루의 쌀을 꺼내 솥 안에 안치고 준기가 주워온 땔감으로 불을 지폈다. 굴뚝에서 연기가 모락모락 솟아올랐다. 준기는 연기가 솟아오르는 게 두려워 헛간에서 키를 가져다 굴뚝 위를 부쳤다. 하지만 솟아오르는 연기를 아주 없앨 수는 없었다. 그래도 부엌에서 불을 때는 동안 준기는 키로 굴뚝 연기가 빨리 흩어지게 부쳤다.

"오세요, 밥이 다 되었어요."

순희는 매운 연기로 눈을 질금거리며 준기를 불렀다.

"찬이 없어 주먹밥을 만들었어요."
"잘 해시요. 남은 주먹밥은 갖구 다니면서 산에서두 먹을 수가 있디요."
"그러려고 밥을 많이 지었어요. 해평 할머니가 준 쌀이 이렇게 고마울 수가."
"난리 때는 양식이 데일 귀하디. 두먹밥(주먹밥)이 아주 꿀맛이군."
"왜 '시장이 반찬'이란 말이 있지요."

그들이 맛있게 허겁지겁 주먹밥을 한참 먹고 있는데 바깥에서 인기척이 났다. 순희가 밥을 먹다가 손가락을 입에 대고 준기에게 눈짓을 보냈다. 준기가 찢어진 문틈으로 밖을 내다보았다. 담 너머에서 한 사내가 집안을 노려보고 있었다. 순희도 문틈으로 사내를 보고는 남은 주먹밥을 얼른 자루에 담았다. 준기가 밖으로 뛰어나가며 고함을 쳤다.

"누구야!"

담 밖의 사내가 화들짝 놀란 채 아래 마을로 튀었다.

"순희 누이, 우리 얼른 도망 갑세다. 아무래두 그는 이 마을 청년자위단원 같습네다."

그들은 후다닥 남은 주먹밥을 담은 쌀자루를 어깨에 메고 뒷산으로 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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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근교 주민들이 태극기를 들고 북상하는 국군과 유엔군들을 환송하고 있다(1950. 9. 28.). ⓒ NARA


세상 인심

세상의 인심이란 고약했다. 인민군이 진주하면 금세 인공 세상이 되고, 국군이 진주하면 그날로 대한민국 세상이 됐다.

준기와 순희는 어두운 밤에 산길을 타고 곧장 북으로 향했다. 그들은 밤인데다가 한 번도 밟아본 적이 없는 낯선 산길이라 연신 넘어지고 나뭇가지에 옷이 찢겼다. 달빛이 있어 그나마 다행이었다. 그들은 산길을 밤새워 걸었다. 산이 워낙 험하고 낯선 길이다 보니 새벽녘에 다다른 곳은 겨우 직지사 역 부근의 한 마을이었다.

"준기 동생, 어디서 좀 쉬어가요. 지쳤어요."
"그럽시다. 나두 마찬가디야요."

마침 동구 밖에서 멀찍히 떨어진 한 자그마한 외딴집이 희미하게 보였다. 가까이 가서 보니 상여집이었다. 그들은 꺼림칙한 생각이 들다가도 그곳이 오히려 더 안전하게 쉬어갈 수 있는 곳 같아 문을 따고 들어갔다. 그들은 거기서 아침밥으로 쌀자루에 남은 주먹밥을 꺼내 먹었다. 가까운 시내로 살금살금 기어가 물도 마시고 손을 씻은 뒤 다시 상여집으로 돌아왔다. 상여집 한편에 세워둔 거적을 바닥에 깔고 그대로 쓰러졌다. 순희는 춥다고 준기 품에 파고들었다.

"한 치 앞을 내다보디 못한다더니…. 우리가 이런 상너(상여)집에서 몸을 피할 줄이야."
"너무 상심치 마세요. 고생 끝에 낙이 온댔어요."
"우리에게도 기런 날이 오가시오?"
"올 게에요. 옛말하며 살 날이 올 거야요. 우리 함께 기다려 봐요."
"알가시오."

어느 새 순희는 준기 품에서 새근새근 잠이 들었다. 준기는 순희를 꼭 안고서 자기가 앞으로 어떻게 하는 게 그를 진정으로 위하는 길인지 깊이 생각했다. 탈출은 남녀가 같이 하는 것보다 혼자, 특히 여성은 혼자 하는 게 위험 부담이 적었다.

특히 자기는 남자인데다가 평안도 말투 때문에 국방군이나 남녘 사람들에게 붙잡히면 전력을 숨기기가 매우 어려웠다. 그렇다면 이쯤에서 순희를 홀로 떠나보내는 게 진정으로 그를 위하는 길이라는 생각까지 미쳤다. 그래야만 전쟁이 끝난 뒤 다시 만날 수도 있을 것이다.

준기도 이런저런 생각을 골똘히 하면서 순희를 꼭 감싸 안았고 곧 두 사람은 깊은 잠에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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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전투기가 철교를 폭파하다(1951. 7. 30.). ⓒ NARA, 눈빛출판사


(* 다음 회로 이어집니다.)
덧붙이는 글 여기에 실린 사진은 대부분 필자가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NARA)에서 수집한 것입니다. 본문과 사진이미지가 다를 경우 한국전쟁의 자료사진으로 봐주십시오.
#어떤 약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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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 은퇴 후 강원 산골에서 지내고 있다. 저서; 소설<허형식 장군><전쟁과 사랑> <용서>. 산문 <항일유적답사기><영웅 안중근>, <대한민국 대통령> 사진집<지울 수 없는 이미지><한국전쟁 Ⅱ><일제강점기><개화기와 대한제국><미군정3년사>, 어린이도서 <대한민국의 시작은 임시정부입니다><김구, 독립운동의 끝은 통일><청년 안중근>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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