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한때 생사고락을 함께 한 전우였소

[박도 장편소설 <어떤 약속>](57) #15. 동대문시장 ④

등록 2013.10.04 19:52수정 2013.10.04 1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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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들이 야전에서 예배를 보고 있다(원주, 1951. 6. 12.). ⓒ NARA, 눈빛출판사


노상 기도

윤성오 목사는 들고 다니던 가방을 길거리에 놓은 채 준기를 껴안고 포옹했다.


"이러케 만나다니 … 잘 해시오. 이남에 잘 남아시오."

그는 곧 준기를 한적한 곳으로 데리고 가더니 가방에서 성경을 꺼내 펼쳤다.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꼬 나의 도움이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 여호와께서 너로 실족지 않게 하시며 너를 지키시는 자가 졸지 아니하시리로다. … 여호와께서 너를 지켜 모든 환난을 면케 하시며 또 네 영혼을 지키시리로다."(시121: 1~7)

윤 목사는 성경을 덮은 뒤 준기의 어깨를 짚고는 기도를 나직이 읊조렸다.

"우리의 고난을 알고 계시는 전지전능하신 하나님 아바지, 우리가 위급할 때는 늘 아바지께로 돌아가나이다. 주님의 종 김준기씨에게 정신과 육체의 고통을 이길 수 있는 힘을 허락하소서. 그가 주님의 은혜를 의지하게 하시고, 자기 자신의 힘을 의지하지 않게 하소서. 도움이 필요한 이때에 그를 위하여 봉사하는 손들을 축복하소서. 우리가 우리를 위하여 고난을 당하신 우리 영혼의 감독되신 예수님을 의지하도록 우리 모두를 깨닫게 하소서. 우리 주 예수님의 이름을 받들어 기도합니다. 아멘."


"고맙습네다. 저를 위해 기도해 주셔서…."
"당신과 나는 사선을 함께 넘은 동지입네다. 당신이 대한민국에 남은 것도, 또 동대문시장에서 일하게 된 것도, 내레 목사가 된 것도 다 주님의 뜻입네다. 하늘에 계신 그분은 당신이 겪은 환란 이상으로 반다시 큰 복을 주실 것입네다. 제 도움이 필요하실 때는 언제라도 우리 교회로 찾아주시라요. 데기(저기) 보이는 데 천막 교회야요."

윤성오는 창신동 언덕 위의 한 천막교회를 가리켰다.

"알갓시오."
"내레 부산포로수용소에 있을 때 한 미국인 선교사를 만났디요. 그분 인도로 부상당한 다리도 재수술 받았구, 내레 목회자의 길을 걷게 되시오. 그분 때문에 다시 살아난 셈이디요. 원래 우리 오마니가 펭양(평양)에서 아주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디요."
"아, 기러쿠만요. 사람이 살다보믄 멫 번은 변신한다디요. 이데 제 길을 찾은 모습 뵈니 덩말 반갑습네다."
"말씀 감사합네다. 기럼, 우리 또 만납세다."

윤 목사는 그 시간 막 한 교인 집에 심방 가는 길이라고 하여 거기서 헤어졌다. 준기가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자 지난날 절름거리던 다리가 한결 나아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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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군 위생병들이 부상당한 미군을 들것에 실어 후송시키고 있다(1950. 8. 23.).. ⓒ NARA, 눈빛출판사


동병상련

이북에서 내려와 동대문시장 일대에 정착한 월남인들은 서로 동병상련의 정으로 상부상조하면서 어려운 현실을 악착같이 헤쳐 나갔다. 어느 날 준기가 한일극장 앞에서 서성이는데 누군가가 어깨를 툭 쳤다.

"김 중사 아니오?"
"아, 예. 반갑습네다. 황 대위님. 그새 군에서 제대하셨구만요."

국군 복무 때 의무대 상사였던 군의관이었다. 그는 황재웅 대위로 외과 전문의였다.

"그렇소. 아직 점심 전이라면 우리 어디 가서 설렁탕이라도 같이 먹읍시다."
"기렇게 하디요."

준기는 지게를 동료에게 맡기고 동대문시장 안 평양 설렁탕 집으로 안내했다.

"제대 후 줄곧 이곳 동대문시장에 있었소?"
"아닙네다. 경상북도 구미라는 쪼그만 시골에서 가축병원 조수로, 대전의 한 대학부속 가축병원에서 실습과장으로 있다가 때려티우고 요기로 왔습네다."
"왜 그 좋은 직장을 그만 두었소?"
"'펭양 감사도 저 싫으면 기만이다'는 말이 있디요."
"하기는 그렇소. 나도 3년 전에 군에서 소령으로 제대한 뒤, 지금은 인천 송현동에다 개인병원을 냈어요."

준기가 밥숟갈을 내려놓고 손을 내밀었다.

"축하합네다."

황 대위가 그 손을 잡았다.

"축하는 무슨. 그냥 밥이나 먹지요. 김 중사, 나 마침 사람을 구하고 있는 중인데, 나랑 같이 일할 의향은 없소?"
"내레 무슨 자격이 이시야디요(있어야지요)."
"그동안 군 의무대에서 익힌 실력이 어딘데. 그리고 그동안 가축병원에도 있었다면서?"
"한 10년 정도 이서서요(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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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를 종횡무진 누비다가 부서진 탱크들이 부두야적장에 쌓여 있다(마산, 1953. 8. 22..). ⓒ NARA, 눈빛출판사


새 직장

"그럼 됐어요. 나는 당신과 같은 실력 있는 병원 경력자가 꼭 필요해요. 당장 우리 병원에 와서 사무장 겸 엑스레이기사 일을 맡아주세요. 김준기 중사라면 군 의무대 경력이 있으니까 방사선 기사 자격증도 금세 딸 수 있어요. 간호사 하나 두고 나 혼자 나머지 일을 하니까 아주 바쁘고 힘이 많이 드네요."
"생각해 보겠습네다."
"생각은 무슨, 내가 김 중사 여기서 버는 것보다는 더 많이 주겠소. 우린 한때 생사고락을 함께 한 전우가 아니었소. 자 내 명함이오. 여기 일을 빨리 정리하고 가급적 금주 내로 이 주소로 찾아오시오. 숙소는 당분간 우리병원 숙직실에서 지내다가 천천히 구하고요."
"생각해 보디요."
"생각은 무슨 … 자, 이거 얼마 안 되지만 이곳 일 정리하고 인천으로 이사하는데 쓰시오."
"짐이라곤 가방 하나뿐이야요. 이사 비용은 무슨, 일없습네다."
"아니요. 그동안 신세진 동료들에게 술이라도 한 잔 사고 오시오."

황재웅은 안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낸 뒤 지폐 한 장 만을 달랑 남기고 남은 돈은 세어보지도 않고 몽땅 준기의 호주머니에 찔러 넣어 주었다. 나중에 헤아려보니 준기의 사흘 일당이나 되는 큰돈이었다. 황재웅은 군대에서 준기와 함께 복무했기에 외과 조수 능력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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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거리의 구두닦이 소년들(1951. 11. 15.). ⓒ NARA, 눈빛출판사


(다음 회로 이어집니다.)
덧붙이는 글 여기에 실린 사진은 대부분 필자가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NARA)에서 수집한 것입니다. 본문과 사진이미지가 다를 경우 한국전쟁의 한 자료사진으로 봐주십시오.
#어떤 약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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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 은퇴 후 강원 산골에서 지내고 있다. 저서; 소설<허형식 장군><전쟁과 사랑> <용서>. 산문 <항일유적답사기><영웅 안중근>, <대한민국 대통령> 사진집<지울 수 없는 이미지><한국전쟁 Ⅱ><일제강점기><개화기와 대한제국><미군정3년사>, 어린이도서 <대한민국의 시작은 임시정부입니다><김구, 독립운동의 끝은 통일><청년 안중근>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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